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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변화, 완전 변화, 그리고 업의 확장과 재정의

水因地而制流 兵因敵而制勝(수인지이제류 병인적이제승)

by 최송목

https://m.skyedaily.com/news_view.html?ID=288532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흔히 쓰는 식상한 말이지만, 기업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늘 진실이었다. 산업 구조의 변화, 기술 혁신, 글로벌 경쟁 심화 등 환경은 언제나 기업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일본과 한국의 사례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1919년 창립된 일본의 고무 부품 제조사 고무노이나키는 매출의 90%를 자동차 산업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전기차 전환으로 내연기관 부품 수요가 줄자, 회사는 여성용품 브랜드 ‘페미낙(Feminac)’과 실리콘 생리컵 사업에 뛰어들었다. 자동차 부품에서 쌓은 고분자 기술을 사회 문제 해결에 적용한 이 시도는 단순한 다각화를 넘어선 혁신이었다. 세계 생리컵 시장이 성장하는 가운데, 고무노이나키는 일본산 의료용 실리콘의 강점을 바탕으로 싱가포르, 베트남 등 해외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고무노이나키는 기술이라는 업의 본질을 재해석하고 업의 경계를 확장하며, 생존과 성장의 길을 찾았다.


1889년 교토의 작은 화투 공방에서 출발한 닌텐도는 운수업, 식품, 러브호텔 등 수차례 전환에 실패했다. 그러나 3대 경영자 야마우치 히로시는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자”는 본질에 집중했고, 이를 통해 요코이 군페이와 미야모토 시게루 같은 인재가 발탁되었다. ‘매직 핸드’, ‘동키콩’, ‘슈퍼마리오’ 같은 혁신적 제품이 나오며 닌텐도는 화투 제조업체에서 세계적 게임 기업으로 성장했다. 즐거움이라는 업의 본질을 재정의하고 확장함으로써 가능했다.


국내 사례는 다소 결이 다른 변화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1954년 삼성그룹이 창립한 제일모직은 오랫동안 ‘패션’과 ‘화학’을 양축으로 성장했으나, 치열한 경쟁과 일부 브랜드의 부진으로 적자 사업을 정리했다. 이후 패션 이미지를 넘어 첨단소재와 전자재료에 집중하며 반도체·디스플레이용 고부가가치 소재로 무게를 옮겼다. 그룹 차원의 합병과 지배구조 개편으로 기업 가치를 높였고, 핵심 소재와 기술 역량이라는 업의 본질을 재정의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매출 1조 원대의 중견기업 노루그룹은 페인트 산업 성장과 함께 수십 년간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왔으나, 최근 국내 시장 정체와 중후장대 산업의 국제 경쟁력 약화로 성장 한계에 직면했다. 특히 건설 경기 침체로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한영재 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노루는 석유 기반의 페트로 베이스에서 바이오 베이스 사업으로 확장을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성장의 한계를 업의 본질 확장을 통해 돌파하려는 시도다.


손자병법에는 「水因地而制流, 兵因敵而制勝(수인지이제류, 병인적이제승)」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물이 지형에 따라 자기가 갈 흐름을 바꾸듯, 군대도 적의 상황과 상대에 맞춰 전략을 유연하게 바꾸어야 승리한다’는 뜻이다. 고무노이나키는 기술의 흐름을 읽고, 닌텐도는 소비자의 요구를 읽었으며, 제일모직은 시장흐름과 역량을 정확히 분석. 실행했고, 노루는 성장의 한계를 업의 본질을 확장함으로써 극복하고 있다.

드로잉 = 최송목

이외에도 과거 필름 제조사였던 후지필름은 현재 내시경, 초음파 장비, 인스탁스 카메라를 생산하고 있고, 조미료 업체였던 아지노모토는 고급 반도체용 절연필름 사업에서 큰 이익을 거두고 있다. 한때 ‘워크맨’과 ‘브라비아’로 전자제품 시대를 대표했던 소니는 이제 게임, 음악, 영화 등 콘텐츠 중심의 크리에이티브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진화했다. 이들의 성공은 모두 변화를 거듭하는 기업 환경과 시장의 흐름에 맞춰 전략의 수정을 거듭한 결과다.


경영에서 변화는 항상 두려움을 동반한다. 하지만, 안주하는 순간 도태하거나 망한다. 살아남고 싶다면 꾸준히 변화해야 한다. 업의 본질을 다시 보고 재정의하고 확장을 거듭하는 기업만이 변화의 위기로부터 생존을 이어 갈 수 있다.


<참고, 인용, 발췌>

1. 정혜인 기자, 머니투데이, "변해야 살아남는다"… 일본 차부품사의 여성용품 도전

2. 김인권, 머니투데이, 130년 된 화투 제조사의 끊임없는 놀라운 혁신

3. 노정태, 중앙일보, 거대 게임 기업 닌텐도의 시작

4. 최준호, 중앙일보, 보스턴 클러스터 ‘산파’가 경기도 중견기업을 찾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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