1편
내 생존배낭 물품을 소개하는 글을 쓰기 이전에 왜 내가 이러한 것들을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글을 먼저 써보려고 한다. 나는 생존이 필요한 경우를 상정해서 약간의 물품을 EDC (every day carry)하고 있고 또 우리 가족이 72시간을 생존할 수 있는 생존배낭을 꾸려 두고 있다. 그리고 이에 더해 우리 가족이 7일간을 생존할 수 있는 추가 아이템들이 있는 배낭을 하나 더 준비해 두고 있다. 만일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대표로 생존배낭을 메고 나가고 와이프는 어린아이들을 챙길 것이다. 만일 사태가 심각하면 내가 배낭 두 개를 모두 매고 나가고 안전 지역에서 와이프에게 하나를 인계할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유난을 떤다 아니면 돈 낭비다 - 생존 용품에 한화로 50만원은 족히 투자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최소한의 투자라 생각함 - 할 것을 예상해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2부에서 어떤 용품들을 준비해 두고 있는지 나눠볼 생각이다.
1. 코비드 팬데믹의 트라우마
먹을 것이 차고 넘치는 미국에서 어느 날 갑자기 텅 빈 식료품점의 선반들을 마주했을 때 가장으로서 내가 너무 naive 했었다고 엄청 자책했었다. 손소독제가 들어왔는지 마스크가 들어왔는지 매일매일 약국 등에 전화를 하고 결국은 안 돼서 중국에서 직구를 해야만 했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다. 쌀이 떨어져서 교민들끼리 쌀을 나눠 먹고 코로나에 걸려도 치료법은 타이레놀을 먹는 것 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구할 수 없다고 하여 이웃끼리 교민끼리 수소문을 통해 확보하기도 했다. 매일매일 사람들이 죽어서 묻을 땅이 없다느니 총포상에 총과 총알이 다 떨어졌다느니 하는 뉴스는 아마도 한국에서 사셨던 분들은 느낄 수 없었던 공포감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제2의 팬데믹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물론 전 세계가 재난에 조금 더 대비가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우-러 전쟁으로 인해 식량 사정은 그 어느 때보다 안 좋은 상황이고 어떤 재난이 일어났을 때 제때 구호를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2.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미국에서 살아 보면 한국의 기후는 정말 온화한 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단 주기적으로 허리케인이 오는 지역이 있고 또 토네이도가 발생하는 많은 지역이 있다. 지진 대역에 위치한 지역도 있고 산불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도 있다. 또, 겨울에 폭설의 피해를 입는 지역도 많다. 이 모든 자연재해들이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수준으로 일어날 수 있다. 산불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일단 숨을 쉴 수 없었고 연기로 인해 인근 지역으로 연결되는 모든 도로가 통제되었다. 비행기도 뜰 수 없어 말 그대로 도시 전체가 고립되었고 산불 진화로 소방관, 경찰관들이 차출되었기 때문에 아마도 다른 문제로 그들의 지원을 받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 번은 홍수가 나서 급격히 물이 불어나는 계곡의 옆을 운전해서 가다가 길이 끊기고야 말았다. 모든 길이 끊기고 높은 지역으로 대피했다가 다행히 도움을 받아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다른 동료는 차가 통째로 떠내려 갔고 어떤 동료는 호텔에서 자야만 했다. 눈이 많이 와서 집에 고립되는 일은 다반사고 비가 많이 와도 눈이 많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전기나 수도가 끊기는 일이 다반사인 미국이다. 이 경우 복구가 상당히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복구를 기다리는 동안의 생존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린 일이다.
3. 아직도 기억하는 엘에이 폭동
엘에이 폭동일 일어났을 때 엘에이에 산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텔레비전에서 봤던 모습들을 기억하고 있는 세대이다. 엘에이 폭동이 아니더라도 그리 멀리 갈 것도 없이 여러 인종 관련 폭동들이 꾸준히 일어났었다. BLM이 한창일 때 상점들을 약탈하는 폭도들이 1시간 거리 큰 도시에서 일어났다. 거기서 비지니스를 하는 한인들은 중무장을 하고 자기 가게를 지켜야 했다. 실시간으로 폭도들이 이동해서 집에서 20분 거리의 쇼핑몰까지 이르렀다는 뉴스를 지켜봐야만 했다.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무장 세력을 맞닥 드리고 통금령이 내려지고 전기나 수도의 공급이 끊길 확률이 실제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내년 대선을 기점으로 미국이 거의 준내전 상태에 돌입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있는 만큼 최소한의 준비를 해두는 것을 그저 유별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4. 하나의 취미 생활
나는 Prepper 정도는 아니지만 서바이벌 관련 티비 프로그램도 꾸준히 시청하고 많은 관심도 가지고 있다. 또 캠핑도 좋아하는데 대부분의 생존 물품은 캠핑 용품으로도 사용 가능하므로 생존 배낭을 꾸리고 꾸준히 용품들을 구매하는 것은 어떠한 목적에 따라 아이템을 준비해서 스스로 평가하고 업데이트해나가는 취미의 일종이며 넓은 범위의 캠핑 준비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에서의 생존 배낭에 총기는 필수 품목이므로 총기 사용을 연습하고 단련하는 것 역시 취미가 된다. 캠핑이나 아웃도어 활동을 통해 꾸린 생존배낭과 물품들을 시험해 보는 것은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오지캠핑이나 백패킹 정도의 취미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크고 작은 재난 준비를 하기 때문에 관련 자료도 많고 시장도 큰 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