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와 구독으로 만들어진 대통령, 선동의 아이콘
미래 권력의 돌연변이화,
변종 프로파간다 시대를 예언하는 블랙 코메디
연극 '맵핑 히틀러'는 예술창작공장 콤마앤드의 신작으로, 역사적 인물 히틀러를 2030년대 미래 한국의 취준생 청년으로 비틀어 해석한 정치 풍자 블랙 코메디 연극이다. 극은 스무살 무렵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평범한 주인공이, 어떠한 선동으로 권력의 정점에 오르게 되었는지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한들호'는 미대 입시에 실패하고, 3년째 엄마 등에 떠밀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평범한 청년이다. 그의 이름은 '히틀러'와 유사한 발음을 가졌다. 그는 우연히 유튜브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는 소셜 미디어의 강력한 파괴력과 알고리즘, 댓글, 혐오 키워드 등을 이용해 대중을 선동하며, 어느새 천만 구독자를 보유한 인플루언서가 된다. 처음에는 정의를 위하는 명분으로 시작했으나, 지지자가 늘어남에 따라 자신의 사상에 매몰되게 되고, 결국에는 대통령 당선이라는 기이한 현실까지 만들어낸다.
감상 1. 믿고 보는 콤마앤드
사실 이 공연 포스터의 첫인상은 조금 과격하고 실험적으로 다가와서, 나와는 감성이 맞지 않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주저하지 않고 관람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단연 '콤마앤드'라는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 극단의 '림보'라는 공연을 보고나서, 이들이 만들어내고 확장해내는 새로운 공연의 형태와 메세지에 굉장한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한 번쯤 차기작을 보고싶다고 느꼈는데, 이번 기회에 또 다시 이 극단의 완성도에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
우선, 연기를 다들 너무 잘 한다. 톤도 좋고, 감정도 좋고 연기 구멍이 하나도 없는 듯 했다. 또한, 내가 콤마앤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특히 영상이 연극에 너무 잘 녹아들 수 있게 한다. 예를 들면, 한들호가 대통령이 되기 전 연설 '라이브 방송'을 하는 걸 실제로 영상으로 무대에 실시간 송출한다. 무대에 큰 카메라가 갑자기 내려오더니 세로 영상으로 동시간대에 보여줘서, 예전과는 다른 관객 경험을 선사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연극의 지평을 더욱 확장하는 극단이 아닐까 싶다.
이 외에도 중간에 '한들호'가 정말 히틀러처럼 보이게 하는 연출, 마치 나도 그의 연설에 선동되는 듯한 미러볼 조명까지 작은 부분들에 많은 포인트가 숨어있었다. 또한, 단순히 무대 내에서만 인물들이 활약하는 게 아니라, 관객석까지 무대를 확장시키며 제 4의 벽을 부수는 듯한 장면도 인상깊었다.
감상 2. 히틀러와 한들호, 그리고 여러가지 대응점을 통해 보는 우리의 미래
이 연극의 재밌는 점은 '히틀러'와 '한들호'처럼 역사적 인물, 사건과의 평행 이론이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나치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는 연극배우 '고보슬'로, 나치 돌격대 참모장 '룀'은 배달원 출신 '최래민'으로, 전쟁을 주도한 '괴링'은 '정가람'으로 무대 위에서 재현된다.
히틀러는 당시 미디어 프로파간다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빠른 속도로 확장시켰는데, 이것을 현대의 유튜브가 가진 힘으로 치환한 것이 인상깊었다. 또한 극 중 한들호가 출판한 '나의 복음'에서는 '무소인'을 배척하는 것이 1순위로 나오는데, 이것은 히틀러가 '나의 투쟁'이라는 책에서 유대인 혐오를 외쳤던 것과 동일하다. 정말 1930년대의 히틀러가 100년 후에 한국에서 환생을 한다면, 한들호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정말 알고 보면 더 재밌는 디테일들이 숨어있다. 뮌헨폭동은 국회의사당 빗자루 폭동으로,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연설은 당 대표 취임연설 라방으로, 장검의 밤은 청량산 실족사 사건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한국 관객에게 더욱 당시의 '나치즘'이 뚜렷하게 다가오게 만들어준다.
감상 3. 진짜 이렇게 될까 봐 두렵다.
연극을 보면서 느낀 점은 '미래에 정말 이렇게 될까 봐 두렵다' 라는 생각이었다. 지식인들이 아닌 이들이 단지 선동만으로 나라의 가장 중요한 책임 자리를 맡는다는 사실이 현실같지 않으면서도, 언젠가 일어날 듯한 사건 같아보이기도 했다. 이것이 연극의 순기능이라고 느꼈다. 우리에게 몇 십년 뒤에 찾아 올 세상의 질문들을 미리 던져보고, 객관적으로 그 상황을 미리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맛에 연극 보는 것 아니겠는가!
히틀러를 오마주 한 한들호의 이야기를 쭉 따라가다 보니, 잠깐 히틀러를 이해할 뻔 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만큼 스토리가 촘촘했는데, 또 다시 내게 '정말 이 감정이 옳은 것일까?'라고 끊임없이 다시 질문을 던지는 관람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너무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어서 중간 중간 관객석에서 나오는 웃음이 분위기를 많이 환기해주기도 했다.
히틀러가 만약 살아있었다면, 이 공연을 봤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 공연을 보면서, 한국 내에서만 머무를 깨달음이 아니라고 느꼈다. 독일이든, 해외든 많은 세계의 관객들에게 수출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공연은 오랜만이었다. 한국의 정체성이 녹아들게 해석을 잘 한 것 같다. 부디 많은 국내, 국외 관객들이 이 공연을 보고 하나의 질문을 얻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맵핑 히틀러
2026년 3월 27일(금) - 4월 5일(일)
서울연극창작센터 5F 서울씨어터 202
전석 40,000원
작 최양현 / 연출 이태린 / 무대 송지인 / 조명 곽태준 / 사운드 조한 / 영상 임리원
조연출 채희수, 이종화 / 프로듀서 박진성 / 드라마터그 남지수
출연 이정주, 구도균, 조한, 임지영, 김지민, 임지은, 송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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