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나리 복불복과 임원진 고연봉의 비밀

-<1박 2일> 야외취침으로 보는 승자독식 '토너먼트 이론'

by 묘한 경제

※ 본문은 <1박 2일 시즌1>의 잠자리 복불복을 통해 에드워드 라지어와 셔윈 로젠의 '토너먼트 이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우리는 '주인-대리인 모형'을 <개구리 중사 케로로>에 빗대어 살펴보며, 조직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적절한 인센티브가 필수적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렇다면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려 합니다.

'운'이 지배하는 무대와 '실력'이 지배하는 무대. 만약 여러분이 조직의 관리자라면, 이 둘 중 어느 쪽에 더 극단적인 인센티브(보상 격차)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십중팔구는 후자, 즉 '실력이 작용하는 무대'라고 답하실 겁니다. 능력이 뛰어나고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일수록 그에 합당한 파격적인 보상을 주어야 사람들이 더욱 헌신할 것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직관적인 믿음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살펴볼 경제학의 대답은 이러한 직관을 보기 좋게 배신합니다. 정답은 놀랍게도 '운이 작용하는 무대'입니다. 실력이 지배하는 판에서는 굳이 보상 격차가 크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이지만, 운이 크게 작용하는 판에서는 인센티브의 격차가 극단적으로 크지 않은 이상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믿기 어려우시다면 경제학자들의 복잡한 그래프는 잠시 접어두고, 리얼 야생 로드 버라이어티 <1박 2일>의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멤버들의 치열한 경쟁과 까나리 비린내 속에, 직장인들의 영원한 미스터리인 '인센티브의 비밀'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 아스팔트를 달리는 이유 : '실력'의 세계와 정직한 땀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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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을 뻘뻘 흘리며 전력 질주하는 MC몽, 이승기. 그들의 목표는 단지 '야외취침 1회 면제권'일 뿐이다.

<1박 2일> 전북 장수 편, 멤버들은 '달리기 경주'로 승부를 겨루었습니다. 1등 상품은... 고작 '야외취침 1회 면제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왜 그렇게 땀을 흘리며 뛰었던 것일까요? '방송 분량' 이외의 무언가가 숨어있진 않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이 시합이 순도 100%의 '실력'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한 발짝 더 뛸수록, 숨을 한 번 더 헐떡일수록 따뜻한 방바닥에 누울 수 있는 확률이 정직하게 올라갑니다.

땀방울(노력)과 결과가 투명하게 이어지는 환경에서는 굳이 어마어마한 보상을 걸지 않아도 사람들은 스스로 최선을 다해 뜁니다. "열심히 하면 확실히 결과를 손에 쥘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 그 자체가 최고의 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 10주 면제권에도 심드렁한 이유 : '운'의 세계가 낳은 무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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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1박 2일- 강원 정선 동강 편>, 10주 간 야외취침을 빼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에도 은지원과 MC몽은 거절한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앞서 1회 면제권 하나를 얻기 위해 아스팔트 위를 전력 질주하던 사람들이, 왜 '동강 편'에서 제안한-10주 간 야외취침 면제. 무려 10배나 큰 보상 앞에서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외면하는 것일까요? 이는 결코 배가 불러서가 아닙니다. 지금 이들 앞에 펼쳐진 판은 철저하게 '운'이 지배하는 복불복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집중해 봤자, 결국 '까나리+황석어 젓갈 김밥'이 예상보다 더 끔찍한 비린내를 내는 순간 모든 것이 날아갑니다.


이처럼 노력과 결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상황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계산을 끝마칩니다. "어차피 내가 용을 쓴다고 결과가 통제되는 것도 아닌데, 굳이 기운을 뺄 필요가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운이 크게 작용하는 환경에서는 보상이 웬만큼 극단적으로 크지 않고서는 사람들이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는, 씁쓸하면서도 현실적인 인간의 본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 직관의 배신 : 운이 지배할 판이라면, 판돈을 끝까지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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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에 무기력해진 멤버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전원 실내취침'이란 보상 정도는 되어야 한다.

같은 회차, 심드렁하던 멤버들 앞에 PD가 최후의 베팅을 던집니다.

"여섯 분 모두 실내 취침하게 해드릴게요!"

이 극단적인 제안이 떨어지자마자, 불과 조금 전까지 '관심 없다'고 외치던 멤버들의 눈빛이 매섭게 돌변합니다. 그리고 기꺼이, '까나리+황석어 젓갈 김밥'을 집어 들어 진짜로 입안에 털어 넣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직관을 뒤집는 경제학의 역설이 완성됩니다. 우리는 흔히 '실력이 중요한 곳일수록 보상이 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의 작동 원리는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1박 2일>의 복불복처럼 '운'이 크게 좌우하는 경쟁일수록 승자와 패자의 인센티브 격차를 극단적으로 벌려놓아야만 합니다. 어설픈 '10주 면제권' 정도로는 운이 지배하는 판의 무기력함을 결코 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원 실내취침'과 '내일 컴백인 가족 같은 멤버를 야외취침 시키기' 정도 되는 극악무도한 격차가 주어져야만, 멤버들은 기꺼이 까나리 액젓을 원샷하며 몸을 던집니다.


이것이 바로 노동경제학에서 말하는 '토너먼트 이론'의 무서운 진실입니다. 결국, 극단적인 보상의 격차가 사람의 행동과 의지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현실 적용 : 우리 회사 전무님은 왜 내 연봉의 10배를 받을까? : '우승 상금'의 경제학

한편, 직장인이라면 삼삼오오 커피를 마시며 한 번쯤 불만을 토로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솔직히 실무는 우리 팀장이나 대리들이 다 하는데, 맨날 회의 들어가서 결재만 (그것도 늦게) 하는 전무님은 왜 연봉을 그렇게나 받는 거야?"

제목 없음.png 출처: 금융감독원 사업보고서(2024~2025 공시), 참고 : 링커리어 (https://community.linkareer.com/employment_data/5302662)

상식적으로 일한 만큼 월급을 받는다면 임원과 실무진의 연봉 격차가 이렇게까지 벌어지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아무리 초인이라도, 대리보다 10배 일하진 않으실 거니까요! 하지만 앞서 살펴본 <1박 2일>의 '복불복' 생태계를 떠올려 보세요. 회사라는 거대한 피라미드 역시, 위로 올라갈수록 '실력'만큼이나 '운'이라는 노이즈가 강하게 개입하는 복불복의 무대입니다.

대리, 과장급까지는 엑셀을 잘 다루고 기획서를 잘 쓰는 '개인의 순수한 실력'이 성과로 직결됩니다. 앞서 야외 취침 면제권을 위해 아스팔트 위를 전력 질주하던 멤버들처럼, 땀 흘린 만큼 정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마라톤과 같습니다.


하지만, 팀장을 넘어 임원의 자리를 다투는 전쟁은 다릅니다. 임원 후보에 오를 정도면 이미 개개인의 실력은 출중하고 그 격차도 미미하기에, 결국 승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는 사내정치나 타이밍 같은 노이즈가 낄 수밖에 없습니다. "운 좋게 한창 뜨는 신사업 부서에 배정받았는가?", "내가 모시던 본부장이 사내 정치에서 승리해 줄을 잘 탔는가?", "갑자기 터진 글로벌 경제 위기라는 폭탄을 운 좋게 피했는가?", 이처럼 경영진으로 가는 길목에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노이즈'의 영역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토너먼트 이론이 다시 한번 소환됩니다. 운이 크게 작용하는 판에서 1등(임원)과 2등(만년 부장)의 보상 차이가 고작 '월 50만 원' 수준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동강에서 '10주 면제권' 제안에 콧방귀를 뀌던 멤버들처럼, 그 누구도 임원이 되기 위해 야근을 불사하고 뼈를 깎는 스트레스를 견디며 치열한 사내 정치에 뛰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어차피 운으로 결정되는 거, 적당히 워라밸이나 챙기자"라며 모두가 펜을 놓아버릴 테니까요.

결국 임원들이 받는 그 천문학적인 연봉은, 그들이 '지금 당장 그만큼의 일을 하고 있어서' 주는 돈이 아닙니다. 피라미드 아래에 있는 수많은 사원, 대리, 과장, 부장들을 끝없이 경쟁시키고 쥐어짜기 위해 꼭대기에 걸어둔 토너먼트 우승 상금인 것입니다.


회사는 단 한 명의 전무에게 10배의 연봉을 주지만, 그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밑에 있는 100명의 직원이 서로 경쟁하며 만들어내는 성과의 총합이 훨씬 크다는 것을 영악하게도 알고 있습니다. 마치 <1박 2일> PD들이 멤버들이 추운 날씨에서 자는 방송분량보다, '전원 실내취침'이란 극단의 보상을 걸어 기꺼이 까나리 액젓을 입에 털어 넣는 쪽이 시청률을 보장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우리가 우러러보던, 혹은 불만스러워하던 임원의 연봉은 사실 우리를 미친 듯이 뛰게 만들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미끼'였던 셈입니다.


부작용 : "나만 아니면 돼애애엑~!", 승자독식이 낳은 괴물, '사보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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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을 상징하는, 한국 예능 역사상 가장 이기적이고도 솔직한 유행어가 하나 있습니다. 복불복에서 살아남은 멤버가 바깥에서 떨고 있는 동료들을 놀리며 포효하던 그 말.

"나만 아니면 돼애애액~!!!"

웃음을 유발하는 명장면이면서도, 이 외침은 극단적인 토너먼트(상대 평가) 시스템이 낳은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을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토너먼트에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핵심 동력 극단적인 보상 격차입니다. 그런데 이 격차가 너무 커지게 되면, 인간은 아주 치졸한 계산을 시작합니다. 내 등수를 올리기 위해 스스로 피땀 흘려 '절대적인 점수'를 높이는 것보다, 내 옆에 있는 경쟁자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려 '상대적인 순위'를 올리는 편이 훨씬 쉽고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멤버들은 다른 멤버를 속이고 까나리 액젓을 바꿔치기하거나, 교묘하게 반칙을 써서 상대를 탈락시키는 데 더 혈안이 됩니다. 어차피 승자만 따뜻한 방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혹독한 야외 취침을 해야 한다면, 기를 쓰고 남을 끌어내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에서는 이처럼 타인의 성과를 고의로 방해하여 자신의 상대적 지위를 높이려는 행위를 '사보타주'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보타주가 <1박 2일>의 예능 세트장을 넘어, 우리가 매일 출근하는 현실의 사무실에서도 소리 없이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임원'이라는 단 하나의 빛나는 왕관, 그리고 그 거대한 우승 상금을 두고 경쟁하는 직원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과연 그들은 회사를 키우기 위해 서로 화합하고 협력할까요?

안타깝게도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유망한 신사업 아이디어나 중요한 시장 정보는 타 부서에 공유하지 않고 철저히 숨기기도 합니다. 타 부서에서 들어온 핵심적인 업무 협조 요청은 교묘한 핑계를 대며 무기한 지연시킵니다. 심지어 임원진이 모두 모인 회의 시간, 은근슬쩍 경쟁 동료의 뼈아픈 실수를 언급하기도 합니다. 내 부서의 실적을 10% 올리는 고된 길보다, 경쟁 부서의 프로젝트를 망가뜨리는 것이 내가 전무로 승진하는 데 훨씬 빠르고 확실한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에필로그 : 예능은 '1박 2일'로 끝나지만, 우리의 출근은 매일이다

<1박 2일>은 일요일 저녁 우리를 웃게 만드는 예능이지만, 우리의 출근은 매일같이 이어지는 치열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승자독식의 룰과 극단적인 보상 격차가 사람을 미친 듯이 뛰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동료의 커피에 까나리 액젓을 타는, 사보타주가 일상이 된 조직이 과연 오래갈 수 있을까요?

가위바위보 한 번에 희비가 엇갈리는 복불복 판보다는, 비록 그 보상이 '야외 취침 1회 면제권'일지라도 땀 흘린 만큼 정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마라톤'의 룰이 우리 삶에는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이 차가운 경제학의 룰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심해보이시는 전무님, 혹은 남의 성과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옆 팀 부장님을 보더라도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십시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토너먼트'라는 시스템 자체가 그들을 그렇게 얄밉게 행동하도록 프로그래밍했을 뿐이니까요. 승자독식의 씁쓸한 입맛은 잠시 내려놓고, 출근길을 묵묵히 걸어갈 우리 자신에게 작게나마 '실내 취침' 같은 따뜻한 위로를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음 편 예고] 조수행 선수가 홈런 4개를 치면 연봉을 깎아야 하는 이유 : 단조우도비율(MLR)


본문에 사용된 영상 <1박 2일>의 이미지는 작품의 경제학적 분석을 돕기 위한 인용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저작권은 원저작권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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