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특집] 홈런 치면 연봉 깎이는 타자?

-조수행과 콜센터 직원으로 보는 '진짜 인센티브 경제학'과 단조우도비율

by 묘한 경제

※ 본문은 두산 베어스 조수행 선수의 가상 연봉 계약을 통해 정보경제학의 '단조우도비율조건(MLRC)'과 올바른 인센티브 설계의 중요성을 분석합니다.


어제(3월 5일), 2026 WBC가 막을 올렸습니다.

개막전인 체코전에서 시원한 아치를 무려 네 개나 쏘아올리며 대승을 거둔 대표팀은, 이전과는 다르다는 듯 심기일전하며 바야흐로 찾아온 야구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야구는 (경제학도가 좋아하는) 철저한 '숫자'의 스포츠입니다.

타율, 출루율, 홈런 개수 등 선수가 흘린 땀방울이 방대한 데이터로 증명되고, 그 숫자는 곧바로 스토브리그의 연봉 협상 테이블에 오르게 됩니다.

지난 글(<1박 2일> 편)에서 살펴본 '운'이 지배하는 까나리 복불복 판과는 달리, 야구판은 성과와 보상이 가장 투명하게 직결되는 경제학의 축소판인 셈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도 역시, 우리의 직관을 완전히 파괴하는 기묘한 연봉 계약서가 하나 있습니다.

주인공은 두산 베어스의 외야수 조수행.

그는 엄청난 주력과 작전 수행 능력을 갖췄지만, 프로 통산 시즌 평균 홈런이 0.4개 남짓에 불과한 전형적인 '쌕쌕이(교타자)'입니다.

그런 그에게 구단이 시즌을 앞두고 다음과 같은 인센티브 조건을 내민다고 가정해 봅시다.

[특별 인센티브 조항]
올 시즌 홈런 2개 달성 시: 인센티브 3,000만 원 지급
올 시즌 홈런 4개 달성 시: 연봉 5,000만 원 삭감

이 조항은 적절할까요?

가장 먼저 의심하게 되는 것은 제 눈입니다. 야구의 꽃은 단연코 홈런 아니었나요?

목표치를 두 배나 초과 달성했는데 도리어 돈을 뺏겠다니.

구단 프런트가 단체로 더위라도 먹은 걸까요?

이 황당한 딜레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계약이론의, '단조우도비율조건(MLRC, Monotone Likelihood Ratio Condition)'이라는 무시무시한 개념을 꺼내야 합니다.


1. 당연한 상식에 붙인 무서운 이름, '단조우도비율'

이름부터 숨이 턱 막히지만, 사실 이 원리는 우리가 아는 아주 단순한 상식입니다.

쉽게 말해

"성과가 좋을수록, 그 사람이 요령 피우지 않고 진짜로 '바람직한 노력'을 했을 확률이 단조적으로(꾸준히 우상향하며) 높아진다"

는 뜻입니다.


쉬운 예시로, 가상의 자동차 영업사원 김 대리를 떠올려보겠습니다.

그가 이번 달에 차를 1대 팔았을 때보다 10대를 팔았을 때, 사장님은 "아, 김 대리가 이번 달에 땡땡이 안 치고 진짜 땀나게 발로 뛰었구나!"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성과가 높을수록 '바람직한 노력'을 했을 확률이 높아지므로, 성과에 비례해 더 많은 보너스를 주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결국, 기업들이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이유이자, 우리가 아는 지극히 상식적인 보상 체계의 뼈대가 바로 이 단조우도비율, MLR라 할 수 있습니다.


2. 상식이 박살 나는 순간 : 4홈런의 역설

자, 이제 다시 조수행 선수에게 돌아가 봅시다.

대체 왜 그의 '홈런 4개'는 이 MLR의 마법을 산산조각 내는 걸까요?


① 홈런 2개의 진실 : '바람직한 노력(High Effort)'의 산물

구단이 조수행에게 원하는 역할은 명확합니다.

배트를 짧게 쥐고, 악착같이 파울을 치며 투수를 괴롭히고, 기어코 1루로 살아 나가는 것.

이것은 체력적,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고된 '바람직한 노력'입니다.

그런데 그가 팀을 위해 끈질기게 공을 맞히다 보면, 어쩌다 운 좋게 배트 중심에 공이 맞아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이 1~2개 나올 수는 있습니다.

즉, 홈런 2개는 그가 팀이 원하는 고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다가 얻어걸린 '칭찬받아 마땅한 결과'일 확률이 높습니다.


② 홈런 4개의 진실 : '도덕적 해이(Low Effort)'의 증거

하지만 그가 한 시즌에 홈런을 4개, 5개씩 쳤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경제학자와 데이터 분석가는 여기서 합리적인 의심을 시작합니다.

"잠깐, 조수행의 체격과 스윙 궤적상 저 홈런 개수는 불가능에 가까운데? 혹시 이 선수가 팀이 요구하는 '끈질긴 커트와 출루'를 포기하고, 눈 꽉 감고 무조건 풀스윙만 돌린 게 아닐까?"

만약 그가 팀의 승리(출루)는 뒷전이고 매 타석 영웅스윙을 돌렸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삼진 아웃은 밥 먹듯이 당하겠지만, 워낙 세게 방망이를 돌렸으니 어쩌다 걸린 타구들이 담장을 넘어가 홈런 4개를 만들어냈을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역전 현상이 발생합니다.

성과 수치(홈런 개수)가 비정상적으로 솟구치는 순간, 오히려 그것이 '팀을 위한 헌신(High Effort)'이 아니라 '개인 기록을 위한 이기적인 딴짓(Low Effort)'의 결과물일 확률이 더 커져 버리는 것입니다.

즉, 결과가 좋을수록 바람직한 노력의 확률, 더하여 인센티브(보너스)도 올라가야 한다는 단조우도비율(MLR)이 완벽하게 깨지는 순간입니다.

구단이 홈런 4개를 친 그에게는 가차 없이 연봉 삭감의 철퇴를 내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3. 우리 회사의 조수행, 혹은 숫자를 맹신하는 리더

이 그라운드의 딜레마는 짐을 싸 들고 우리 회사의 사무실로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박 사원을 떠올려봅시다.

회사가 '하루 상담 처리 건수'라는 숫자만으로 성과급을 준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평소 하루 50명의 고객과 끈질기게 소통하며 불만을 해결해주던(High Effort) 박 사원의 하루 처리 건수가 갑자기 150건으로 폭증했습니다.

숫자에 매몰된 무능한 리더는 엑셀 표만 보고 박 사원에게 두둑한 성과급을 안겨줄 것입니다.

"완전 불태웠네? 박 사원~"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경제학자의 눈으로 보면 어떨까요?

150건이라는 비정상적인 숫자는, 박 사원이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진짜 노동'을 포기했음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앵무새처럼 매뉴얼만 읊고 전화를 황급히 끊어버리는 이른바 '상담 난사(Low Effort)'를 택했다는 결정적 증거일 수 있습니다.

콜 수는 홈런처럼 뻥뻥 터지겠지만, 말 그대로 속이 빈 강정일 뿐.

그리고 그 순간, 조직은 눈 감고 풀스윙만 때리는 '공갈포'들로 가득 차게 됩니다.


에필로그 : '진짜 인센티브'는 숫자가 아닌 방향을 향한다

진짜 탁월한 리더(구단주)란, 단순히 전광판의 홈런 개수에 환호하는 관중이 아닙니다.

"저 화려한 숫자가 우리가 원했던 올바른 방향과 노력의 결과물인가?"를 꿰뚫어 보고, 그 '방향'에 맞춰 정교하게 인센티브를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리드오프의 초구 홈런보다, 그의 진루타 하나에 더 큰 박수와 연봉을 쥐여줄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합니다.

내일 저녁, 한일전을 앞두고 치킨 한 마리와 함께 WBC 중계를 보며 타석에 들어선 선수들의 스윙을 유심히 지켜봅시다.

그리고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이 내게 원하는 역할은 과연 '팀을 위한 출루'인지, 아니면 '삼진을 당하더라도 풀스윙을 돌리고 오는 것'인지 말입니다.

아마 시중의 숱한 자기계발서 내용들과는 다르게, 정답이 마냥 후자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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