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 대첩
이월이 다가올 즈음 냉이 생각이 자꾸 났다. 한적한 들판에서 냉이를 실컷 캐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일었다. 어디에나 있는 듯해도 막상 찾으려면 좀처럼 안 보이는 게 쑥이나 냉이 같은 푸성귀다. 도시 외곽에 사는 지인에게 냉이가 올라오냐고 물었더니 반응이 시큰둥했다. 농사짓는 이웃 쪽 상황도 비슷했다. 냉이 캐기는 꽃대가 올라오면 끝난다. 몇 해 전, 모처럼 찾아간 들판은 절반 넘게 냉이꽃으로 바뀐 터라 재미를 못 보고 돌아왔었다.
이월로 접어든 첫 휴일 오후, 남편은 연일 냉이 타령인 아내 입을 막으려는 속셈인지 냉이를 캐러 가자고 먼저 말을 붙였다. 집에 있으니 갑갑한 마음에 바람 쐬러 가자는 말이겠지 싶어 따라나섰다. 그러면서 칼이며 큰 봉지까지 챙겨 든 마음은 뭘까.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점찍어둔 데가 있기라도 한 듯이 자신만만하게 차를 몰았다.
고요한 시골로 접어들었다. 이름도 낯선 마을에 들어서서 꼭대기 집까지 유유히 차를 몰고 곧장 빠져나왔다. 땅에 발을 딛지도 않았으면서 이 마을에는 냉이가 없다고 섣불리 판단한다. 한 달 정도 지나면 키가 자란 냉이꽃이 ‘나 여기 있지롱!’하며 쑥 올라올 게 뻔하다. 다시 차는 달렸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마음이 끌리는 외진 곳에 무작정 정차하고 나만 내려서 길섶 둘레를 톺아보았다. 작은 연못이 보였다. 재미나게 놀던 새들이 인기척에 놀라서 날아갔다. 술래에게 들켜 흩어지는 아이들 같다.
큰 정자나무가 장승처럼 서 있는 마을에 닿았다. 들머리에서 영락없이 냉이가 있겠다 싶은 데를 발견했다. 쪼그리고 앉아 잎을 떼서 코에 대 보았지만, 냉이 향이 안 났다. 미심쩍더니 역시 아니었다. 예전에도 생긴 게 냉이인데 향이며 뿌리까지 다른 풀을 본 적 있다. 오랜만에 또 속았다.
엉거주춤 앉아 절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고 낡은 트럭이 멈춰 섰다. 60대 초반의 농부가 냉이 캐러 왔냐며 말을 건넸다. 캘만한 데가 있다고 따라오라며 부러 차를 후진했다. 우리를 초대한 데는 마늘밭이었다. 긴 고랑이 다섯 개 정도인 제법 큰 규모의 밭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고랑 사이에 무더기무더기 초록 풀들이 가득했다. 키를 낮춰 살펴보니 찾아 헤매던 냉이였다.
개쑥갓과 개불알풀 그리고 냉이가 어울렁더울렁 있는데 냉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내 눈에는 마늘밭이 아니라 냉이밭이다. 그것도 너무나 잘 자란 냉이다. 크기도 알맞고 빛깔도 햇살에 잘 그을린 그럴 수 없이 최상품이다. 나는 땅에 납작 붙은 딱지 같은 모양새를 으뜸으로 친다. 농부는 처음 보는 아줌마의 호들갑이 흐뭇한지 연장까지 창고에서 두 개나 내어줬다. 시골 인심이 좋다는 말은 옛말이 아닌 참말이었다.
더없이 광활한 평야로 보이는 냉이밭. 몇 년 쉬었던 냉이 사랑을 오늘 하루로 만회할 참이었다. 이게 뭐라고 가슴이 설레었을까. 끝이 뾰족한 연장이 흙에 닿으면 겁먹은 흙이 순순히 냉이를 내어주었다. 날이 좋아서 흙은 햇빛을 머금어 카스텔라처럼 폭신했다.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마구마구 캐서 봉지에 담아나갔다. 땅 짚고 헤엄치듯 쉬웠다. 한 자리에서 몸을 시계방향으로 째깍째깍 돌리면 금세 한가득 차버렸다. 냉이 뿌리는 리본을 묶어도 될 만큼 길었다.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비닐하우스를 지나가면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크게 틀어놓는 곳이 많더니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두 눈이 냉이를 확인하면 손은 냉이를 캐고 귀는 라디오 소리에 꽂혀 신체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입마저 한 박자 굼뜨게 움직이는 남편을 채근하는데 나섰다. 노동요를 들으며 일해서인지 내내 흥겨웠다. 라디오에서는 가수 김연자가 ‘아모르파티’를 라이브로 부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냉이 파티로 개사해서 불렀다.
실컷 캐고 또 캐도 처음과 달라 보이지 않는 냉이밭. 땅은 언제나 차고 넘치게 내어준다. 씨 하나가 흙과 만나서 도모하는 꿍꿍이는 사람 따위는 엄두도 못 낼 도량이다. 사람과 짐승이 나눠 먹고 그러고도 남아서 흙으로 돌아간다. 나에게 간택되지 못한 냉이들은 이내 곱살한 꽃으로 마늘밭을 덮을 것이다. 소금을 뿌린 듯 핀 게 메밀꽃만은 아닐 터이다. 봄바람이 불면 분분히 날릴 꽃잎 한 장 없을 냉이꽃이다. 그럴지라도 나울짝나울짝 속없이 웃을 냉이꽃들이 그려진다.
냉이밭이 1차 작업장이면 집은 2차 작업장이다. 숨고르기 할 틈이 없다. 두 사람이 들고 온 묵직한 냉이 봉지를 김장 전용 대야에 펼쳤다. 얼마나 꾹꾹 욱여넣었는지 발효된 반죽 덩이처럼 어마어마하게 부풀었다. 맨 먼저 냉이를 씻었다. 재바른 손놀림에도 흙이며 찌꺼기는 끝도 없이 나왔다. 밤새 씻어도 나올 기세다. 냉이 뿌리는 씻을수록 제 색을 찾아서 하얀 명주실 같았다.
거저라고 너무 욕심을 부렸을까. 야간작업도 불사해야 했다. 거실에서 뽀득뽀득 세수시킨 냉이가 든 바구니를 옆에 끼고 퍼질러 앉았다. 한땀 한땀 누런 잎이나 지푸라기를 뗐다. 지긋지긋한 가내수공업이네, 개미지옥이네, 하는 푸념이 추임새다. 찌릿한 어깨 통증을 스스로 끌어안은 고단한 저녁이 깊어갔다.
이런 사태를 미리 간파한 여우 같은 아내는 막걸리를 준비했다. 술 힘으로 이겨내야 할 만큼 냉이 손질은 버거웠으니. 술안주로 냉이고추장무침을 내놓았다. 남편이 냉이국이나 찌개보다 좋아하는 냉이 반찬이다. 거나하게 한 잔씩 들이켜고 다시 냉이와 씨름했다.
모든 나물이 그렇듯 사람 잡아먹게 많아 보이지만 데쳐보면 양이 턱없이 쪼그라든다. 냉이도 예외일 순 없다. 도둑맞은 느낌이 들 정도로 줄어들 줄이야! 풀이 죽어 한마디 했다.
“애걔걔, 데치니까 얼마 안 되네. 여보! 주말에 한 번 더 갈까?”
“마, 됐다. 냉이만 먹다 죽을 끼가!”
“그래그래, 내년에 가자.”
점심 먹고 가벼이 집을 나서 냉동실에 차곡차곡 쟁여 넣는 것으로 냉이 대첩은 끝났다. 시계를 보니 밤 열두 시가 넘었다. 두고 온 냉이들이 눈에 밟히지만 일 년에 한 번 하는 연례행사로 마무리했다. 남편의 말이 백번 맞는다. 먹거리가 어디 요것만 있을까. 냉이밭을 빠져나오면서 두릅이며 엄나무 순이 삐죽빼죽 올라오는 걸 벌써 봐뒀는데 뭘.
[에세이문학 2024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