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가 늘 '차악'인 이유 :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

-포켓몬으로 증명하는 완벽한 민주주의가 불가능한 수학적 이유

by 묘한 경제

※ 본문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를 포켓몬스터 게임의 규칙을 통해 풀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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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 투표소 커튼 뒤, 도장은 들었지만 찍을 사람이 없어 길게 한숨 쉬어본 적 있으신가요?

"최선을 뽑고 싶지만, 사표가 될까 봐 어쩔 수 없이 차악을 뽑는" 이 찝찝한 경험. 우리는 이것을 '정치적 비극'이라 부르지만, 수학자들은 '필연적 모순'이라 부릅니다.


놀랍게도 이 복잡한 민주주의의 딜레마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아닙니다. 바로 포켓몬스터의 태초마을 '오박사 연구소'입니다.

혹시 포켓몬을 전혀 모르셔도 걱정하지 마세요.

이 게임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우(Kenneth Arrow)의 난해한 정리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쉬운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는 가벼운 게임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이 글의 끝에서는 "왜 완벽한 민주주의가 수학적으로 불가능한가?"에 대한 서늘한 논리적 증명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자, 그럼 가벼운 마음으로 오박사의 연구소로 들어가 봅시다.

우리가 믿었던 '합리적 선택'이 어떻게 배신당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요.

※ 바쁘시거나 포켓몬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밑줄 친 부분과 마지막 문단(왜 이 네 기둥은 함께 서 있을 수 없는가?)만 확인하고 넘기셔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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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 세 마리의 포켓몬이 있단다. 이 중 하나를 골라보렴."

포켓몬 마스터를 꿈꾸는 열 살 소년들에게 건네는 오박사의 인자한 미소. 하지만 경제학자의 눈으로 보면 이 장면은 공포 영화의 도입부와 같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을 준 것이 아니라, 수학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민주주의의 모순을 선물한 것이니까요.

앞서 언급했던 케네스 애로우는 증명했습니다. 우리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믿는 투표 방식은 사실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요.

오늘은 '완벽한 민주주의의 조건'을 차례로 모두 박살낸 포켓몬 세계관을 통해 완벽한 민주주의는 없다고 주장한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를 해부해 봅시다.


먼저, 완벽한 민주주의란 무엇일까요? 케네스 애로우는 완벽한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네 가지 조건들을 먼저 정리합니다.


1. 이행성 : 가위바위보식 민주주의는 성립할 수 없다.

합리적인 사회라면 선택에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즉, A보다 B가 좋고(A> B), B보다 C가 좋다면(B> C) 당연히 A가 C보다 좋아야 하죠(A> C). 이를 이행성(Transitivity)이라 부릅니다.

논리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얘기 아닐까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단적으로 아까 오박사님께서 주신 세 마리 스타팅 포켓몬을 생각해 보죠. 물은 불을 이기고, 불은 풀을 이기는데, 왜 풀은 다시 물을 이기는 걸까요?

제목 없음.png 물은 불을 끄고, 불은 풀을 태우지만, 풀은 물을 빨아들인다. 스타팅 포켓몬은 이행성을 만족하지 않는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더 일반적인 게임인 가위바위보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위는 가위를 이기고, 가위는 보를 이기는데 바위가 보를 이기진 않죠. 이처럼 이행성은 당연하다고 치부하기엔 현실에서 너무나 쉽게 깨져버립니다.

그래서 경제학자 애로우는 이 조건이 '완벽한 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최후의 보루라고 보았습니다. 만약 이 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의사결정은 '무한 루프'에 빠집니다.

어떤 후보를 내놓아도,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그것을 압살할 수 있는 천적이 반드시 존재하는 곳. 포켓몬 세계가 밸런스가 맞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수학적 일관성이 박살 났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은 이를 '콩도르세의 역설'이라 부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투표의 무한 굴레. 이를 막는 것이 애로우가 지적한 첫 번째 조건, 이행성의 존재 이유입니다.


2. 비독재성 : 우리는 리자몽을 뽑았는데, 당선된 건 피카츄?

민주주의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단 한 명의 선호가 전체를 지배하는 '독재'일 것입니다. 애로우는 이 위험을 배제하기 위해 비독재성(Non-dictatorship)을 두 번째 조건으로 못박았습니다.

하지만 포켓몬 세계는 또다시 이 조건을 박살냅니다. 이곳의 의사결정은 '지우(그리고 그 뒤의 제작진)'라는 절대적 독재자의 선호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으니까요.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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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식이 말하는 바는 잔인할 만큼 명쾌합니다. 괄호 안의 P1, P2, P3 등등은 저희와 같은 팬들의 선호도죠. 하지만, 실제 결과는 지우의 선호도(Pjiwoo)에만 영향을 받습니다. 1세대가 처음 나왔을 때, '불을 뿜는 드래곤'이라는 압도적인 간지에 팬들이 리자몽을 연호해도-지우(와 제작진)가 피카츄를 주인공으로 낙점하는 순간부터 영원히 포켓몬의 상징, 마스코트는 피카츄가 된 것처럼 말이죠. 독재자의 마음이 곧 사회의 법이 되는 순간, 시스템은 민주주의의 상징인, 투표 용지를 무력화한다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이행성(가위바위보)'와 '비독재성'이라는 비교적 직관적인 반례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가 "완벽한 이론"이라 불리는 진짜 이유는 바로 다음 조건에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3. IIA의 습격: 투표지에 없는 유령 초염몽이 승패를 가른다

무관한 대안으로부터의 독립성(IIA). 말이 좀 어렵습니다. 쉽게 말해 짜장면(A)과 짬뽕(B) 중 짜장면이 더 좋았다면, 메뉴판에 '품절된 볶음밥(C)'이 추가된다고 해서 갑자기 "그럼 난 짬뽕!"이라고 마음이 바뀌면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상식적으로 상관없는 볶음밥의 존재가 짜장 vs 짬뽕의 대결 구도를 흔들어서는 안 되니까요.

역시 당연해 보이는 이 명제를, 이번에도 포켓몬의 반례를 들어 설명해 봅시다.

3세대 《루비·사파이어》 시절, 우리 반의 '대세'는 확고했습니다.

제목 없음.png '대세' 번치코와 '힙스터' 나무킹의 평화로운 양당 체제.

다수파(불꽃): "야, 남자는 무조건 불꽃/격투 타입이지." (15명 지지) → 번치코(A)

소수파(풀): "난 남들이 안 쓰는 거 쓸 건데?" (8명 지지) → 나무킹(B)

누가 봐도 우리 반의 사회적 선호는 번치코(A)였습니다. 나무킹(B)을 고르면 "힙스터 병 걸렸냐?" 소리를 들어야 했죠.

그런데 옆 반 친구가 가져온 잡지에서 4세대 신규 포켓몬 초염몽(C)이 유출됩니다. 번치코와 똑같은 '불꽃/격투' 타입인데, 속도는 더 빠르고 간지나는 '완벽한 상위 호환'이었죠.

제목 없음.png 투표지에 이름도 올릴 수 없는 4세대의 유령, 초염몽의 등장. 무관해야 할 대안이지만...

문제는 우리 반 애들은 아직 3세대를 플레이 중이라 초염몽을 절대로 가질 수 없다는 겁니다. 투표 대상조차 아니죠(Irrelevant Alternative). 그런데 이 '피선거권도 없는' 초염몽의 등장이 확고했던 번치코 파를 내분으로 몰고 갑니다.

"야, 번치코 이제 보니까 별론데? 완전 짭초염몽 아님?"

결과적으로 번치코를 지지하던 15명 중 10명이 "번치코는 이제 한물갔다"며 지지를 철회해버립니다. 그들의 눈높이는 이미 가질 수 없는 미래의 초염몽(C)에 가 있으니까요.

반면, 뚝심 있는 풀 타입 소수파 8명(나무킹 지지)은 초염몽이 나오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원래 풀 타입을 좋아했기 때문이죠.

번치코(A) 파: 15명 → 5명 (떡락)
나무킹(B) 파: 8명 → 8명 (유지)
"요즘 누가 촌스럽게 번치코(A) 쓰냐? 유니크한 나무킹(B)이 낫지.(?)"

아이들은 여전히 '불꽃'을 '풀'보다 좋아합니다. 하지만 가질 수도 없는 제3의 대안(초염몽) 때문에 불꽃파가 분열하면서, 아이들의 진심과는 상관없이 '나무킹이 대세'라는 이상한 결과가 도출된 거죠. 이것이 바로 애로우가 경고한 민주주의의 수학적 결함, 표 갈라먹기(Vote Splitting)의 현장입니다.

선거철만 되면 왜 그렇게 '후보 단일화'에 목숨을 거는지 이제 이유가 보이시나요?

가질 수 없는 이상향(C) 때문에 현실의 최선(A)을 버린 결과 차악(B)이 선택되는 것. 경제학은 이를 '비합리적 선택'이라 부르지만, 우리는 이를 민주주의의 현실적 설계 결함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것을 피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애로우가 말한 완벽한 민주주의의 세 번째 조건, '무관한 대안으로부터의 독립성(IIA)'이었습니다.


4. 만장일치의 원칙 무시: "비버통이 삼켜버린 파레토 효율"

이건 쉽습니다. '모든 구성원이 A를 원한다면 사회는 마땅히 A를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만장일치의 원칙(Pareto Efficiency)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 같죠?

하지만 포켓몬의 세계, 특히 제가 경험했던 4세대에서는 이 원칙이 '비버통'이라는 존재에 의해 무참히 짓밟힙니다.

[우리의 만장일치 선호: 최강의 6인 엔트리 (A)]

우리는 모두 꿈꿉니다. 전설의 포켓몬과 최애로 꽉 채운 '완벽한 6마리의 슬롯'을요. 그 누구도 소중한 엔트리 한 칸을 멍청하게 생긴 비버에게 내주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의 강요: 스토리 진행 셔틀의 비극 (B)]

하지만 시스템(제작진)은 우리에게 '풀베기, 괴력, 락클라임'이라는 숙제를 던집니다. 이들은 전투에 쓸 수도 없는 약한 기술인데도, 이 기술들을 배우지 않으면 스토리 진행이 불가능하죠. 그러면서 강요합니다.

"전투도 못 하는 짐꾼(비전머신 셔틀) 한 마리를 무조건 데리고 다녀라."

결국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하나의 슬롯에 해당 모든 기술을 배우는 비버통(B)을 채워 넣습니다.

구성원(게이머) 모두가 더 효율적인 대안(A)을 원함에도, 강제로 비효율적인 대안(B)이 선택되는 모순.

우리는 이것을 '어쩔 수 없는 전통'이라 불렀지만, 경제학은 이를 '제도에 의한 파레토 최적 위반'이라 부릅니다. 우리의 투표(선호)가 아무리 합리적이어도, 시스템이 구리다면 결과는 언제나 '비버통'일 수밖에 없다는 서글픈 증명이죠.


왜 이 네 기둥은 함께 서 있을 수 없는가?

이제 포스트의 핵심 질문을 던질 차례입니다.

"저 네 개의 원칙을 모두 무시해버린 포켓몬 세계와 다르게, 겉보기에 상식적인 저 조건들을 잘 지키면 안돼? 규칙을 좀 잘 정하면 저 조건을 다 지키는 완벽한 민주주의 시스템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경제학자 애로우는 차갑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합니다. "그건 불가능해."

애로우는 수학적 증명을 통해 "이 조건들을 동시에 모두 만족시키는 함수는 없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특히 이행성(합리적 순위), 만장일치의 원칙(시민의 뜻), IIA(소신 투표)를 지키려 하면, 필연적으로 다음 두 가지 중 하나의 결과로 귀결됩니다.(수학적 증명은 최소화하겠습니다.)


모순 1: 순환의 늪 (이행성 붕괴)

앞서 언급했듯, 자유로운 투표를 허용하면 '콩도르세의 역설(Condorcet Paradox)'이 발생하게 됩니다. 가위바위보, 스타팅 포켓몬으로 예시를 든 가장 '만만한' 첫째 조건. 이행성이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가족의 점심 식사로 예시를 들어보죠.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3대가 모이는 식사자리입니다.

각자의 선호도는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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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셋은 각자 나름의 확고한 취향(A> B, B> C면 A> C)을 가진 합리적인 사람들입니다.

"민주적으로 다수결로 정하자!"며 양자택일 투표를 시작하는 순간, 이 화목한 가족은 혼란에 빠집니다.

Round 1: 국밥 vs 짬뽕

국밥 승리 (2:1) : 할아버지는 당연히 국밥, 아들도 기름진 짬뽕보단 국밥이 낫다며 할아버지 편을 듭니다.

Round 2: 승자(국밥) vs 파스타

파스타 승리 (2:1) : 아들은 최애인 파스타, 아버지도 "국밥은 평생 먹었다"며 아들 편을 듭니다. 즉, 국밥은 파스타한테 집니다.

자, 그럼 논리적으로 '최종 승자'는 파스타여야겠죠? 짬뽕을 이긴 국밥을 이겼으니까요. 그런데 파스타를 '최약체' 짬뽕과 붙여보면 황당한 일이 벌어집니다.

Round 3: 파스타 vs 짬뽕

짬뽕 승리 (2:1) : 아버지는 최애인 짬뽕, 할아버지는 "파스타는 도저히 못 먹겠다"며 차라리 짬뽕을 택합니다. 이행성(A> B, B> C면 A> C)이 성립하는 '합리적인' 개인들을 모아놓았더니 이행성이 박살나버렸습니다!

세 사람은 영원히 밥을 먹으러 갈 수 없습니다. 메뉴판을 들고 무한히 뱅뱅 도는 이 상황. 개인의 취향은 멀쩡한데 집단의 결정은 '결정 장애'에 빠지는 미친 상황. 이것이 바로 콩도르세의 역설입니다.


모순 2 : 독재자의 탄생 (비독재성 붕괴)*

이 지옥 같은 무한 루프(국밥> 짬뽕> 파스타> 국밥...)를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이 혼란을 지켜보던 가장 '큰 어른',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쾅 내려놓으며 선언하는 것이죠.

"시끄럽다! 내 돈 내고 내가 사주는 거니까, 토 달지 말고 무조건 국밥 먹으러 가!"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됩니다. 아버지와 손자가 파스타를 원하든 짬뽕을 원하든, 다수결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가 국밥을 원하면, 우리 가족(사회)의 결론은 무조건 국밥입니다.

이 상황에서 애로우의 조건들을 확인해봅시다.

이행성을 만족하나요? 네. 할아버지의 확고한 취향(국밥> 짬뽕> 파스타)이 곧 가족의 취향이 되었으니, 더 이상 가위바위보처럼 물고 물리는 혼란은 없습니다.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나요(IIA를 만족하나요)? 네. 옆 가게에서 피자를 팔든 말든, 할아버지는 국밥만 바라봅니다.

모든 수학적 모순이 깔끔하게 해결되었습니다. 단, 딱 한 가지 대가를 치렀을 뿐입니다. 바로 '민주주의'를 쓰레기통에 처박았다는 대가죠.

애로우는 이를 '독재자의 존재'라고 정의했습니다. 구성원 전체의 합의보다 단 한 명의 선호가 우선시되는 사회. 수학적으로 완벽한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역설적으로 민주적인 절차를 포기하고 '독재자'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민주주의의 설계도는 우리에게 잔인한 양자택일을 요구합니다.

"너희가 합리적인 결과(순환 없는 순위)를 원한다면, 민주주의(투표)를 포기해라.
반대로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다면, 결과가 뒤죽박죽 엉망이 되는 꼴(순환)을 견뎌라."

케네스 애로우의 증명은 우리에게 서늘한 절망을 안겨주는 듯합니다.

"완벽한 이상은 없다." "투표는 영원히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투표소 커튼 뒤에서 느꼈던 그 찝찝함은 우리의 부족함 탓이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민주주의와 투표'라는 시스템 자체가 태생적으로 품고 있는 수학적 한계였으니까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저는 이 차가운 불가능성 정리에서 묘한 위로를 얻습니다. 우리가 늘 '차악'을 선택해야만 했던 이유가, 우리가 비겁해서가 아니었음을 증명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모순이 없는 완벽한 정치는 '독재'라는 치트키를 쓸 때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손쉬운 치트키의 결말이 무엇인지 역사를 통해 배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꺼이 불완전함을 택했습니다. 비록 가위바위보처럼 물고 물리는 혼란이 있을지라도, 때로는 전략적 씁쓸함이 있을지라도 누군가 한 명의 뜻대로 세상이 좌지우지되는 '완벽한 독재'보다는 낫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음 선거철, 투표소에서 또다시 한숨이 나오더라도 너무 괴로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손에 든 도장은 '최선'을 찾아내는 지팡이가 아닙니다. 그저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이라도 걸러내려는, 그 구질구질하지만 숭고한 브레이크입니다.

완벽한 포켓몬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우는 피카츄가 약점이 많다고 해서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불완전한 파트너와 함께 기어이 리그 우승을 향해 걸어 나갔죠. 민주주의도 그렇습니다. 수학적으로 불가능하고, 모순투성이며, 늘 우리의 선택을 배신하는 이 불완전한 시스템.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배라면 우리는 구멍 난 곳을 메워가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완벽하지 않기에 우리는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 고민하는 과정이야말로 수학 공식 따위는 담아낼 수 없는 '민주주의의 진짜 가치'일지도 모릅니다.


* 심화 학습 : ['엄밀함'을 위한 보너스 트랙]- 모순 2의 수학적 증명

I. 증명 목표

우리는 "사회 전체(모두)가 가진 결정권을, 쪼개고 쪼개서 결국 한 사람에게 귀속시킬 수밖에 없음"을 보이면 됩니다.

1단계: '결정권'의 정의

먼저 '결정권 집단(G)'을 정의합시다.

집단 G에 속한 모든 사람이 "A가 B보다 좋다"라고 할 때, 나머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사회적 결론이 A > B로 난다면, 이 집단 G는 결정권을 가졌다고 합니다.

시작점: 만장일치의 원칙에 의해, '전체 인원'은 확실히 결정권 집단입니다. (모두가 A를 원하면 A가 되니까요.)

2단계: 집단 쪼개기

이제 이 '전체 집단'을 두 개의 하위 그룹으로 쪼개 봅시다.

그룹 1: 절반의 사람들

그룹 2: 나머지 절반

이를 위해 가상의 투표 상황(3개의 대안 A, B, C)을 만듭니다.

[투표 시나리오]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투표했다고 칩시다.

그룹 1: A > B > C

그룹 2: B > C > A

이제 IIA(무관한 대안의 독립성)만장일치의 원칙을 적용해 봅시다.

B vs C를 봅시다. 그룹 1: B > C 그룹 2: B > C. 모두가 B를 C보다 좋아하므로, 만장일치의 원칙에 의해 사회적 결론은 B > C입니다.

A vs B를 봅시다. 그룹 1은 A > B를 원하고, 그룹 2는 B > A를 원합니다. 싸움이 붙었네요. 여기서 사회적 결과는 A가 이기거나, B가 이기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여기서 만약 사회가 A > B라고 결론 내렸다고 칩시다. (그룹 1의 손을 들어줌).

이제 이행성 원리를 적용합니다.

사회는 A > B라고 했다. (가정)

사회는 B > C라고 했다. (만장일치의 원칙에서 도출했던 결과)

따라서 사회는 A > C여야 한다.

그런데!!

투표용지를 다시 볼까요?

그룹 1: A > C

그룹 2: C > A (!!!)

그룹 2는 죽어라 C가 A보다 좋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결론은 논리적 일관성(이행성)을 유지하기 위해 강제로 A > C가 되어버렸습니다.

즉, 그룹 1의 선호(A > C)가 그룹 2의 반대를 묵살하고 관철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룹 1은 사실상 결정권을 가진 집단입니다.

3단계: 극한으로 몰아가기

위의 논리는 "전체 집단"을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눴을 때, 반드시 둘 중 한 그룹은 결정권을 가져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럼 이 짓을 계속 반복해 봅시다.

전체 인원(100명)은 결정권이 있다.

반으로 나눈 50명 중 한 그룹은 반드시 결정권이 있다.

그 50명을 또 나눈 25명 중 한 그룹은 결정권이 있다.

...

최후의 1명이 남을 때까지.

최후의 1명을 i라고 합시다.

이 사람 i가 A > B라고 하면, 나머지 99명이 반대하더라도, 수학적 논리(이행성과 IIA)를 깨뜨리지 않으려면 사회는 A > B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이 i을 우리는 독재자라고 부르게 됩니다.


본 글은 케네스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를 설명하기 위한 교육적 목적의 비평이며, 삽입된 이미지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된 참고용 이미지입니다. 캐릭터의 저작권은 Pokémon/Nintendo/GAME FREAK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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