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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재단 Apr 07. 2022

알기 싫어도 알게 되는 그들이 사는 세상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쉬이 말하지 못하는 '청년계급'


신분, 계급 이런 말을 들으면 굉장히 불편하다. 갑오개혁 때 신분제가 폐지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는 않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계급구조가 있다. 특히나 100세 시대인 요즘 청년기본법에서 말하는 청년기는 끽해야 15년도 안 된다. 하지만 이 시기에 여러 계급구조가 발생한다.


필자는 보이지는 않지만 20대 초기, 20대 중후반, 30대의 ‘청년기’에 나타나는 계급과 격차를 생각해보며 34살 나의 청년기를 복기해 본다. 오늘 리뷰는 살면서 경험을 통해 느꼈던 청년기 계급구조가 ‘왜 있을까’를 생각해보고 독자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알기 싫어도 알게 되는 그들이 사는 세상


가끔 ‘아등바등 산다’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다가 곱씹어보면서 ‘내가 열심히 살고 있구나’하며 자기 위안을 던진다. 생각하건데 경쟁사회에서 아등바등이라도 해야 그 어떤 리그에서 도태되지 않고 간격을 유지할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스스로 열심히라도 하면서 괜찮다고 위로를 건네나 보다.


왜 우리는 열심히 그리고 악착같이 노력해야 하는 걸까? 어떤 이가 ‘예전엔 그들이 사는 세상(그.사.세)을 알지 못했다’라고 말해주었다. 정말 그랬다. 아마 나는 누가 얼마를 벌고, 어디에 살고, 무엇을 먹고, 입고, 노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헌데 지금은 SNS나 각종 커뮤니티로 그.사.세를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상대적 박탈감과 비교가 자연스레 피어오르게 된다. 왜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삶의 격차가 크고, 상반되는 오늘을 살게 되는 것일까?



20대 시작, 내가 소비할 수 있는 돈이 계급이 되는 시기

20대 청년기 시작의 시절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흔히 성인이라 불리고 20대 청년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경제활동을 하거나 대학진학을 한다. 나 또한 별다른 생각 없이 대학에 진학하였고 20대 초기를 맞이했다. 그 때를 되돌아보면 내가 입는 것, 먹는 것, 노는 것에 대해 얼마나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는지가 스스로 정한 계급의 척도가 됐다. 유행하는 브랜드를 사야했고, 핫한 음식을 먹어야 했고,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는 영화는 봐야 했고, 여름 겨울 시즌이 되면 친구들과 어디든 여행을 했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생활비 이외에 조금 더 부가적인 비용이 필요했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식당서빙과 아울렛 점원 알바를 틈만 나면 했다. 몸을 이용하고 감정노동을 주로 했던 것 같다. 많지는 않지만 노동의 대가로 수중에 목돈이 들어오면 무척 행복했다. 그 돈으로 친구들과 여행가고, 맛있는 것 사먹고, 부모님께 용돈 드리는 보람을 맛본다.


내가 생각하기엔 20대 초반에는 작은 소비이지만 그걸 할 수 있냐, 없냐로 계급이 나뉘는 것 같다. 더 많이 소비할 수 있으면 상층에 자리 잡고 전혀 소비하지 못하면 리그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그럼 응당 다양한 경험치가 줄게 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찾기가 힘들어 진다. 이 시기에 소비는 나에 대한 투자이자 내면의 나에 대해 알아 가보는 중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활동이나 문화향유를 할 때 최소한의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러면 청년기 초반이 그나마 행복했던 기억으로 자리 잡힐 것 같다.


20대 중후반, 일자리를 찾으며 계급이 나뉘는 시기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중반이 되면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찾는 시기가 된다. 요즘엔 취준 준비생(취업준비를 위한 준비생)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시기가 더 늦춰지고 있다. 나는 소위 잘나가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서 여기저기 지원해보긴 했지만 알긴 알았다. 내가 갈 곳은 대충 어디 언저리인지. 그래서 그런지 동기들도 정말 다양한 취업희망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었다. 대기업에서부터 공기업, 지역 중견기업, 카페 창업, 아는 분 소개 등등 끄트머리에 있는 것이 결국 중소기업 중에서도 그냥 제조업 중소기업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어찌어찌 해서 공공기관에 비정규직으로 처음 일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자가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열심히 하면 당연 정규직이 되는지 알고 실제로도 그렇게 희망고문도 받았으니 말이다. 순진하기도 하고 160만 원 정도를 벌어본 적이 없으니 그걸로 만족하고 좋아했던 것 같다.


다시 주제로 오자면 취준이나 일자리를 구하는 시기는 각기 다르지만 졸업 후 대개 1~2년 정도 지나면 스멀스멀 소식이 들려온다. 주로 대기업이나 대기업 1차 벤더, 공기업, 은행, CF를 내는 기업에 입사한 동기나 친구들은 자랑스레 소식을 먼저 전한다. 어김없이 입사턱을 주제로 모이기도 한다. 이미 입사한 사람, 한참 면접 중인 사람, 취준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나눈다. 일자리를 찾으며 본격적으로 격차가 심화된다고 느꼈다. 연봉, 회사복지, 조직규모 등 이런 대화를 하면 누구는 어깨가 더 올라가고 누군가는 모임에서 점점 사라져 간다. 그 시기엔 어찌나 다들 애사심이 넘치고 평생직장처럼 생각하던지. 그 뒤로는 각자 사회생활로 바빠지며 자연스레 흐려지게 된다.


일자리에 대해 계급이니, 격차니 이야기 하는 것이 가끔은 자격지심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다 각자의 적성이 다르고 진로가 다른 것인데 어찌 결론엔 임금과 회사의 네임밸류가 기준점이 되는 것인지 안타깝다.


일자리를 찾을 때 이런 기준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고 잘 맞는 일이 무엇인지가 기준이 되기 위해 앞선 판단요소의 간극이 조금은 좁혀지길 희망해 본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할 때 좋은 일자리라 생각하는 것 또한 너무 과한 기준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주40시간 이상 일하면서 최저임금이 아닌 보통의 또래와 비슷한 임금을 받고 싶을 뿐이고, 소모품처럼 쓰여 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로 함께 성장하길 원하는 것이고, 재충전을 위한 내 여가와 업무 외 삶을 존중해 주길 바랄 것이다.


중소기업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목돈마련의 기회를 주고 중소기업 근속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는 있다. 하지만 ‘공제만기 되면 퇴사해야지’라고 많이들 생각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 수준의 임금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최소한 임금 때문에 중소기업 기피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적정수준 완충해주면 어떨까?


또 ‘어디서 일한다’가 중요한 만큼 내가 다니는 일터를 주변이 알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 주기적으로 소개 해주는 것은 어떨까?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을 때부터 계급을 나누고 격차를 느끼는 것은 정말이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비영리 공익법인에서 근무하며 청년을 만나고 있다.


지금 나는 30대 중반이 되었다. 현재는 일자리가 중심이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와 내가 형성한 그룹을 잘 가꾸어 가는 것이 최대 과제다. 무슨 일을 하고 어디 다니는지가 그렇게 까지 질문의 화두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니 크게 어필 포인트도 아니긴 하다.


나는 비영리를 추구하는 공익법인에서 일한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에서 샛길로 샜거나, 대기업은 못가니 알아서 적당하게 누울 자리를 본 것일 수 있다. 개개인의 가치관과 기준점은 다르다. 그러기에 임금이나 다니는 곳이 절대적인 일자리를 찾는 척도가 아니길 더더욱 바란다. 20대 중후반 혹은 일자리를 찾는 시기에 스스로 계급을 정하지 않도록 진입장벽이 임금과 네임밸류가 아니길 기대해 보고 싶다.


30대,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도 계급이 되는 시기


보통의 30대 청년들과 같이 전세대출을 받고 대출이자를 꾸역꾸역 내어가며 거주지를 주고 삶을 살아간다. 부동산 이야기를 하면 어마무시하게 많은 의견이 있을 것이다. 거두절미 하고 집값이 비싼데 사냐, 그렇지 않으냐? 자가냐 전세냐? 크게 이 두 가지만으로도 나와 비슷한 연령대 청년들의 시름은 깊어진다. 그래서 주거 사다리라는 것은 있는가? 내 집 마련은 할 수 있는가? 불안을 안고 산다. 불안 종식을 위해 영끌이라도 해서 머리 아픈 고민에서 탈출하고 싶을 것이다. 사회는 엄청 빠르게 변해가고 업데이트 되는데 무엇인지 모르게 주거는 답보 상태인 것 같다. 주변에서 하도 난리를 치니 지금은 부동산 유튜브를 보고 내 집 마련 카페를 기웃거린다. 부린이가 되었다. 자연스런 현상인지,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데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니 아등바등 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가만히 있으면 나만 집도 없이 도태되는 것 같아 더 걱정된다.


한편으로는 서울에 자가가 있는 것만으로도 상위계급장이 달린다. 지방 사람이라 서울에서 원룸 자취만 하는데도 ‘성공했다’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었다. 실상은 더 팍팍한데 말이다. 수도권으로 쏠리고 맹목적인 서울 드림과 지역 불균형은 심화되고 그 결과는 집값으로 이어진다. 물론 과도한 투자나 투기로 오염된 수치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서울에 집 한 채 있으면 바랄게 없겠다. 허무맹랑한데 그렇게만 된다면 매일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올 것 같다. 인서울이라는 리그에 들어간 만족감에서일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청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그리 만든 것도 아니고 청년들이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닌데, 부동산판 오징어게임에 참가해서 등번호를 달고 열심히 게임을 해 이겨야 하는 느낌이 든다.


한참 경제활동을 하는 청년들이 주거로 불안해하고 한아름 걱정을 안고 살고 있다. 조금 더 친절하고 촘촘한 대책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길지 않은 청년기, 적재적소에 개입으로 격차 해소

앞서 주구장창 계급이란 단어를 써왔다. 계급이란 단어는 불편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데 계속 존재하는 것 같다. 내 삶으로 회상해보자면 계급이라는 것은 20대 초반에는 소비할 수 있는 돈의 크기에 따라 정해지고, 20대 중후반에는 일자리로 나누어지고, 30대가 되면 내 집 마련과 사는 곳으로 구분되는 것 같다. 그 이면에는 상대적 박탈감이 존재한다. 피해의식을 가지고 싶지는 않지만 분명 격차가 존재한다. 이를 조금이나마 정책이 메꿔주면 좋겠다. 서두에 말했듯 청년기는 그렇게 길지 않다. 하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이자 많은 것이 결정되는 터닝포인트다. 적재적소에 무엇인가 개입해주면 좋겠다. 그게 금전이든 환경이든 제도이든 말이다.



글쓴이 임대환은


재단법인 청년재단 정책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현재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청년TF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무조정실 청년참여단에 참여하였다. 주요 관심사는 청년정책, MZ세대, 비영리, 기후위기이다.



※ 본 콘텐츠는 청년재단의「리얼리뷰 청년매거진」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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