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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재단 Apr 05. 2022

내가 독일로 떠난 이유

독일 생활 9년차, 독일 직장 생활 5년차 


한국을 떠나 독일로 온 청년들


독일 생활 9년 차. 독일로의 이주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던 나에게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을 접하는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해외 생활 중 가장 많이 만났던 것은 나처럼 한국을 떠나 독일행을 결정한 또래의 한국 청년들이었다. 석사 진학을 위해 독일행을 결정한 J씨, 한국에서 지원한 대학원에 떨어져 해외로 눈을 돌린 P양, 해외 취업에 성공한 L씨, 더 나은 업무 환경을 위해 독일에 도착한 C님, 워킹홀리데이로 해외생활을 경험하고 싶었던 J군. 그들은 모두 저마다 다른 사연과 이유가 있었다. 


독일 유학시절 학기 마지막 발표 날 풍경


10년 전, 나는 건축과 학부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있던 시점에 교환학생으로 독일에서 일 년을 보내게 되었다. 졸업 후 건축설계 사무실에 취직하는 것으로 진로를 결정했지만, 진로에 대한 확신 없이 불안만 가득하던 시기였다. 설계사무실에 취직하는 것이 오래전부터 결정한 진로였고 그 당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막막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학부 시절 인턴쉽과 아르바이트로 이미 건축설계사의 일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학기 중에는 학교 수업과 과제를 병행했고, 방학 때는 설계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 또는 인턴쉽을 했다. 학기 중 과제로 밤을 새우는 일은 당연한 것이었고, 방학 때 일하던 사무실에서는 현상설계* 마감일이 다가오면 수개월 동안 매일같이 야근을 하곤 했다. 작은 아뜰리에에서부터 대형 사무소까지 다양한 규모의 사무실에서 일을 했는데, 그 안에서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와 업무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사무실과 프로젝트의 규모에 따라 나의 역할도 달라졌고 배우는 것도 달랐으며, 조직문화와 분위기도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현상설계란,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건물을 신축할 때 해당 자격을 갖춘 건축가들의 작품을 제안 받은 뒤, 심사를 통해 당선자를 뽑아 본 설계를 의뢰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한국 : 야근과 수직적인 조직문화

야근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업무가 과중해 생기는 야근, 급하게 처리해야하는 업무로 생기는 야근, 퇴근하는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생기는 야근, 팀원의 야근으로 발생하는 야근 등 야근을 해야 하는 이유도 천차만별이었다. 나의 업무를 모두 마치면 정시에 퇴근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퇴근할 때마다 주변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내 분량의 일을 모두 끝냈지만, 야근하는 팀원들을 두고 혼자 퇴근이라도 하면 다음 날엔 어김없이 의리 없는 동료가 되어있었고, 다음부터는 자연스레 다른 팀원의 업무를 떠맡아야만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휴식 시간을 희생하며 일을 효율적으로 빨리 끝내는 것이 손해처럼 느껴졌고, 손해 보기 싫은 마음에 나도 자연스레 팀원들과 어울려 농땡이를 피우기도 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인턴을 하던 어느 방학. 여느 때와 같이 현상설계 프로젝트의 마감으로 회사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회사의 사활이 걸린 큰 프로젝트였고, 그래서인지 매일 서로 다른 상위직급자들이 진행 사항을 체크하러 내려왔다. 그들이 한바탕 의견과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가면 그것들을 반영한 디자인 회의와 수정이 반복되었고, 다음날까지 수정안을 제출해야 했으므로 다시 야근은 시작되었다. 명확한 디자인의 방향성 없이 그저 상급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진행되는 회의와 수정은 모두를 지치게 했고, 더 나아가 팀원들의 사기를 저하했다. 더는 열심히 할 이유를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점차 생기를 잃고 타성에 젖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자, 그저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 듯한 느낌에 미래에 대한 불안은 더더욱 커져만 갔다.


그것은 내가 살고 싶은 미래와는 먼 모습이었다. 일 자체는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그 안에서의 삶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그런 생활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내 모습도 싫었고, 급기야 내가 사랑하던 일을 싫어하게 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슬럼프가 온 것이다. 그런 나에게 일 년이라는 유예기간이 생겼다.


그래, 독일로 가자.

독일 설계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자리


차선이 아닌 최선의 선택이 된 독일행

독일에서 보낸 일년은 나에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전공과 관련하여 독일의 건축 기술이 얼마나 발전이 되었는지 여부를 떠나서, 내가 그곳에서 본 것은 일과 삶의 균형, 그리고 수평적인 조직문화였다. 독일에서는 출근 후 본인에게 주어진 일을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완수한다. 그리고 근무시간이 끝나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도 퇴근에 대해 신경 쓰지 않으니, 주어진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퇴근하는 것이 이익이었다. 휴가를 쓰는 것도 자유로웠다. 정해진 휴가 일수를 본인과 회사 일정에 맞춰 미리 동료들과 상의해서 결정한다. 휴가를 길게 쓴다고 눈치를 주는 사람도 없었다. 보통은 2주, 길게는 4주씩 휴가를 쓰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도 없었다. 큰 조직의 경우 연 초에 일 년 휴가를 미리 제출해 회사 업무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했다. 


개인의 생활이 존중받는 삶. 내가 원하는 삶이 이곳에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나는 독일행을 결심했다.


독일 베를린, 일찍 퇴근한 날이면 종종 찾곤 했던 장소


해외에서의 생활이 생각했던 것처럼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소통을 모국어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해도 몇 배로 피곤하게 느껴졌다. 일상생활에서도 신경은 늘 곤두서 있었고, 특히 일하는 곳에서 갈등이라도 있을 때면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은 맞는지 자기검열이 우선이었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들이 이곳에서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빠른 인터넷도, 친절한 고객서비스도 이곳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다. 생활 곳곳에서 내가 아는 상식과는 다른 것들을 발견했고, 그것들로 인해 사소한 스트레스를 받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정착하기로 한 것은, 이곳에서는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을 그리고 계획할 수 있었다. 나는 일을 위해서 내 개인의 삶을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독일 생활 9년 차. 석사를 마치고 현지에서 취업하는 길을 선택했고, 직장생활 5년 차. 꽤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다.


독일의 조직문화와 직장생활 
설계안에 대해 회의하고 있는 팀원들,  딱딱한 회의 분위기가 아닌 자유로운 근무 분위기


독일의 직장 문화는 수평적이고 의사소통 또한 자유롭다. 물론 이곳에도 직급은 존재한다. 하지만 수직적인 직급이 명확한 우리나라와 달리 직무에 따라 직급이 주어진다. 한 직장에서 근무한 지 20년이 넘지만 일반 사원인 경우도 있고, 3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관리직인 경우도 있다. 직급은 근무기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높은 직급이라고 해서 발언권이 더 많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실무를 잘 파악하고 있는 일반 사원들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고, 상급자일수록 듣는 편이다. 일반 사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리하는 것이 관리직의 주요 업무이다. 둘째, 아무도 내 업무와 근무시간에 지나치게 관여하지 않는다. 본인에게 주어진 일만 성실하게 해낸다면, 그리고 계약에서 명시된 근무시간만 제대로 지킨다면 아무도 나의 퇴근에 관여하지 않는다. 내 개인적인 삶을 회사를 위해 희생할 필요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근무시간 외의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었다.


물론 독일의 직장 생활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인의 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그만큼 실수에 민감하고, 책임소재를 명확히 한다. 본인의 실수가 아닌 일에 대해서는 증거를 명시하며, 해명하기 위해 다른 직원들의 실수를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정이 떨어지기도 한다.


또한 개인의 영역은 철저히 존중하고 터치하지 않는 문화라, 선배의 친절한 지도 및 피드백은 기대할 수 없다. 아무도 나의 개인적인 성장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반영하면서 현재 나의 업무 위치를 파악하고 보완하며 나를 성장시켜나가야 하는데, 그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내가 프로젝트의 어느 부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에는 관심을 두지만, 어떤 점은 실수였는지, 어떤 점을 더 개선할 수 있을지 등의 2차 피드백은 주지 않는다. 나의 전반적인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줄 수 있냐는 질문에, 당황하던 상사의 얼굴이 떠오른다. 피드백이 없는 것을 칭찬으로 알고 스스로 발전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점점 퇴보하게 되고, 뒤처지기 싫어서 자신을 너무 혹독하게 대하다가는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본인 스스로 하는 피드백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객관성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이럴 땐 한국의 선후배 문화가 그리워진다.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독일에서 살면서, 한국에서는 할 필요가 없는 고민과 내적 갈등을 겪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의 생활이 더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곳에서는 미래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성장하는 것을 느끼고,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을 그리고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그와 함께 미래에 대한 불안도 점점 잦아들었다.


한 방송에서 故신해철이 청년실업에 관해 얘기한 대목이 눈에 띈다. 내가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상황에서 흘리는 땀과 아무것도 디자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흘리는 땀은 다르다고. 미래가 깜깜한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할 수가 없다고.


현재 청년들은 이전의 어느 세대보다도 스펙이 높은 세대이지만, 동시에 실업률과 불안함도 어느 때보다도 높다.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스펙과 자기계발이 아니라, 미래를 꿈꾸고 계획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이 아닐까. 


퇴근 무렵의 베를린



글쓴이 조혜진은

독일 이주 9년 차로 한국과 독일에서 건축학과 학・석사를 마쳤다. 실무 수련 후 독일연방 건축사 자격을 취득했고, 현재 독일 베를린에 소재한 건축설계 사무소 HENN에서 일하고 있다.


※ 본 콘텐츠는 청년재단의「리얼리뷰 청년매거진」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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