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본 <채식주의자> 연극

너네는 소주랑 불고기가 뭔지 모르지? 난 아는데!

by 빈 틈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하던 중, 흥미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한강 채식주의자가 연극으로... 이탈리아에서 연극으로 선보여"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탔다는 소식과 더불어 들린 좋은 소식. 현재 이탈리아에 있는 나로서는 이 좋은 기회를 마다할 수 없었다.


나는 공연 예술에 관심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특히 연극을 좋아한다. 한국에서도 공연이 되지 않은 <채식주의자>라는 연극이 유럽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다고? 게다가, 내가 그걸 유럽에 있을 때 직접 보러 갈 수 있다고? 라는 설렘으로 가득 차서 바로 예매를 했다.


이탈리아 극단 INDEX가 24년 10월부터 25년 2월까지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에서 공연하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있긴 하지만, 100여분의 이탈리아어 연극을 이해할 자신은 없기 때문에.

한강의 <채식주의자>의 줄거리를 빠르게 파악하고 극장에 갔다.


한강의 문장들은 무대 위에서 어떻게 변했을까?





1.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포인트 有


소주, 김치, 불고기와 같은 한국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쓴다.

나 같은 경우는 이탈리아 사람 입에서 나오는 한국어를 듣는 게 왠지 통쾌했달까.

내 앞에 있는 할머니 관객 같은 경우에는, '소주'라는 단어를 듣고

"Qual e' Soju? (소주가 뭐야?)"라고 남편 분에게 말씀하셨다. 그걸 듣고 내적으로 흐뭇해하는 뒷자리 한국인.


한국인이라서 이해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더 넓었다. 이탈리아 배우가 소주 병나발 부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신선한지.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를 들으니 얼마나 통쾌한지.

이 감정은 아마 경험해 본 사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동양인으로서 비주류에 속한다고 가끔 느꼈다. 그런데 이러한 연극을 통해, 온전한 나의 정체성으로 공감되는 이야기를 들으니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번역 없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나올 때,

나 혼자 이 애국가의 가사를 안다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생각보다 한국적인 것이 많이 들어가서 좋았다.

주인공 이름이 '영혜'인데 발음이 안 돼서 '영계'라고 하는 것도 웃겼다...

이렇게 한국인만 아는 소소한 포인트들이 좋았다.


2. 서양이라서 가능한 선정적인 장면



위아래 아무것도 안 입은 나체 신, 부부가 성관계를 하는 섹스 신, 이런 것들을 한국 무대에서 볼 수 있을까?

이탈리아라서, 서양이라서 가능해 보이던 연출들이 많았다.


나는 공연을 많이 보러 다닌 편이지만, 한국에서는 해외 초청작이 아니고서야 나체 신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공연에서는,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영혜가 표현해 내는 나체, 노브라가 전혀 익숙하지 않게 느껴지지 않았다.


3. 똑똑하고 감각적인 무대 예술



항상 시각적이고 미술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되는 나인데, 이 작품은 내게 많은 영감을 주는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면, '몽고반점' 챕터 속에서 형부가 영혜의 몸에 그림을 그릴 때가 인상적이다.

나는 직접 몸에 물감 칠을 하려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니었다.



영혜에게 빛을 비추고, 그 빛 위에다가 영사기 같은 걸 이용해서 거기에 물감을 칠하면 영혜에게도 물감이 칠해지는 것처럼 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녀의 나체를 직접 만지지 않지만, 그 물감 붓이 그녀에게 직접 닿는 것처럼. 나는 그 장면을 보는데 입이 벌어지고 'wow'를 했다.


4. 공연화 시킨 연출가의 안목


연출가는 알았을 것이다. <채식주의자>를 읽을 때부터.

이 텍스트는 공연화를 시킨다면 더 빛나는 텍스트라는 것을.

형부의 직업이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것도, 실제적으로 관객이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지 않는가?

자극적이지만, 그래서 찝찝하지만, 오히려 공연으로는 관객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장치이기에!



5. 한국과 다른 공연 문화


한국은 연뮤 덕질 문화가 강해서 그런가, 극장에 젊은이들이 많다.

근데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대부분 어르신 분들의 비중이 꽤 컸다.

흰머리,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공연을 보러 오신다.

정말 좋게 보였다. 노부부끼리 함께 와서 연극 보는 모습이.


그때마다 난 궁금했다.

그들에게 공연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다들 차려입고 오신다.

나는 급하게 오느라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고 왔는데... 클래식 공연도 아니라서 별 신경 안 쓰일 줄 알았다.

그런데 자꾸 눈치를 보게 되었다... 옷매무새를 만지게 되고...




나는 이렇듯 한국과 이탈리아의 문화 교류가 이렇게 계속해서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예술이 그 문화 교류의 매개가 되어준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적절한 매개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