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지혜로운 사람은 반드시 이로움과 해로움 양면을 함께 생각한다’
智者之慮, 必雜於利害 지자지려, 필잡어리해_제8편 구변
사람들은 가족, 부부에게는 계산이 필요 없다거나 불필요한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또는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손자는 이동하거나 주둔하는 중에 생기는 다양한 상황을 전제로 유리함과 불리함을 생각했지만 부부 생활에서도 서로를 헤아리는 지피지기의 지혜와 배려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생활이 어렵고 바쁠 때일수록 배려의 균형 감각을 잘 유지하면 시간이 흘러도 현명하게 모든 일을 잘 풀어 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왜 오십부터 반등하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수십 개 국가의 행복도 통계를 분석한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 출신 저자는 행복지수를 그래프로 그리면 10·20대에 행복했다가 40~50대에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간다고 합니다. 심리학·경제학·뇌과학을 아우르며 생애 연구와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행복곡선은 알파벳 ‘U’ 형태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양상은 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2023년 3월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의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951점으로, 조사대상 137개국 중 57위를 기록했습니다. 앞서 2021년 보고서에서는 149개국 중 62위, 2022년 보고서에서는 146개국 중 59위였습니다. 2023년 보고서를 기준으로 OECD 정회원국 38개국 중에서 한국보다 행복도 점수가 낮은 곳은 그리스, 콜롬비아, 튀르키예 세 나라뿐이었습니다. 행복곡선도 세계적인 추세와는 달리 역 U자형 또는 L자형 곡선 형태의 보고서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결혼 생활 초기에 잠깐 행복했다가 떨어져서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단기에 고도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정을 소홀히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자리 잡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의 <행복지수 개발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행복을 구성하는 영역 중에서 가족(결혼) 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33.2%로 가장 높습니다. 결국은 부부, 가정이 행복해야 개인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거지요.
여기서 가정을 이루는 중요한 사람들인 아내, 자녀, 부모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가족 구성원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으며 얼마나 알고 있나요? 그가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음악, 영화 장르를 알고 계신가요? 먹고 싶지 않은 음식, 듣기 싫어하는 음악, 제일 싫어하는 포인트가 뭔지 알고 계신가요? 그의 철학과 종교, 정치에 대하여 당신은 얼마나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나요?
아마도 이런 질문을 하면 ‘내가 그런 걸 모르고 있다고?’또는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직장 동료, 친구들과 점심 식사나 술자리에서 흔히 나누는 질문이고 대화입니다. 그런 대화나 관심이 가정 내에 있는 사람들, 가족이라고 소홀히 다룰 근거나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하여 우리들 대부분은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항상 나를 응원해 주는 든든한 조력자라는 믿음의 아이콘으로 그들을 질문의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담론의 모퉁이에 멀찍이 내팽개쳐 둡니다. 그래서 가족들 개인별 정체성과 본질을 보는 ‘지피지기’의 눈을 잠시 감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가족 구성원 중심축인 부부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보겠습니다. 통상 부부가 오십을 넘으면 결혼 생활 20∼30년에 물리적인 관계의 한계를 느낍니다. 오랜 기간 같이 살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도 있지만, 지겨운 감정도 생겨납니다. 애틋한 대화도 나눠본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불만으로 부부갈등, 부부싸움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애들이 어릴 때는 애들 눈치라도 봤지만, 이제는 그런 중간 완충지대조차도 없어졌습니다. 3년 차∼10년 차에 찾아왔던 그런 권태기와는 다른 원인과 차원입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둘이서 해결해야 하는 것도 큰 난제입니다. 말려주거나 중재해 줄 누구도 없습니다. 젊을 때는 친정 부모에게라도 갔는데 이제 받아 줄 부모님도 안 계시거나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년 부부 중에는 대화 없는 벙어리 부부, 밥만 같이 먹는 하숙집 같은 부부, 등기부에만 부부라는 이름의 각자도생 한 지붕 두 사람, 따로 살다가 자식들 결혼식날만 부부인 척하는 레고형 부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얽힌 문제를 풀어 줄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지금까지 외부로 향했던 그 예리한 당신의 눈을 내부 반려자에게 살며시 돌려보십시오.
먼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세요
‘○○엄마’ 또는 ‘저기요’라고 부르는 호칭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부부는 ‘“야”, “너(You)”, “어이”, “이봐” 등 이름도 없이 함부로 부르는 게 일상인 부부도 있습니다. 50 이후 이제부터 부부간 호칭, 이름이 중요합니다. 남자들은 직장에서 대리, 과장, 부장, 이사 등 호칭에 민감합니다. 자신은 호칭에 이렇게 민감하면서 정작 아내에게는 ’어이’, ’이봐‘ 등 존재감 없는 호칭으로 부르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_ (김춘수/꽃)
이 시구에서처럼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상대방을 의미 있게 인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상대방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입니다. 이름은 존중을 의미하고 이름은 존재를 전제로 합니다. 그동안 존재감 없이 ‘○○엄마’, ‘○○아빠’로 존재했던 배우자를 되찾아 와야 합니다.
두 번째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말하십시오
우리들 중에는 분명 한국에서 태어났고 자랐고 토종 한국인이고 한국어만 사용해 왔는데, 유독 발음 못하는 단어가 바로 ‘사랑’이라는 단어입니다. 자, 남편이 아내를 부릅니다.
“○○엄마! 내가 당신 ‘저기’ 하는 거 알지?”
“여보! 내가 말 안 해도 ‘거시기’ 내 마음 잘 알지?” 통상 이렇게 표현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나이 지긋한 분들에게서 많습니다. 왜 굳이 멀쩡한 단어를 놔두고 ‘저기’와 ‘거시기’로 바꾸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스페인 여행을 했을 때 가이드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그는 스페인 여자와 결혼해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게 ‘사랑해’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부부가 일생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말이 ‘사랑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스페인에서는 직장인이건 프리랜서건 일어나자마자 한 번, 아침 한 번, 점심때 한번, 저녁때 한번, 취침 전 한번 총합 5회 이상을 기본적으로 ‘사랑해’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에 더하여 식당에서 의자를 당겨준다거나 차에서 내릴 때 손잡아 주는 것 등 실생활에서 부인을 배려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죠. 저도 귀국해서 노력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랑해’라는 말을 ‘저기’와 ‘거시기’로 바꾸어 말하는 화법은 메타포도 소위 ‘속 깊은 사랑’도 아닙니다. 변명입니다. 화자의 일방적인 언어이고 그냥 표현의 미숙함일 뿐입니다. 이제는 청자의 입장에서 말해야 합니다. 과감히 ‘저기’와 ‘거시기’를 버려야 합니다. 살면서 가장 억울한 건 보여주지 못한 진실입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바로 표현하는 것만이 아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또 오십이 넘으면 남녀 간의 페로몬 효과도 감소합니다. 이를 보완해 줄 좋은 보충제가 바로 ‘사랑해’라는 말입니다. 이에 더하여 손도 잡아주고 미소도 짓고 안아주기도 하고 칭찬도 해주고 때로는 예기치 않은 선물을 해도 좋습니다. 이런 말과 행동은 남편 남자에게는 좀 사소해 보일 수도 있지만, 아내 여성에게는 아주 오랫동안 가슴에 기억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온화하고 부드럽게 말을 걸어 보십시오
부부간에는 말투가 아주 중요합니다. 말투는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경계선이자 문지방입니다. 세상 모든 불행과 행복의 단초는 지극히 사소한 문제들에서 출발합니다. 일상의 아주 사소한 태도, 표정, 말투가 그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말투’입니다. 말이 아니라 ‘말투’라고 하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투’는 말하는 태도, 말의 품질입니다. 특히 은퇴부부는 둘이 같이 보내는 시간이 늘다 보니 집안일을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사사건건 지적과 잔소리를 하거나, ‘고맙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커녕 계속된 비난과 명령조 말투에 아내는 지치는 것입니다. 오십 부부 문제는 오직 당사자만이 해결 가능합니다. 두 사람의 문제는 두 사람이 결자해지해야 합니다. 그 시작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투입니다.
네 번째는 서로 세워주십시오
간혹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이 자기 덕분이라고 서로 셀프 공치사 하기 바쁜 부부를 봅니다. 물론 농담이라고 하면서도 뼈 있는 말입니다. 남편은 돈 벌어줬다고, 아내는 살림하고 뒤치다꺼리한다고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공을 서로 다툽니다. 그게 새삼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공을 자기에게 돌리는 것만치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누가 물으면 ‘이 모든 것은 아내(남편) 덕분입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서로에게 ‘고맙습니다’라는 감사의 말을 자주 하십시오. 공자님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30년 40년 같이 살았으니 ‘굳이 그런 걸 말로 하지 않아도 된다 ‘는 분도 있습니다. 이심전심이라는 말도 합니다. 하지만 부부간 침묵은 독입니다. 무슨 말이라도 하시고 가능하다면 상대를 세워주십시오. 칭찬하고 감사하십시오. 그래야 당신도 섭니다. 부인이 먼저 귀부인 대접을 받아야 남자가 귀공자가 되는 것처럼 말이죠.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자유를 주십시오
중년 부부싸움은 대체로 나의 자유와 그의 자유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생기는 갈등입니다. 나의 욕망이 그의 욕망과 교차하는 지점이지요. “우리 부부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부부싸움 한 적 없어요”라며 자랑삼아 말하는 부부를 간혹 봅니다. 정말 금슬이 좋아서 일까요? 혹 어느 한쪽이 참아내느라 너무 힘들지는 않았을까요? 훌륭한 부부, 건강한 부부는 싸움 전혀 없는 부부가 아니라, 가능하면 싸움하지 않으려 서로 노력하고, 설령 싸우더라도 쉽게 화해하고 쉽게 갈등을 풀어가는 구조를 가진 부부라고 봅니다.
경찰영화에서 경찰이 범인을 연행할 때 죄수와 같이 수갑 차고 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같이 가더라도 누군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면 ‘연행’이고, 서로 마음 맞아 같이 가면 ‘동행입니다. 부부는 서로를 속박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그만 그를 풀어 주십시오. 오십은 각자 개성이 뚜렷해지는 시기입니다. 속박이 지겨워지고 자유가 그리워지는 시기입니다. 단순히 배우자가 싫어서가 아니라, 꽃봉오리가 여물면 터지듯 그런 시기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부모로부터 잔소리, 공부학습, 직장, 일 등 자유를 억압하는 요소가 많았습니다. 이제 자식으로부터 자유, 남편으로부터의 자유, 아내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자유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에게도 자유, 나에게도 자유입니다. 밥 차려주기 위해 남편을 기다린다거나, 별 일없이 남편을 잡아두는 족쇄형 동반 활동은 이제 풀거나 청산해야 합니다. 연행에서 동행으로 전환입니다. 오십의 자유는 물리적인 자유에서 출발하여 상대 영혼의 자유까지 배려하는 것입니다. 이때 자유는 서로에게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취미생활도 좋겠지만 취미를 같이하는 게 어느 한쪽의 양보와 배려에서 비롯된 거라면 그 또한 벗어나야 합니다. 각자 좋아하는 각자 취미를 찾는 게 좋겠습니다.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겁니다.
요약하면, 오십 부부의 행복은 ‘지피지기’에 있습니다. 상대를 살피고 온화한 마음을 담아 상대 이름을 부르고, 자신과 상대의 어떤 기대와 욕구가 좌절되고 충돌하는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무얼 좋아하고 무얼 싫어하는지를 지피지기 하는 거지요. 이때 서로 맞춰가려는 협상의 유연성과 양보하려는 마음 자세가 중요합니다. 특히 중년부부는 30년 40년 같이 오래 살았으니 서로 ‘너무 잘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변화하는 상대를 새로운 시선으로 음성, 표정의 변화를 서로 살피고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사람에게도 적용됩니다. 50이면 벌써 다섯 번씩이나 변한 ‘서로’입니다. 그도 다섯 번 변했고 나도 다섯 번 변했다는 걸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두 사람이 오십에 마주한 겁니다. 그런 시각으로 상대를 봐야 두 사람의 미래가 바뀝니다. 희망이 보입니다. 사랑은 마음으로만 느끼는 무형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유형입니다.
<참고문헌>
1. 조너선 라우시(Jonathan Rauch), 김고명 옮김, 인생은 왜 오십부터 반등하는가?, 부키, 2021
2.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630932
3. https://www.hani.co.kr/arti/science/future/1030165.html
5. https://bravo.etoday.co.kr/view/atc_view/12579
6. 김미곤 외4명, 행복지수 개발에 관한 연구, 한국 보건사회연구원,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