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아닌 청년, 로컬에서 청년하다
인구가 적어 어디에 가도 사람을 반복해서 마주치는 폐쇄적인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어떻게 지역사회에 스며들 수 있을까가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숙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반대로 내가 지역사회를 바꾸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기는 감옥이 된다. 지역의 아는 어른이 충고했던 것은 여기 살려면 신뢰 관계를 형성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기존 주민, 기득권이라고 하는 기성세대, 오피니언 리더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의 의사 결정을 하는데 어쨌든 그 사람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였다.
「로컬에서 청년하다」(류석진, 조희정, 정현미. 2021. p24.)
최근 지역의 청년은 지역 소멸, 인구 유출과 유입과 같은 말과 연결지어 이야기되고 있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일 뿐인데, 단지 청년이라는 이유로 앞서 언급한 난제들과 엮여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식이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져보자며 전국의 청년들과 인터뷰했고, 위 이야기는 오랜 타지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U턴한 청년과 인터뷰했던 대목이다.
어떻게 하면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도움이 필요한데 누구를 만나야 하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평범한 질문부터 지역사회에 대한 깊숙한 고민까지 누구나 한 번쯤 할 법한 생각을 담담히 풀어내는 청년들을 만나며 이들의 이야기 그 어디에 지역소멸의 문제가 있으며 인구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 날선 걱정이 묻어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청년들의 다양한 고민의 총합이 ‘지역사회에서 청년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청년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의 삶에서 찾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몇 가지 소개해보려고 한다.
지역을 나가는 청년
지역을 나가는 청년은 주로 진학과 취업을 이유로 지역을 떠난다. 그러나 그 이유 외에도 지역사회의 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떠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계속 살아가는 청년은 능력이 부족한 ‘패배자’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집 자식이 유명한 대학이나 잘나가는 회사에 들어갔다거나,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다는 플랜카드가 걸리는 곳에서 살다 보면 ‘내가 이 지역에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한 청년은 부모님이 고향에서 계속 살고 있는 자신을 남들에게 소개할 때 지역을 떠날 기회와 능력은 되지만 경제적 이유나 거리상의 문제로 남아있기를 선택했다고 얘기할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청년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듣는 출신 학교와 가족에 대한 깊숙한 질문에 지쳤다고도 했다.
언젠가 지역 공무원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받았던 질문이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지역의 청년이 나가지 않고 살게 할 수 있을까요?”였다. 그때 반대로 “선생님 아이가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음에도) 계속 고향에 살겠다고 하면 어떻게 얘기하실 건가요?”라고 질문을 드렸더니 명쾌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오랜 삶의 경험을 가진 어른들에게 능력있는 청년이 지역에 남아있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아주 드물거나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결국, 청년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에 먹고 사는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지역으로 들어오는 청년
지역으로 들어오는 청년은 주로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오거나(U턴), 고향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들어오는 경우(J턴)로 나뉜다. 나름의 이유로 지역으로 들어오기를 선택했지만, ‘한달살이’와 같은 프로그램이 아닌 ‘살아보기’를 선택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지역사회는 저마다 차이가 있지만 아주 투명한 네트워크 안에서 나름의 룰이 적용되는 곳이다. 그 곳에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 그것도 청년이 등장하면 관심갖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보이지 않는 충돌의 과정이 생긴다.
타지로 들어와(J턴) 살고 있는 자신은 이 지역에서 인정받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 고생했는데 고향으로 돌아온(U턴) 청년은 자연스럽게 환대받는 분위기가 힘들다는 청년도 있었다. 또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자식으로만 나를 바라보는 어른들 사이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청년도 있었다. 두 가지 상황을 예로 들었지만, 지역 안으로 들어가 만나보면 저마다의 크고 작은 충돌과 갈등을 겪는 청년들이 많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상황에 놓인 청년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두 지역사회와 혹은 다른 배경의 청년들과 ‘함께 섞여 살아갈 이유’를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지역에 있는 청년
지역의 청년을 이야기하다 보면 중요하게 놓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그 지역을 지키고 있는 청년이다. 우리 지역에 청년이 들어와 살게 할 방법에 골몰하다 보니 정작 지역에 늘 있는 청년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느슨해지기 쉽다. 인구정책의 관점에서 청년을 바라보면 계속 살아온 청년보다는 장차 이 지역에 들어와 ‘살게 될(지 모르는)’ 청년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말에 주소지만 옮겨달라는 전화를 받는다는 적나라한 이야기를 하는 청년도 있었다. 수치상 인구가 늘어나기만 하면 되는 이런 웃픈 현실 앞에 지역의 청년이 놓여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지역을 지키는 청년, 토박이 청년에 대한 관심은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토박이 청년들은 주로 외롭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좁은 지역일수록 운신의 폭이 좁기도 하고, 또래를 만나기 어렵기도 하다.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부담스럽다고 얘기한 청년도 있었고, 반면 외지인에게 지원이 쏠리는 현상을 비판하는 청년도 있었다. 토박이 청년 역시 떠나지 못해 살아가고 있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살아갈 나름의 방법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역, 청년과 살아가기
최근 여러 지자체에서 청년이 지역에 정착하여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의견 수렴의 장(場)을 열거나, 일자리부터 주거까지 저마다의 대책을 내놓기도 한다. 필요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역소멸을 이야기하는 지금이 지역이 청년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지역의 상황이 저마다 다르듯 청년들의 상황도 저마다 다르다. 더불어, 청년이 지역에 살아가는 방법도 저마다 다르다. 청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 살아가는 방식, 관계 맺는 방식 등은 분명히 이전과 달라졌다. 그렇기때문에 어떤 정해진 모델과 포맷을 만들기 위한 성급한 접근은 오히려 청년들로부터 외면당할지 모른다. 이미 지역에 살아가며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며 시도하는 청년들이 있으니 그들로부터 지혜를 얻어야 한다. 어떤 뛰어난 하나의 사례 혹은 인물이 아니라 여러 시도와 다양한 사람들 사이의 연결이 필요한 때이다.
글쓴이 정현미는
민간연구소인 더가능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청년을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인 서울시청년허브,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일했다.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 활동하며 전국의 청년을 만나고 지역청년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로컬에서 청년하다'의 공동저자이기도 하다.
※ 본 콘텐츠는 청년재단의「리얼리뷰 청년매거진」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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