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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재단 Jun 21. 2022

공익활동이 아니라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달콤쌉싸름한 나의 공익활동에 대하여

미국의 비영리조직(NPO, Non-Profit Organization) 근무자는 전체 취업인구의 10%에 이른다. 정부, 민간과 더불어 제3섹터에 경제주체로서 의료, 복지, 교육,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비영리, 소셜섹터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청년 공익활동가’라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보며, ‘공익 활동’이란 밥벌이에 대해 함께 논의해보고자 한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공짜 점심은 없다’. 경제학과 1학년 학생이었던 나는 경제학의 제1원칙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기본적인 경제이론을 설명하는 말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감정까지 비용으로 계산해버리는 각박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학부 시절 동안 “난 자본주의가 별로야...”라는 말을 하고 다녔고, 주변에서는 “그렇다고 사회주의는 아니지”라며 ‘자본주의 vs 사회주의’에 대해 얘기를 하곤 했었다. “왜 경제체제는 두 가지밖에 없는 거야” 라는 질문이 나를 제3섹터로 이끌었다.


처음에는 제3섹터가 뭔지도 몰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치면서 사회 곳곳에서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열심히 떠들었고 그런 일을 하는 모습들을 따라 동경심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소비용, 최대효과’ 를 거스르며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아 보였고 그때만 하더라도 NGO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은 ‘좋은’ 장래희망, 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길어지는 취준 생활과 계속되는 서류탈락 속에서 유일하게 서류를 통과했던 곳은 국제구호 NGO였다. 부모님은 은근히 실망한 기색을 보이며 더 노력해보라며 남들이 모두 인정하는 ‘좋은 대학, 안정된 일자리’의 퀘스트를 당신의 자식이 이루기를 바랬다. 하지만 나는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미치면서 ‘긍정적 사회변화’ 를 만들어내는, 그런 직업을 갖고 싶었다. 


공익활동이 뭐길래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얘기할 때면 주변에서 ‘너무 이상적이다, 돈도 못 벌고, 직업의 안정성도 떨어진다.’ 며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게 부끄러운 때도 있었다. 내가 아직 세상을 너무 몰라서 그러는 건가, 아직 세상을 아름답게만 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취준을 견딘 후 대기업에 들어가고 공무원이 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힘든 고생이 싫어서 도전을 피하고 쉬운 길로만 가려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누군가는 사회에 좋은 일을 해야지 라는 막연한 사명감에 기대어 스스로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접하게 된 여러 개념들이 ‘소셜섹터, 제3섹터, 시민사회, 공익활동’ 이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긍정적인 사회 변화’ 를 만들며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업과 정부를 양 끝에 놓았을 때, 그 사이에 소셜벤처, 사회적기업부터 시민사회, 공익활동, 그리고 NGO/NPO라는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있다. 긴 역사 속 여러 뿌리에서 시작된 활동들은 ‘사회변화, 공익활동’이라는 하나의 영역, 제3섹터, 소셜섹터라는 스펙트럼으로 커지고 있었다.


일을 하면서 또래의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는 이전 세대가 짜놓은 틀 안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몰랐다. 타인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기부를 하는 이 활동에 대해서 한 켠에서는 ‘자원봉사’, 또 한쪽에서는 ‘나눔’이라고 명명했다. 자원봉사는 행정안전부, 나눔은 보건복지부 소관인 듯 했다. 실무자들 입장에서는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만 기관의 어른들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동물이 좋아서 동물단체에서 일을 하고, 환경에 관심이 많아 환경단체에서 일을 하고, 아이들을 좋아해서 아동과 관련된 NGO에서 일을 하고 있는 청년들은 본인들에게 ‘활동가’라는 정체성이 있는 줄도 모른다. 현재 국제구호 NGO에서 일하고 있는 나 역시도 스스로에게 ‘내가 청년 공익 활동가’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공익 활동가’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은 직업적 구분보다는 본인의 열정으로 일을 하면서 활동비 약간 정도를 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안에 들어오지 않는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는 ‘우리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 보였다. 보이지 않는 많은 장벽들로 가득 찬 투명한 미로 안에 있는 느낌이다. 같은 목적지를 향하는 미로 안에 있지만 서로 닿을 수 없는 그런 존재들. 분명 이전 세대가 만들어놓은 ‘공익활동’의 판 안에 있지만 우리는 다른 이름으로 같은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공익활동이 아니라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 비영리단체에서 일을 하던 후배는 어느 날 퇴사를 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다. 기업의 기부금을 받아 일을 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기업의 갑질에 너무 진절머리가 난다며 최고의 비영리는 공무원이라는 생각에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좋은 일을 하겠다고 시작한 첫 직장생활이었는데 상처를 받은 모습이 안타까웠다. 이 상처를 꿰매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낮은 연봉과 과중한 업무 속에서 보상, 칭찬도 없이 스스로 일을 통해 보람을 만들고 가치를 찾아내며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격증 시험에는 과락이 있다. 여러 과목 중 하나의 과목이 낮은 점수를 받으면 불합격이다. 직장생활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연봉이 좋거나, 사람이 좋거나, 일이 좋거나’ 이 셋 중 하나가 좋으면 계속 그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과락이 있다. 일이 너무 좋아 만점이라도 사람이 힘들거나 연봉이 너무 낮은 과락이면 방법이 없다. 탈락이다.


그동안 ‘청년 공익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낮은 연봉은 일에 대한 만족감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사회문제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더 낮은 사회적 감수성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사회 변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모여들었던 청년들은 상처를 받고 떠나거나 굳은 살을 다독여가며 지금도 그 길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모든 청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를 누리는 청년 공익활동가들도 있을 테지만, 청년 공익활동가라는 애매한 정체성 속에 부족한 점들을 숨기기보다는 지속 가능하게 나의 일을 해나가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사회를 바꿔간다는 달콤함이 있지만 그 뒷면의 씁쓸함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이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다. 활동가든 직장인이든, 시민사회든 소셜벤처든 우리를 규정하는 단어가 뭐가 중요하랴. 느리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고 분명히 나아가고 있다고, 우리는 우리가 자랑스럽다고 말이다.


글쓴이 이지현은


재단법인, 사단법인, 주식회사를 거쳐 현재는 사회복지법인에서 일하고 있는 프로이직러 직장인이다. 작은 조직들이 많은 비영리, 소셜섹터의 특성 상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지독한 성장 욕구로 '어느 조직에서 무슨 일을 합니다' 를 한마디로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중이다.


※ 본 콘텐츠는 청년재단의「리얼리뷰 청년매거진」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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