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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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고립과 외로움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장기간의 고립은 스트레스, 수면 장애, 면역력 저하 같은 건강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나 〈올 이즈 로스트〉처럼 고립 상황을 다룬 작품들이 보여주듯, 고독은 인간 정신을 시험하는 극한 경험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고립은 두렵고 피하고 싶은 상태다.
그런데 이런 고립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다. 그는 매년 한두 차례, 약 일주일 동안 외부와 단절된 오두막이나 별장에서 홀로 지내며 책을 읽고 사색하는 ‘싱크 위크(Think Week)’를 갖는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직원들과 전문가들이 보낸 수백 건의 제안서를 읽고, 미래 전략을 정리하며, 장기적 아이디어를 다듬는다.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전략적 고립을 통해 통찰을 얻는 시간이다.
이 ‘생각 주간’에서 그가 얻는 성과는 크다. 1990년대 중반, 게이츠는 오두막에서 인터넷의 파급력을 깊이 인식했고,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방향 전환을 촉진했다. 이후 자선 활동이나 기후 변화 문제를 고민하는 데도 이 시간이 결정적이었다. 고립은 그에게 단절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었던 셈이다.
왜 하필 고립일까? 현대 사회는 정보 과잉의 시대다. 스마트폰 알림은 쉴 새 없이 울리고, 이메일과 메신저는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이런 환경에서는 깊은 사고가 불가능하다. 우리는 늘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정작 자기 자신과는 대화하지 못한다. 게이츠가 선택한 오두막은 외부와의 연결을 끊고 내면과의 연결을 위한 시도다.
이런 습관은 게이츠만의 것이 아니다. 제프 베조스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오전의 고요한 시간에만 내리고, 하워드 슐츠는 매일 새벽 러닝 후 기록과 사색의 시간을 확보하며, 일론 머스크는 걷기와 사색을 결합해 아이디어를 정리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아이작 뉴턴은 런던의 페스트 봉쇄 기간에 고향 농가에서 칩거하며 만유인력의 법칙을 구상했다. 볼테르, 루소, 괴테도 고독 속 산책과 독서를 통해 사유를 확장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소란과 압박에서 벗어나 얻게 되는 집중과 통찰이다.
뇌과학적으로도 설명된다. 외부 자극에서 벗어날 때 뇌의 기본 모드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어 창의적 연결이 일어나고, 문제를 잠시 잊을 때 새로운 해법이 떠오른다. 산책이나 조용한 몰입 시간이 창의성과 회복력을 높이는 이유다. 결국 ‘생각의 휴식’은 게으름이 아니라 사고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각을 얻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러한 집중과 통찰의 가치는 현대 경영자 사례나 과학적 근거뿐만 아니라, 역사 속 성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중요한 순간마다 홀로 계셨다. 열두 사도를 선택하기 전에는 밤새도록 기도하셨고(누가복음 6:12-13), 온 도시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 때도 어두운 이른 아침에 일어나 외딴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다(마가복음 1:33-35).
불교 전승에 따르면, 부처는 6년 고행을 마친 뒤 보리수 아래에 앉아 “깨닫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깊은 명상에 들었고, 새벽하늘의 별빛을 보며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공자 역시 《논어》에서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고 말하며, 학습과 사색을 통해 삶의 도리를 깊이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시대와 종교는 다르지만, 의도적 고립이 더 큰 통찰과 사유로 이어진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흥미롭게도, 게이츠가 오두막으로 간 이유는 세상과 멀어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세상과 더 깊이 연결되기 위해서였다. 그는 단절을 선택함으로써 오히려 더 멀리 내다보고 본질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나 연결이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하루 30분이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한 달에 하루라도 디지털을 끊고, 자신만의 작은 오두막 같은 공간에서 깊이 사색하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초·중·고 학생들의 수업 시간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아직 찬반 논란이 있지만, 영국, 프랑스, 호주 등 해외에서도 이미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이는 정보 과잉 시대에 집중과 내적 성찰의 중요성을 공교육 차원에서 인식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곧 추석 연휴가 다가온다. 가족과 함께 모여 즐기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혼자만의 고요한 사색에 잠겨보는 것은 어떨까. 바쁜 일상 속 연결보다, 마음의 여유 속에서 얻는 새로운 통찰이 더 깊은 의미를 줄지도 모른다.
<참고, 인용, 발췌>
1. 박상군 기자, 이투데이, 스마트폰 금지 vs 하루 2시간 허용…韓·日 극과 극 규제
2. 조성익 교수, 중앙일보, 백만장자의 은밀한 취미? 빌 게이츠가 오두막집 칩거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