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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roboros May 26. 2024

우울증인줄 알았는데 조울증이래 4

봄이 지나가면 장마가 온다.

경조증이 끝나면 우울증이 온다.


 연애가 끝나면 나는 강렬하게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A와의 연애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님 아주 어린시절에 경험한 무언가 때문에 내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트라우마인지 알게뭔가. 당장 찾아오는 우울과 무기력함은 어쩔도리 없이 나를 끝없는 땅굴 속으로 끄잡아 내렸다.


 하루종일 이불을 뒤집어 쓰고 멍하니 눈만 뜨고 있었고, 밥도 제데로 먹지 않아서 살이 쭉쭉 빠졌다. 아르바이트도 매번 지각해서 3개의 아르바이트 중 2개의 아르바이트를 잘렸더랬다. 생활고에 허덕여 단기알바를 찾기도 했었다. 감당 할 수 없는 우울감에 병원을 찾아 항우울제를 처방 받아 먹었다. 아침, 점심, 저녁, 취침전 약으로 구성된 많은 약들을 삼키면, 발 밑이 붕 뜬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 잠시나마 안정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기에 약을 한번 먹고나면 다시 약먹을 시간이 되기만을 온종일 기다렸다.


  약을 한꺼번에 털어 먹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지속되는 우울감에 견디다 못한 나는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매일 만나 술을 마시고, 아무도 나랑 술을 마셔주지 않으면 혼자 집에서 깡소주를 깠다. 제일 처음 말했듯, 나는 타의에 의한 절망보다 나 스스로 택한 절망에 휘둘리고 싶었다. 매일 매일 마시는 술로 인해 가족들과 병원에선 알콜사용장애가 의심된다며 나를 입원시키려고까지 상황이 악화되자, 입원은 죽도록 싫었던 나는 담배로 물질사용장애를 전환시켰다. 하루에 3갑은 폈었던것 같다. 매일같이 나에게서 담배쩐내가 났다. 그 냄새는 나에게 우울의 냄새이다.


 앞서 여러번 말했듯, 제 2형 양극성 장애는 제 1형 양극성 장애보다 우울의 주기가 길다. A와의 헤어짐, 그리고 수많은 단기연애의 끝이 경조증의 끝을 알리며 나에게 우울을 가지고왔다. 안그래도 우울한데 당시 아버지가 수많은 채무를 지고 자살을 하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망망대해에 떠있는 나무판자 마냥 쫄딱 망했다. 이중의 우울 삽화를 경험한 것이다. 이 이후로 나는 3년이라는 시간동안 우울에 시달리게된다. '왜 하필 나야'라며 세상을 원망해도 소용없었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일 뿐이다. A는 나를 떠났고, 아버지는 죽었다. 


 '우울과 조증이 번갈아가면서 나타난다면서요, 왜 이렇게 우울이 길었어요?'라고 한다면, 너무나도 무지막지하게 강력한 우울삽화를 경험했고, 그 삽화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 장기간 이어지는 삽화였기 때문이라고 설명 할 수 있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나는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느라 이전같은 '막 쓰고, 내키는데로 행동하는'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몸져 누우셨고, 한순간에 '망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입장이 되어 버렸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가난은 끈질기에 내 발목에 매달려있었다. 


 어머니와 단칸방을 전전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벌어야했고, 근근히 찾는 정신병원비도 부담되어 약이 떨어져도 가지 않고 버틴날이 더 많았다. 병원을 가지 못하니 나 스스로 공부해야겠다는 지식화 현상이 일어났다. 전공 중에 정신건강과 관련된 공부를 할 수 있는 학문이 있었고 나는 정신건강 관련 학문을 파고들어 장래도 '정신건강전문요원'으로 잡았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나는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었다. '나의 행동에는 이런 이유가 있구나, 지금 나의 행동은 이런 현상이지 않을까?, 이럴 땐 이렇게 해야하는구나' 같은 생각들을 하며,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나는 더욱더 깊은 우울에 빠져들었다. 책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아무리 나의 상황과 비슷한 사례들을 읽어보아도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병원에 가고, 약을 잘 먹는 것 말고는 '드라마틱하게 나의 상황을 역전 시켜줄'방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병원에 가는 것도 부담스러운 적이 많았기에 어쩔땐 정신과약이 구할 수 없는 마법의 약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쩔 땐 이 모든 상황이 거지같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참을 수 없다가도 다음날이면 무기력감에 휩싸여 '당연히 나는 벌 받을 만한 사람이니까 이런 상황을 겪어도 싸다'라며 말도안돼는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운이 좋아서 돈이 남는 날엔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 받아왔지만 꾸준히 먹지 않는 약이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간헐적으로 먹는 약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나를 천천히 더 악화시킬 뿐 이었다. 

날로 늘어가는 우울감에 치져 나는 나 스스로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 몸에 상처를 내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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