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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목 Sep 15. 2023

이판 vs 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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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의 경영활동 대부분은 판단과 선택이다. 이쪽을 택할 것인가? 저쪽을 택할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현상유지를 할 것인가? 이런 갈등의 저울질을 매번 가늠하면서 뭔가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판단의 연속선상의 위치가 사장이라는 자리다. 회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보니 조직의 이익과 관련하여 자기의 신념과 전통적 모럴이나 관습과의 갈등을 겪기도 한다. 


사장에게는 특정하게 주어진 임무가 따로 없다.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을 잘 판단해서 결정하고 명령을 내리는 것이 그의 기능이고 주임무다. 그래서 사장은 ‘판단’을 보관하고 있으면 안 되는 자리다. 보관하는 시간만큼 그 판단을 기다리는 부하들은 사장을 바라보고 대기하고 있다. 빠른 판단과 선택이 조직의 분위기 흐름과 활력의 기초다. 


이런 사장의 선택을 위한 판단에는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있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이판(理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에 대한 판단이고, 사판(事判)은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에 대한 판단이다. 즉, 사판(事判)은 과학적, 논리적, 수리적, 현실적인 판단이고, 이판(理判)은 직관적, 비논리적, 정성적, 정치적인 판단이다. 


이때 이판과 사판의 균형점을 잘 찾고 유지하는 것이 사장 판단의 핵심이다. 두 개의 판단을 별개로 다룰 게 아니라 융복합화하는 것이다. 현실의 사판에만 치우치면 실리계산에 밝아 자잘하다거나 너무 현실적이라는 소릴 들을 것이고, 직관에 의존한 이판에만 치우치면 통 크다는 소리는 듣겠지만 섬세한 실리를 놓쳐 자칫 밥을 굶을 수도 있다. 창업단계의 초기 비즈니스는 기본적인 매출과 이익 등 살아남기 위한 최소의 단계이며 사판 즉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모토로 해야 하는 단계다. 점차 사업이 고도성장단계에 진입하게 되면 직관적이고 정치적인 명분 등을 많이 고려해야 하는 이판의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사업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판단의 잣대가 점차 사판에서 정치적인 이판으로 흘러간다. 정치란 자기 고유의 主기능 없이 다른 사람을 움직여 자기 목적하는 바를 도모하는 것이다. 삼국지에 보면, 변변한 싸움 기술 없는 유비가 관우, 장비, 조자룡, 위연, 황충 같은 용맹스러운 장수들을 움직이고 지휘한다. 항상 주변 흐름을 중시하고 물 흐르듯 민심을 따르면서 부하들의 전문능력을 적의(適宜) 활용하는 것이 최상의 정치이듯이 마찬가지로 사장도 조직의 기능과 소비자의 욕망을 따라 비즈니스 방향키를 잡아야 한다. 즉, 남의 힘 역학 관계 속에서 자기가 추구하는 목표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온전히 자기의 힘만으로 사업하기도 어렵고 또 그렇게 해서는 사업의 큰 확장을 이루어 낼 수도 없다. 비즈니스가 크게 성장해 갈수록 다른 사람의 능력을 최대한 자기의 이익과 연결시키는 게 핵심이다. 또는 상대가 원하는 것들을 서로 잘 교환하고 충족시켜 주면서 봉이 김선달식 이익을 취하는 것이다. 일종의 거간 노릇이다. 


이때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과 관점에 취해있기 때문에 거간이 뭘 취하고 있는지 조차도 잘 파악하지 못한다. 따라서 다른 이의 능력과 생각과 심리를 단시간 내에 파악하고 합당한 이익을 교환해 주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사업이 번창해 갈수록 사장판단의 대부분이 이판(理判) 즉, 전략적 정치적인 판단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혜로운 사장들은 주기적으로 쉬면서 사색하고 통찰하는 시간을 가진다. 자기 자신의 상황을 장기판 위에 올려놓고 남의 장기판 보듯 상황을 객관화시켜 보는 것이다. 


모든 새로운 선택에는 항상 예기치 못하는 문제점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떠한 선택에도 문제점이 있고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사장의 판단과 결정이 항상 완벽할 수 없고 실패 가능성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은 끊임없는 선택을 해야 하고, 회사라는 조직의 자전거 페달을 밟고 가야 한다. 항상 불확실성의 기반 위에서 흔들리는 상황에서 혼자 결정해야 한다. 통찰력을 가지고 이판과 사판의 적절한 배합과 그 외로움의 과정을 견뎌 내는 것이 사장판단의 요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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