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안 살아봄
서부와 동부의 큰 도시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여러 번 캐나다를 방문했다. 물론 캐나다에 살아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미국에 익숙해진 한국 사람이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다른 점 몇 개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마침 지난주에 다시 한번 캐나다를 방문했기 때문에 잊기 전에 몇 가지를 노트해 보려고 한다. 혹시 미국과 캐나다 중 여행을 고민하는 분이라면 참고를 해볼 만할 수도 있겠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한국과 비교하면 너무나 다른 나라이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만큼은 내 미국 여권을 사용해 보려고 한다.
1. 친절한 캐나다 사람들
먼저 미국 사람들도 굉장히 친절하다는 걸 말해두고 싶다. 그러나 내가 사는 북동부의 분위기는 서부나 남부와는 사뭇 다르다. 한국말로 표현하면 좀 까칠하고 개인적이고 차가운 편이다. 필라델피아 쪽으로 가면 대도시답게 무례하고 무뚝뚝하고 심지어는 못된 사람들 천지이다. 1년에 여러 차례 출장이던 휴가던 여행을 하게 되는데 필라델피아 공항에 내려서 불쾌한 경험을 하면 집에 왔구나 하고 느낄 정도이다. 예를 들면 긴 비행을 끝내고 공항 화장실에 갔는데 당당하게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사람이 있다거나 말이다.
캐나다에 가면 진짜 영화에 나오는 그런 경험들, 이를테면 상점에서 계산하려고 줄 서 있는데 누가 말을 건다거나 아니면 엘레베이터에서 농담을 듣는다거나 하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2. 정말 많은 아시아 사람들
밴쿠버에 갔을 때 정말 놀랐었다. 차이나 타운에 갔는데 중국 어딘가에 있는 줄 알 정도로 중국 사람들이 많았다. 버스에 탔는데 버스 기사 빼고 (나 포함) 모두 동아시아인이었다. 물론 내가 통칭해서 중국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홍콩 사람일 수도 있고 싱가폴 사람일 수도 있기에 중국계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이번에 캐나다에 갔을 때는 정말 많은 인도계 사람들을 보았다. 그것이 캐나다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민자들의 적응과 사회 통합과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 하는 것들에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아시아계로서 아시아인들이 많다는 것은 다행히 여러모로 좋은 일이기도 하다. 특히 아래에서 설명할 것들 때문에 말이다.
3. 맛있는 "캐나다" 음식
사실 무엇이 캐나다 음식이냐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Poutine이라고 할 텐데 먹어보면 특별히 독창적이지도 않고 맛도 별로 없다. 그밖에 서양식은 미국 음식과 별로 다를 게 없다. 그러나 나에게 "캐나다" 음식은 언제나 맛있었다는 기억이다.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캐나다에서는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이민자의 인구 비율이 높다 보니 그 수준도 굉장히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밴쿠버에서 먹었던 일본 라면의 경우 일단 식당 자체가 일본에서도 보기 힘들게 규모가 컸고 셰프와 종업원 모두 일본어를 쓰는 일본인들이었다. 우리 동네에 있는 모든 일본 식당을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라면을 좋아해서 일본에 갈 때마다 유명한 집을 찾아가서 다양한 라면을 먹어 봤는데 본토와 비교해서도 꿀릴 게 없는 맛이었다. 한 번을 일 때문에 서부의 작은 도시를 방문했는데 거기서도 베트남, 태국, 한국 식당 등 다양한 아시아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거기서 베트남 식당을 베트남 출신 동료와 방문했는데 둘 다 만족했었던 기억이 있다.
4. 영어에 대한 적은 부담감
이민자들이 많다 보니 정말 많은 장소에서 - 특히 식당이나 상점에서 -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 사람들과 영어를 했을 때 내 영어 실력이 늘은 것 같은 경험을 많은 분들이 했을 것 같다. 일단 자신감이 다르고 또 듣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에서 느낄 수 있는 영어 못하는 사람을 깔보는 바이브를 덜 느끼게 된다. 내 경우에는 영어를 못 알아듣는 일은 별로 없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에선 언제나 어느 정도 주눅이 들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캐나다에서는 그런 느낌을 거의 안 받기 때문에 1번에서 언급한 친절한 캐나다 사람들과의 영어 대화에서 거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5. 저렴한 식료품 물가
세금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캐나다의 식료품 물가는 미국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코로나 훨씬 전 - 사실 10여 년 전 - 캐나다를 처음 방문했을 때 너무나 저렴한 식료품 물가에 깜짝 놀랐다. 지금은 많이 올랐지만 전 세계가 같이 올랐기 때문에 지금도 캐나다 식료품 물가는 미국에 비해 훨씬 저렴하고 한국에 비해서도 여러 품목이 훨씬 저렴한 것 같다. 특히 소고기, 과일, 치즈, 빵 등은 한국이 비해 훨씬 저렴하게 느낄 수도 있다. 지난주에 캐나다에 방문했을 때는 옷도 좀 사 왔는데 전반적으로 생활 물가가 미국 보다는 저렴한 느낌이었다 (혹은 미국 물가가 미친 것일지도...) 거기에 캐나다 달러가 미국 달러보다 가치가 낮다 보니 체감적으로 싸게 느껴지는 탓도 있다.
6. 상대적으로 안전한 치안
상대적이라고 말한 것은 내가 캐나다에서 폭행을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보다 치안이 좋다고 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총기 소지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월마트에 쇼핑을 갔는데 총소리 비슷하게 빵소리가 크게 났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언가 떨어졌나 보다 하고 아무렇지 않게 있었는데 나 혼자 계산하던 물건을 바로 내려놓고 무슨 일이 있는지 빠르게 상황 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바로 대피 동선을 확보하고 몸을 긴장시켰다. 경험과 학습에 의해 몸에 베인 행동이었다. 상황이 종료된 후 같이 있던 아들이 "아빠 총소리인 줄 알았어"라고 말했었다.
7. (아이스) 하키에 미친 사람들
미국에도 하키팬들이 많이 있다. NHL은 꽤 인기가 있는 스포츠이고 나도 직관을 한 적이 있다. 룰을 몰랐지만 굉장히 다이내믹한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미식축구나 농구, 야구의 아성을 위협할만한 인기는 아니다. 공식적으로 캐나다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공원에 가면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하는 하키장이 있고 마트에 가면 NHL 관련 상품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걸로 하키의 인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겨울에 캐나다를 방문해 보지 않아서 얼마나 하키에 미쳤는지 직접 경험해 보진 못했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캐나다 사람들이 하키에 진심이라고 들었다. 이 글 자체가 주관적인 글이라 그럴지도 모르는데 최소한 내가 사는 지역의 하키 인기는 그렇게 높지 않다. 일단 필라델피아의 하키팀이 더럽게 못하기도 하고...
위에 쓴 7가지 말고도 더 차이점이 있지만 그냥 지금 떠오른 게 위에 언급한 것들이다. 캐나다는 당연히 미국과는 다른 나라이고 방문한다면 당연히 미국과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캐나다 사람들이 미국처럼 취급받는 것에 대한 불만은 일종의 밈처럼 되어 있는데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지난주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는 차로 국경을 넘었다. 캐나다 국경에서 국경 보안원 앞에 차를 세웠는데 차에 있던 우리 개가 사람을 보고 짖어서 그분이 나에게 뭐라고 하는지 듣지를 못했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다시 물어봤는데 그분이 약간 까칠하게 - 그래도 미국에 비해서는 비교도 못하게 나이스하게 - 나에게 "너 지금 다른 나라에 와있잖아"라고 말했다. 내 차의 미국 번호판을 보고 나를 캐나다를 미국 영토인줄 알고 여권 없이 국경을 넘으려고 하거나 심지어 자기 총을 가지고 국경을 넘으려고 하는 미국인들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얼른 여권을 주니 간단한 질문에 대한 대답만 몇 개 듣고 통과하게 해 주었다. (어디서 언제까지 왜 캐나다에 머무는지 같은 기본적인 것들) 사실 아이들과 개까지 태운 미니밴을 타고 국경을 넘으려는 동아시아인은 가장 덜 의심스러운 그룹일 것이다. 미국에서 차를 렌트해서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여행하는 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만일 한국분들 중에 그런 계획이 있다면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여담으로 미국으로 다시 돌아올 때는 국경에서 분명히 미국 여권을 보여 주었는데 국경 보안 요원이 나에게 어느 나라 국적인지(?) 물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