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爲不可勝 以待敵之可勝, 勝兵先勝而後求戰, 激水之疾 至於漂石者 勢也
AI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동시에 부작용도 함께 드러나고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AI 슬롭(AI slop)’이라 불리는 저품질 AI 생성 콘텐츠가 문제로 떠올랐다. 논문의 양은 폭증했지만, 그 질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일부 학회에서는 AI로 작성된 논문과 리뷰의 남용을 막기 위해 활용 제한과 공개 의무를 강화하고 있다.
문화 영역에서도 비슷한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6월 예정인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인간 작가와 AI가 공동 저자로 참여한 주제문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변화는 분명 체감되지만,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래서 묻는다. “과연 바람직한가?” 하지만 지금 우리는 AI가 ‘좋은가 나쁜가’를 따질 단계가 아니다. “어떤 AI가 안전하고 신뢰할만한가 그리고 어떤 AI를 선택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해 있다.
역사적으로 모든 혁신적 기술은 언제나 부작용과 함께 등장했다. 자동차가 먼지를 일으키고 매연을 배출한다 해서 주행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마차 시대로 회귀할 수는 없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길을 떠올려 보자. 과거에는 말을 타고 열흘 걸리던 거리를 지금은 고속철로 세 시간이면 도착한다. 속도가 빨라졌다고 해서 그것을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의 인식이다.
프랑스의 교육 및 학습 지원 전문 기관인 아카도미아(Acadomia) 회장인 필립 콜레옹(Philippe Coleon)은 인간의 지능을 ‘능동적 지능’, AI를 ‘수동적 지능’으로 구분하며 AI 설계자로서의 인간 역할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은 2500년 전 『손자병법』에서도 확인된다. “먼저 적이 나를 이길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 놓고,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만 대적하라(先爲不可勝 以待敵之可勝)”라는 문장이다. 이어 “이기는 군대는 이미 이겨놓고 싸운다(勝兵先勝而後求戰)”라고 했다. 승부는 싸움의 순간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결정된다. 전투는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일 뿐, 승패는 설계 단계에서 이미 갈린다.
설계가 곧 생존의 핵심인 이유는 지금의 변화가 『손자병법』 병세편의 “세찬 물이 돌을 떠내려 보내는 것은 그 기세 때문이다(激水之疾 至於漂石者 勢也)”라는 말처럼, 거대한 하나의 기세(勢) 자체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AI 열풍은 개별 알고리즘의 문제를 넘어선 시대적 흐름이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떻게 ‘지지 않는 구조’를 설계하느냐가 성패의 관건이다. 준비 없는 전투는 소모일 뿐이다. 결국 경쟁력은 도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과 설계다.
AI의 긍정적 가능성은 이미 데이터로 입증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샘 알트만(OpenAI CEO)이 예견한 ‘1인 유니콘 기업’의 현실을 추적하는 ‘린 AI 리더보드(Lean AI Leaderboard)’다. 슈퍼닷컴의 공동 창업자 헨리 쉬가 집계한 이 리스트는 소수 정예로 기록적인 생산성을 달성한 기업들의 지표다. 창업 5년 이내, 50인 이하, 매출 500만 달러 이상이라는 엄격한 기준을 충족한 기업이 2025년 7월 기준 44개에 달한다. 기술을 단순한 보조 도구가 아닌 조직의 핵심 엔진으로 삼은 이들의 등장은, 비즈니스의 성패가 더 이상 머릿수에 달리지 않았음을 극명하게 증명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효율 개선을 넘어 산업 패러다임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과거 기업의 성공 공식이 거대한 규모와 자본, 일사불란한 통제력에 있었다면, 이제는 단순 노동의 '양'을 압도하는 '기획의 질'이 생존의 열쇠가 되고 있다. AI라는 엔진을 얼마나 정교하게 제어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시대다. 무거운 조직보다 가볍고 민첩한 구조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나아가 지능은 범용화 되고, 협력은 더 가벼워지고 있다.
지금 AI 논란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다. 사용할지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달라진다. AI는 양날의 검이다. 유용한 동반자가 될 수도 있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AI는 이미 플랫폼을 떠나고 있다. 탑승을 망설일 시간은 끝났다. 이제는 어떻게 올라탈 것인가만 남았다. 인류에게 불은 분명 위험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피하지 않았고, 그 불로 문명을 일구었다. AI라는 불 역시 다르지 않다. 막연한 두려움을 넘어, 다루는 능력이 생존을 가른다. 열차는 이미 달리고 있다.
<참고 인용>
1. AI타임스, 박찬기자, AI 논문 홍수 속 ‘AI 슬롭’ 경계령… 학계, 신뢰 붕괴 막기 위한 규제 강화
2. 최혜리 기자, 중앙일보, 주제문 공동저자에 AI?… 서울국제도서전이 던진 질문
3, 김민정기자, 중앙일보, AI로 논문 다작 VS 홀로 1편 완성... 누가 더 좋은 연구자인가
4. Official Lean AI Native Companies Leaderboard, https://leanaileaderboard.com/
5. 정과리, 중앙일보, 인간은 사실 의식을 가진 AI이다
https://m.skyedaily.com/news_view.html?ID=3020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