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송목 Jul 06. 2022

내가 만약 죽지 않는다면?

insight

"만약 죽음이 없다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내일부터 아무도 죽지 않는다면?

내가 만약 죽지 않는다면?

사람들 모두가 영원히 산다면?


지금까지는 너무나 당연시해왔던 절대 진실인 죽음에 대하여

우리는 줄곧 生(생)의 울타리 안에서만 바라보았다.

우리에게 죽음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죽음에 순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요리조리 피해도 보고,

어떻게 하면 오래 살 것인가에만 골몰하는, 수동적인 자세로 궁리하고 생각해왔는데,

이제 반대로 뒤집어 적극적 시각으로 생의 바깥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발칙한 상상이랄까, 잠시 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렌즈 돌리기랄까?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할 수는 있겠지만, 깊이 들어갈 수 없는 영역이다

깊이 생각해봤자 소용없는 망상에 그칠 뿐이라는 걸 잘 알기에,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기에,

늘 생각의 입구나 그 언저리에서 맴돌다 말다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던 그 주제다.


드디어 오늘

비록 상상만 일지라도.

비록 틀릴지라도 죽음의 문을 나와 영원의 문을 빼꼼히 들여다볼까 한다.


이제 우리는 절벽에서 떨어져도

깊은 물속에 빠져도 수영을 못해도

비행기 타고 가다 테러를 당해도

절대 죽지 않는다


1. 우선 혐오시설인 화장장, 무덤이 없어질 것이고 이와 관련 종사자 사업도 사라질 것이다.

상조회, 장의사, 지관, 염하는 사람, 영생을 미끼상품으로 하는 사이비 종교지도자들이 일거에 모두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할 것이다.


2. 범죄가 없어질 것이다.

죽여도 죽지 않으니 칼 들고 총 들고 덤벼도 소용없고 당하는 사람도 죽을 염려 없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

칼 든 강도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죽일 수 없으니 총 칼 무기가 더 이상 위협의 도구가 아니다.

상대가 죽어줘야 다툼도 끝나고 증거인멸이 되는데 그게 불가능이다.

끝까지 추적되니 범죄를 저질러도 도망가도 언젠가는 잡힐 것이다.

범죄 없는 심심하고 다소는 지겨운 세상이 될 것이다.


3. 마약이나 환각제가 인기를 얻을 것이다.

죽지 못하니 판타지 환상을 동경할 것이다.

익스트림 스포츠가 유행할 것이다.


4. 결혼제도가 없어질 것이다.

자녀 생산이라는 결혼의 주목적이 사라지고 섹스의 쾌락만 남을 것이다.

남녀 간의 애정을 1:1 짝으로 묶어두는 속박을 더 이상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섹스만으로 두 사람을 묶는 페로몬 사슬구조는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할 것이다.  

60년 결혼생활조차도 티격태격 사느니 마느니 하는 데 '같이 영원히 사는 것'은 하나의 족쇄이고 구속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파트너가 바뀌는 계약제나 기간제 동거가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다.


5. 출산이 없어질 것이다.

태어나면 하나의 부동의 영속적 존재가 되니 종족 보존의 니즈가 사라지고 따라서 출산의 필요가 없어지니 어린이가 점차 없어질 것이다.


6. 장기이식  수술이 급증할 것이다

노후화되는  피부. 장기 등 몸에 대한  리모델링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될 것이다


7. 상속의 의미도 없어질 것이다

경로우대도 없어지고 개인주의로 욕심, 이기주의가 극대화될 것이다.

은퇴도 없고 유산도 상속도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양보도 없을 것이다.

한 번 권력을 잡으면 놓지 않을 거니 나이 많은 노인이 권력을 계속 쥐고 흔들려할 것이다.  

영원히 죽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평등사회가 조성될 것이다


8. 굶어도 죽을 염려는 없으니 굳이 삼시세끼 챙겨 먹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살쪄도 죽지 않으니 다이어트가 필요 없고

말라비틀어져도 죽지 않으니 농업도 식음료 사업도 부진해질 것이다.

그냥 먹는 맛의 쾌감만 남을 것이다.


9. 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노동으로 돈 벌지 않아도, 돈이 없어도 살아 있고

굶어도 죽을 염려가 없으니 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노동시장의 대변혁이 올 것이다.   

심심해서 일하는 노동자 외 살기 위해 취업하는 노동자는 사라질 것이다.


10. 추위도 더위도 문제없을 것이다.

춥거나 덥거나 그냥 괴로울 뿐, 죽지는 않으니

그냥 견디면 될 것이다

냉동인간이 되어도 살기는 사니 얼려서 미래 세계로 가고 싶은 사람도 생기고 그런 ‘냉동 미래여행’이라는 상품도 성행할 것이다. 상품명 '100년 뒤에 봬요'


11. 주택부족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나, 아들딸, 손자, 손자의 손자 등 사람이 죽지 않고 계속 살다 보니  친인척이 많아지고 친인척의 의미가 퇴색할 것이다. 다만, 인구증가에 따른 집이 많이 필요해질 터이니 주거 부족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12. 국가, 정부가 없어질 것이다. 경찰, 군대도 필요 없어질 것이다.

지킬 목숨이 없고 뺏을 목숨이 없는데 국가라는 공동체의 보호도 필요 없어질 테니까. 당연히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같은 정치하는 자리, 직업이 없어질 것이다.


13. 전쟁이 없어질 것이다.  

죽일 수 없으니까 전쟁의 기본 전제인 제압이나 점령이나 지배 정복이 불가능하다.

총도 칼도 핵무기도 소용 없어질 것이다


14. 잠깐 죽여주는 상품이 등장할 것이다

지금 현실의 생활이 괴롭고 감당하기 힘들다면?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근접한 희망(낙원)이 '죽음'이 될 수도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희망 없는 이들에게 어떤 동경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 또한 죽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통상 절망의 대명사이던 죽음이 때로, 어떤 이에게는 희망의 신기루가 되는 것이다. 죽음의 역설이다. 우리가 삶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했듯이, 이제는 정반대로 죽지 않는 영생이 지겨워 죽음을 동경하는 이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영원히 죽을 수는 없지만,  잠깐 까무러쳐 죽음을 맛보게 하는 순간 죽음의 상품이 등장할 것이다. 상품명은 ‘당신을 잠시 죽여드립니다’


15. 세상 비만, 지구 비만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다 간 지구인은 얼추 500억, 지금 살고 있는 지구인은 약 79억, 그런데  이들이 탄생만 있고 죽음이 없으면? 죽지 않고 축적만 된다면? 등장만 있고 퇴장이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어쩐지 좀 복잡하고 꽉 찬 지구 즉, 지구도 비만이 되어 좀 무거워지지 않을까?


이러다 머리에 쥐 나겠다.

간단할 줄 알고 시작한 '죽음'을 부정하는 상상이 이렇게 광폭 이어질 줄 나 스스로도 몰랐다.

결론은 '하느님이 세상을 참 잘 설계하셨구나'라는 사실이다.


죽음이 없다면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다. 알고 보니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가장 좋은 시스템이 바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연결고리가 아닌가 생각 든다. 성경에 의하면 선악과의 유혹으로 인간이 잘못된 길로 들어섬으로써 죽음을 잉태하고 유전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것이 아담과 이브의 단순 실수의 응보일까? 그리될 걸 미리 알고 계셨던 하느님의 의도된 설계는 아닐까?

결과적으로 우리 인간은 영생을 꿈꾸지만, 실제 '죽음'없는 세상은 하느님의 도움이 없다면, 혼돈의 카오스가 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주어진 죽음은 잘못된 선택의 운명이 아니라 오히려 잘 프로그래밍된 시나리오가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한없이 두렵고 슬프고 공포스러운 이 죽음도 어쩌면  타고르의 시 <기탄잘리 95번>처럼 또 다른 세계의 시작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살면서 삶의 시작과 끝을 궁금하게 생각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죽어버리다면 너무 '맹'하게 성의 없이 사는 느낌이다. 탄생과 죽음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출발지와 종착지를 모르고 길을 가는 것 같은 생각.

그래서 주어진 삶에 대한 약간의 성의를 보태려 머리를 쥐어짜 봤다. 잠깐 들여다보려 했는데, 넘볼 수 없는 세계라 역시나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한 번씩 들여다볼 생각이다. 혹 다른 생각, 생각할 수 없는 생각,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유레카가 나올지도 모르니까. 어쨌거나 재밌는 상상이다. 때 이른 초여름 폭염에 내 뇌에 '더위'가 스며들었나?


작가의 이전글 시해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