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금요일, 원래 계획대로라면 '조수행 선수와 단조우도비율(MLR)'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으로 여러분을 찾아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너무 브레이크 없이 달려온 것 같아 잠시 숨을 고르려 합니다. (기다리셨던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1. 사실은...저 개강 준비 좀...
제 글을 유심히 보신 분들은 가끔 묻어나는 티를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아직 대학생입니다.
그것도, 고작 이제 대학교 3학년을 앞두고 있고- 솔직히 말해 거창한 꿈이나 확고한 진로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학기를 마치며 제게 작은, 그러나 꽤 명확한 단기 목표가 하나 생겼습니다.
"대학에서 비싸게 배운 전공 지식, 내 머릿속에 확실히 때려 박고 남들과 나누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전 경제학이 좋습니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을 보아도 (괘씸하게도 쓰레기를 주울 생각은 안하고!) '왜 저런 행동을 했을까' 상상에 망상을 더하는 제게,
그를 위한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주는 경제학은 세상을 새롭게 보는 안경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서점에 가면 '부자가 되기 위한 경제학'은 넘쳐나지만, 저는 그런 실용적인 지식만큼이나 재밌는 게 이 학문 자체가 가진 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두꺼운 전공 서적만 보면 질색하는 저이기에 제가 가장 익숙하게 접한 <무한도전>, <흑백요리사>, <슬램덩크>를 핑계 삼아 끌고 왔습니다.
어쩌면 이 브런치북의 진짜 시작은, 흑백요리사 새 시즌도 봐야 하고 전공 복습도 해야 했던 어느 경제학도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2. 중간 정산(?)
그런데 연재를 이어나가다 보니 어느 순간 '독자분들에게 경제학의 재미를 알려드리겠다'는 목적과 '복습하면서 온전히 내 지식으로 만들어야겠다'는 학구열 사이의 밸런스가 깨져버렸단 걸 느꼈습니다.
누구나 공감 가능한 '스타벅스와 투썸플레이스가 붙어있는 이유'를 설명하던 야심 찬 첫 글과 다르게, 하다 보니까 자기 혼자 폭주해 버린 거죠.
<어벤져스>를 설명하며 '디즈니는 호크아이의 부상을 기회로 삼아선 안된다(??)'며 이론도 무엇도 아닌-갑자기 디즈니의 연봉 테이블로 가지 않나, 완벽한 민주주의가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하다 굳~이 '학문적 엄밀성(!)'을 위한 수학적 증명까지 부록으로 달아서 스크롤에 압박을 주지 않나.
그래서 아차 싶어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최근에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독자분들의 일상과 가장 맞닿아 있는(아마?) 직장 생활 시리즈로 방향을 틀었고요.
'왜 김 대리는 월급 루팡이 되었나(케로로)'부터, '우리 회사 임원진은 왜 내 10배를 받는가(1박 2일)'처럼 최대한 친근하게 다가가려 노력 중입니다.
뭐 지나간 실수는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쉬어가는 김에 그동안 제가 폭주하며 쏟아냈던 지난 글들을 가볍게 훑어보려 합니다.
교과서적인 엄밀함은 싹 빼고, 이 이론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실제로 '어떤 안경'이 되어주는지, 그 진짜 의미만 쏙쏙 뽑아 정산해 보겠습니다.
2-1. 우리가 지금까지 그 안경을 끼고 뭘 봤냐면요... (전반전 하이라이트)
I. [슬램덩크 × 호텔링 모형]
지선을 앞둔 지금-당 이름 가리면 어느 당 공약인지 알 수 있으실까요?
"왜 굳이 저렇게 따닥따닥 붙어서 경쟁하지?" 상권뿐만 아니라, 선거철만 되면 좌우 정당의 공약이 기가 막히게 비슷해지는(중도 수렴) 이유도 다 이 모형 안에 있습니다.
결국 뺏고 뺏기는 파이 싸움에서 살아남으려면 상대방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밀고 들어가야 한다는 잔인한 룰이죠.
이 내용은 본문 직접 읽어보셔도 쉽게 이해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ㅎㅎ
II. [흑백요리사 × 신호 발송 게임]
잃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와 좋은데요?"를 남발한다.
상사든 거래처든, 내 아이디어에 칭찬 일색이라면 그들이 처한 상황을 한 번 의심해 보세요.
백종원 대표처럼 잃을 게 많은 위치일수록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너그럽게 합격을 남발하는 '공용 전략'을 방패로 씁니다.
진짜 내 뼈를 때려줄 피드백이 필요하다면, 깐깐하게 트집을 잡으며 자신의 전문성을 증명해야만 하는 안성재 셰프의 '분리 전략'을 구사하는 독한 멘토를 곁에 둬야 합니다.
III. [무한도전 × 게일-섀플리 알고리즘]
연애 시장에서 '어장관리'가 필수인 이유!
연애 사업에 있어 최악의 태도로 꼽히는 어장관리.
그런데 실은 그 '여우들'이 경제학적으로 가장 엄밀한 매칭 전략을 짜고 있었다는 걸 아시나요?
노벨상 위원회는 오히려 '어장관리(잠정 수락)'가 사회 전체의 매칭을 안정적으로 만든다고 증명했습니다.
글에서는 '어장관리'가 없는 디너쇼에서 맞이한 정형돈의 비극을 통해, 이직과 연애 시장에서 내 가치를 지키며 최적의 짝을 찾는 방법을 알아보았습니다.
섣불리 도장을 찍었다가 후회하는 것보다, 최선의 짝을 찾기 위해 합법적인 어장을 치는(?) 것이 경제학적으로는 몹시 엄밀하고(아, 이제부터 '엄밀함' 금지하겠습니다ㅋㅋㅋ) 훌륭한 생존법이었던 셈이죠.
IV. [어벤져스 × 섀플리 값]
얼마나 잘했는지를 증명하려면, 반대로-당신이 없을 때 얼마나 못하는지를 증명시켜라.
어벤져스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늘 화려한 아이언맨과 든든한 캡틴 아메리카지만, 노벨상 공식(섀플리 값)이 검증 '기여도 1위'는 놀랍게도 활잡이 호크아이였습니다.
그가 참전한 전투는 백전백승이었지만 그가 은퇴하고 빠진 '인피니티 워'는 처참하게 패배했거든요.
회사에서 내 가치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가 밤새워 일한 티를 내는 게 아니라 내가 휴가 갔을 때 부서가 얼마나 엉망이 되는지를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V. [포켓몬스터 ×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
고작 점심 메뉴 결정하는 게 왜 이리 어려운 걸까?
오늘 점심 메뉴를 두고 동료, 혹은 가족의 의견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엇갈리는 현상, 선거철마다 "도대체 찍을 놈이 없다"라며 한숨 쉬는 이유는 우리가 정치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에 따르면 완벽한 민주주의나 모두가 만족하는 다수결이란 애초에 수학적으로 불가능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1순위가 엇갈리는 우유부단한 상황을 끝내기 위해선 독재자를 세워야 한다.
독재자가 싫다면 다시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뫼비우스의 띠에 탑승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호한 증명이 차갑지만은 않은 이유는, 투표소에서 찝찝하게 '차악'을 찍는 우리에게 따뜻하게 정당성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겠죠. 아무래도 애로우는 츤데레일지도 모릅니다.
VI. [개구리 중사 케로로 × 주인-대리인 문제]
"일을 맡겨두면 항상 함흥차사"...입니다~!
외주를 맡기든, 팀플 ppt를 맡기든, 잘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필요할 땐 항상 자취를 감추는 그들.
하지만 그들의 인성을 탓하기 전에 내가 설계한 '인센티브 구조'를 먼저 봐야 합니다.
어떻게든 판에 끼게 만드는 '참여 조건(IR)'은 만족시켰을지 몰라도- 막상 딴짓을 안 하고 일을 하게 만드는 '인센티브(IC)'가 박살 나 있으면 그들은 언제든 상사 몰래 프라모델이나 조립하는 케로로(월급 루팡)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VII. [1박2일 × 인센티브 이론]
인생은 운칠기삼, 운이 좋은 사람일수록 인센티브를 더 줘야 한다고?
"왜 실무는 우리가 다 하는데 전무님은 우리 10배를 받을까?" 직장인들의 영원한 미스터리죠.
우리는 흔히 실력이 중요할수록 보상이 커야 한다고 믿지만, 경제학의 대답은 정반대입니다.
실력보다 까나리액젓을 피하는 '운'이 더 중요해 보이는 세상이라면 보상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요?
결과가 운에 크게 좌우되는 판일수록 상금 격차가 작으면 아무도 기를 쓰고 경쟁하려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오히려 승자에게 파격적으로 보상을 몰아줘야만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토너먼트 이론'의 기막힌 역설을 꼬집어봅니다.
3. 작전 타임 끝, 이제 후반전으로
분명 짧게 쓰려고 했는데!!
매번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오늘도 금요일 자정을 넘겨버렸습니다. 개강 준비 한다고 서론에 써놓고.
다음 주에는 마침 다가오는 WBC 일정과도 기가 막히게 겹치기에, 예고해 드렸던 '조수행 선수의 홈런이 늘어나면 연봉을 깎아야 한다 (단조우도비율, MLR)'는 야구계의 무시무시한(?) 경제학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항상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 잘 보내시고 좋은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