將不聽吾計, 用之必敗, 去之 (장불청오계, 용지필패, 거지)
축구나 야구 같은 단체 스포츠에서 감독과 코치의 존재는 자연스럽다. 전략을 짜고, 역할을 배분하고, 선수들의 호흡을 맞춘다. 굳이 그 필요성을 따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마라톤이나 골프처럼 기록과 승부가 철저히 개인의 몫인 종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혼자 뛰고, 혼자 책임지는데 왜 굳이 코치까지 둘까 라는 의문이 든다.
기업의 사장도 마찬가지다. 사장은 최종 결정권자이며, 누구와 상의하든 판단과 책임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그래서 흔히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일인데, 굳이 조언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기술 자문은 그나마 이해되지만, 심리 ‘멘털 코치’라는 말은 낯설기도 하고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다.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정신적인 면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건 어딘가 약해 보이는 느낌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 무대는 이미 다른 선택을 했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은 팀마다 3~4명의 멘털 코치를 두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NC 다이노스, KT위즈가 멘털 코치를 영입하며 선수 심리 관리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멘털 관리는 선수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고, 그것조차 실력의 일부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프로 구단들이 별도의 멘털 코치를 둔 이유는 분명하다. 선수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체계적인 심리 관리가 실제 승률을 좌우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기력은 기술이 아니라 ‘멘털’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어떤 선수는 실수 한 번에 “또 실패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악성 댓글을 먼저 떠올리고, 실수 장면을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한다. 전문용어로 망상활성계(RAS)의 작동이다. 뇌는 수많은 정보 중 ‘이미 믿고 싶은 것’만을 골라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부정이 시작되면 실패의 근거만 수집하고, 낙관이 과도하면 위험 신호를 외면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멘털 코치의 역할은 무엇일까. 선수 출신 국내 1호 멘털 코치 최건용 코치의 설명은 간명하다. “실수하면 어쩌지?”라는 생각 대신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감정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초점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사장 역시 조직의 감독자이기 전에, ‘기업이라는 개인 종목’을 뛰는 선수에 가깝다. 그 역시 망상활성계(RAS)에서 자유롭지 않다. 수많은 정보가 보고되지만, 이미 한 번 필터링된 뒤에 올라온다. 박수는 과장되고 경고는 완화된다. 성공기에는 낙관의 신호가 확대되고, 위기 국면에서는 비관적 데이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기업에는 이런 오류를 방어하기 위한 다양한 자리가 존재한다. 회장, 고문, 명예회장, 사외이사, 자문위원 등이다. 단순한 권위나 예우의 자리가 아니다. CEO에게 다른 관점이 질문을 던지고, 지나친 확신에 각성의 소리를 내는 역할이다.
가장 위험한 리더는 틀린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다. 권력은 빠른 판단을 하게 하고, 확신을 단단하게 굳힌다. 한번 굳어진 확신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문제는 그 확신이 틀렸을 때다.
2,500년 전 『손자병법』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손자는 오왕 합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將聽吾計, 用之必勝, 留之(장청오계, 용지필승, 유지)
將不聽吾計, 用之必敗, 去之(장불청오계, 용지필패, 거지)”
“제 전략을 들으시면 반드시 이깁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떠나겠습니다.”
손자는 자신을 전쟁의 ‘코치’ 역으로 제안했다. 전략 기획서를 내밀며 “내 전략을 시험하라”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것은 충성 맹세가 아니라, 전략가의 조건부 제안이다. “조언을 수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합려는 테스트를 거쳐 결국 그를 기용했고, 오나라는 강국으로 도약했다. 중요한 것은 승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승리를 떠받친 멘토의 자문이다. 절대 권력을 가진 군주조차 멘토를 두고 전략을 점검받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지치면 휴게소에 들른다. 운전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점검을 통해 더 안전하게, 더 멀리 가기 위해서다. 멘털 코치의 역할도 그렇다. 잠시 멈춰 시야를 정리하고, 방향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자리다.
가장 위험한 리더는 틀린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다. 리더의 가장 큰 적은 무능이 아니라 스스로 고립이다. 고립은 “나는 충분히 알고 있다”라는 믿음에 기초한 교만이다.
정상은 최종적으로는 혼자 우뚝 서야하는 존재다. 그리고 오래 유지해야 한다. 소위 지속경영이다, 하지만 오래 유지하는 힘은 혼자서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래서 왕도 코치를 두었다. 혼자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위치지만, 생각하는 과정은 혼자서 하지 않았다.
손자는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물러날 뜻을 분명히 했다. 그것은 본인의 자존심이 아니라 “전략을 시험하라”는 요구다. 진짜 훌륭한 리더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확신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시험대에 올릴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 주변의 리더들은 어떠한가.
https://www.todaymild.com/news/articleView.html?idxno=31221
<참고 인용 발췌>
1. 김기중기자, 서울신문, MLB는 서너 명씩 멘털 코치… 부담 클수록 현재에 집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