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은 WBC 및 메이저리그 등에서 시행 중인 '승부치기' 제도를 경제학의 '레버리지'와 행동경제학의 '손실회피 편향', 그리고 '순차 게임' 이론을 통해 분석합니다.
: 2026 WBC, 대만과의 조별 경기에서 우리를 울게 했던 낯선 제도가 있습니다. 조만간 KBO 리그에도 전면 도입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보는 뜨거운 감자, 바로 '승부치기'입니다.
야구를 깊게 보지 않는 분들을 위해 잠시 룰을 설명하자면, 승부치기란 9회까지 승부가 나지 않아 연장전에 돌입했을 때 '주자를 강제로 2루(규정에 따라 1,2루)에 출루시켜 놓고' 이닝을 시작하는 특별 규정입니다.
원래 야구는 투수와 타자가 정당하게 승부하여 안타나 볼넷을 얻어내야만 베이스를 밟을 수 있는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무사 주자 없는 상태에서의 기대 득점은 통계적으로 0.5점 근방.
심지어 '끝장 승부'에 서로가 집중한 연장전은, 12회가 다 되도록 소득도, 기약도 없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무국은 경기를 빨리 결판내기 위해, 가장 점수가 나기 쉬운 '무사 2루'라는 엄청난 찬스를 양 팀에게 인위적으로 멱살 쥐여주는 극약 처방을 내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낯선 룰은 그라운드 위에서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길래 경기를 그토록 빨리 끝낼 수 있는 걸까요?
이번 글에서는 찬반을 잠시 걷어내고, 경제학이란 렌즈와 함께 차분히 해부해 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드는 의문입니다.
"어차피 선공 팀도 무사 2루, 후공 팀도 무사 2루에서 똑같이 시작한다면, 주자 없을 때랑 다를 게 뭐야. 계속 무승부가 이어져야 맞는 것 아닐까?"
하지만 현실은 단 1~2이닝 만에 누군가 득점에 실패하며 잔인하게 승부가 갈립니다.
심리의 영향도 분명 있겠지만, 경제학은 이를 레버리지(Leverage, 지렛대)로 설명합니다.
주식이나 부동산 등 투자에 익숙한 독자분들이라면 이미 너무나도 낯익을 단어일텐데요.
9회까지의 야구는 오직 '나의 출루'라는 자본만으로 점수를 내는 안전한 시장입니다.
한 이닝의 기대 득점 수준이 낮으므로, 양 팀 모두 0점을 낼 확률이 가장 높아 '0:0 동점'이라는 평화로운 균형이 쉽게 유지됩니다.
하지만 사무국이 거저 쥐여준 2루 주자는 지렛대처럼 작용하는 효과를 일으킵니다.
이 강력한 자본(주자)을 등에 업는 순간, 득점 확률의 변동성이 극대화됩니다.
안타 두어개면 1~2점이 쉽게 나지만, 후속타가 불발되면 치명적인 부도(무득점)를 맞습니다.
점수의 스펙트럼이 '0점 아니면 대량 득점'이라는 양극단으로 찢어지면서, 우연히 양 팀이 정확히 똑같은 점수를 낼 확률(무승부) 자체가 수학적으로 파괴되는 것입니다.
승부치기가 시작되면 원정 팀(선공)의 벤치는 약속이나 한 듯 희생번트 사인을 냅니다.
일부 팬들은 이를 두고 "점수 내라고 판을 깔아줬는데 벤치가 쫄았다"며 비판하지만,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이는 결코 겁쟁이의 선택이 아닙니다.
핵심은 10회 말 공격을 기다리고 있는 '홈 팀'의 존재입니다.
만약 원정 팀이 강공을 택했다가 힘없는 내야플라이 등 무득점으로 10회 초를 마친다면 어떻게 될까요?
홈 팀이 그 때 내밀 카드는 아주 심플하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강력합니다.
똑같이 맞이한 무사 2루의 찬스에서, 홈 팀은 이대호(혹은 강민호?)의 타석이라도 배트를 아래로 내려 번트를 준비할겁니다.
한 점만 내도 경기가 끝나기 때문입니다.
원정 팀 입장에서는 10회 초의 득점 실패가 곧 10회 말의 확정된 패배를 의미하는 셈이죠.
따라서 그들은 대량 득점의 기회를 포기하더라도, 일단 무조건 1점을 쥐어짜 내어 상대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희생번트-희생플라이 1점 내기' 전략을 무력화시켜야만 합니다.
이는 행동경제학의 손실회피(Loss Aversion) 편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1점'을 확보했다고 생각한 시점에서, 0점을 냈을 때 겪게 될 패배의 고통(손실)이 추가점을 냈을 때의 기대 효용보다 너무나 압도적이기에, 가장 안전한 방법을 택하는 뼈아픈 생존 전략인 것입니다.
앞선 2번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승부치기는 결코 양 팀에게 공평한 룰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이 제도는 완벽하게 '홈 팀'을 위해 판이 기울어져 있습니다.
사실 9회까지의 야구도 초/말로 나뉘어 있긴 하지만, 각자 주어진 아웃카운트 안에서 독립적인 점수 쌓기 경쟁을 하는 성격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연장전에서, 주자 2루라는 거대한 레버리지와 이번에 점수를 못내면 끝난다는 '즉각적인 종료 조건'이 투입되는 순간, 경기는 앞사람이 남긴 결과값(점수)에 맞춰 내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순차 게임으로 탈바꿈합니다.
원정 팀은 홈 팀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홈 팀은 원정 팀이 몇 점을 냈는지 완벽한 정보를 쥐고 타석에 들어섭니다.
선공이 0점일 때: 무리하지 않고 가장 안전한 1점 짜내기(번트)로 게임의 숨통을 끊습니다.
선공이 1점을 냈을 때 : 안전하게 1점을 따라가거나, 타순이나 상대 투수에 따라 유동적으로 전략을 조정합니다.
선공이 2점 이상을 냈을 때: 비로소 배트를 올리고 강공을 택해 승부를 봅니다.
결국 룰 자체가 상대의 결과에 따라 내 전략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강력한 후발주자의 우위를 후공에게 몰아주는, 도망치는 자보다 쫓는 자에게 유리한 구조인거죠.
결국 승부치기는
1) 강제로 레버리지를 부여해 무승부의 확률을 박살 내고,
2) 감독들의 손실회피 본능을 자극하며,
3) 정보의 우위를 쥔 후공 팀이 순차 게임의 이점을 살려 게임을 끝내도록 유도하는
아주 정교한 경제학적 설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발칙한 의문이 하나 듭니다.
이렇게 명명백백하게 후공에게 유리한 룰을, 도대체 왜 메이저리그를 비롯한 야구 사무국은 그토록 열광하며 전 세계 야구판에 도입하려 하는 걸까요?
어쩌면 그 답은 짜릿한 순간을 경험해본-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