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만 먹으면 죽는 약
이현영
올해 구십이 된 증조할머니
명절 때마다 큰아버지 손 꼭 붙들고
-종득아, 할매 부탁 좀 들어 주라
부산, 어느 시장에 가몬, 한 알만 먹어도 죽는 약이 있다 카네
그 약 쫌 사 주라,
늙으면 죽어야 되는데…… 암만 캐도, 그 약을 묵어야 될란 갑다
이번 추석에는
큰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할매, 사 왔어예
-으잉, 뭐를 사 왔다꼬?
-부탁한 약 있잖아예,
시장 다 돌아댕겨서 어렵게 구했어예
동그란 약을 내보이자마자
낯빛이 금세 달라지는 할머니
손바닥에 억지로 약을 쥐어 주며
-할매, 한 번 드시 보이소
입술을 실룩대며 울 것 같은 얼굴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약 껍질을 돌아앉아 까는 할머니
한동안 쳐다보더니 혀끝에 살짝 갖다 댄다
-아이고, 우찌, 이걸 구해 왔노, 옛날에 묵든 십리사탕이그마,
요느무 자슥이, 할매를 놀려 묵네,
내싸 마, 죽다 살아났다
(제11회 푸른문학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