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으나 그리 행하지 않음은 모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함부로 행동하면, 그것은 도전적이기도 하지만 무모한 것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행동에 앞서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신중하면서도 제때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이기도 하다. 이것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지나쳤는지 아닌지에 따라, 그리고 행위의 의도와 과정, 그리고 이에 대한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어쩌다 보니 눈을 떠 살아가게 된 세상은 그 자체가 자연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잣대로 보았을 때는 부조리한 곳이었다. 어디서, 누구의 밑에서 태어나는지에 따라 주어진 것이 다르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성질과 능력이 다르며, 누군가는 병과 불편한 육신을 가지지만, 누군가는 건강한 육신과 정신을 가진다. 각자가 추구하는 행복은 각기 다르면서도 그 방향이 비슷한데, 이에 이르는 자리와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 곳이었다. 누군가가 ‘위’에 있다면, 누군가는 그 ‘위’가 성립하기 위한 ‘아래’에 있어야만 하는 곳이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삶에 있어 주인공이지만, 그러한 주인공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누군가는 주연이 아닌 조연, 단역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곳이었다.
누구도 힘들고 궂은일, 시답잖은 것, 자질구레한 일을 구태여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가 소속되어 있는. 그 자신에게 익숙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일과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런 곳이고,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그러한 역할을 맡지 않고도 자신의 여가 시간을 충분히 만끽하며 살아가지만, 다른 누군가는 여가를 누릴 새 없이 맡게 된 역할에 매몰되어 시간을 보낸다. 전자는 소수고, 후자는 다수다. 이러한 것들은 부조리하지만, 거부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앞에 놓여 있는 현실과 자신의 처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 현상, 자신이 살고 있고 눈앞에 놓여 있는 이러한 세상의 모습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시간의 노동, 허드렛일, 궂은일, 더러운 일 등. 소수를 제외하고 대다수 중 누군가가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은, 그것이 사소할지라도 반드시 누군가가 해야 하는 필요한 일이다. 이것을 알고 있다 되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게 주어진 역할을 끝내 인정하지 못하고 거부하였다.
그러니 나는 알고 있으되,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형이 나에게 보라고 보내준 고민상담 방송에서, 직장 생활을 끝마치고 집에 돌아와 생활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집안일을 끝마치고 나면, 자신의 여가 시간이 전혀 남지 않고 다음 날 출근하기 위해 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런 자신과 다르게 일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보내는 유복한 자들을 보며 불공평하다고 느끼고, 저들과 같은 여유를 만끽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자신이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던 상담자의 사연이 떠올랐다. 그 상담자의 사연을 보며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당연하게 살고 있는, 살아야 하는,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를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으로 보고 있는 상담자가 안타깝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리석다 생각하였다.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 불행을 느낀다면 자기만 괴로울 뿐이니까.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나 또한 그 상담자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다른 역할을 하겠다 하면서도, 이건 험해서, 저건 멀어서, 위험해서, 나만의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등 갖은 이유를 대며 회피하며 제대로 된 역할조차 맡지 않는 나는, 그 상담자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조차 없는 미숙한 존재였던 것이다. 원하는 것을 모두 손에 그러모아 거머쥘 수는 없음을 안다 이야기하는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거머쥐고 싶어 하는 ‘나’, 그것을 보며 자기비판과 자기혐오를 하는 ‘나’, 이를 보며 주기적으로 자기비판의 포격을 가하며 죄책감을 게워내는 것을 반복하는 ‘나’가 금이 가 갈라진 거울 앞에 비춘 형상처럼 중첩되어 존재하고 있다.
자기 앞에 놓인 삶에서, 각자는 누군가가 해야만 하는 역할이라는 것을 자각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와중에, 알고 있다 입으로는 떠들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아니하고, 주어진 역할도 거부하였지만, 벗어버린 역할 대신 무엇을 손으로 거머쥘지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않은 채 자기 전에 하루를 충만하게 살았는지 자기 자신에게 질문해 보면 스스로도 변명할 수 없는 방만한 생활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나는, 그러한 자신의 모습조차 합리화할 수 없는 허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