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왜 없어지지 않을까

- 넷플릭스 1위 만화 '스파이 패밀리' 속 빌런이 전쟁을 확신하는 이유

by 묘한 경제



전쟁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 왜냐하면 인간은 거짓말쟁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본심은 알 수 없습니다. 이쪽도 본심을 숨기고 있으니까요.
'상대가 사실은 무기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의심을 씻어낼 수 없는 한,
끝없이 똑같은 짓을 반복할 뿐입니다.

스파이패밀리 99화. 도노반 데스몬드의 학창 시절 전쟁에 대한 토론



MISSION ? : 데스몬드의 불신 게임


이번 번외편에서는 만화 <스파이 패밀리>의 베일에 감춰진 최종 보스, 도노반 데스몬드의 전쟁에 관한 주장을 다룬다.

이든 칼리지 재학 중 진행한, '이 세상에서 전쟁을 없앨 수 있는가'에 대한 토론에서 그가 제창했던 '전쟁 영원론'은 단순한 비관론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인간 본성과 상호 불신에 대한 차갑고 단단한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왜 그토록 확신에 차 있을까?

데스몬드의 주장은 일정 부분 게임 이론의 가장 고전적인 모델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데스몬드의 불신 게임'의 규칙을 파헤쳐 보자.


데스몬드의 불신 게임

이 게임에는 두 명의 플레이어(국가)가 있다.

각 국가는 상대방을 믿고 평화를 유지할 수도('평화 유지'), 상대를 속이고 몰래 힘을 기를 수도('비밀 군비 증강') 있다.

이 선택에 따른 결과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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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의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국가 B의 입장에서 만약 국가 A가 '평화 유지'를 선택한다면, B는 '비밀 군비 증강'을 통해 절대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불안한 평화'에 머무는 것보다 낫다. 반대로 만약 국가 A가 '비밀 군비 증강'을 선택한 경우에도, 우리도 똑같이 '비밀 군비 증강'을 통해 차악의 결과인 '끝없는 군비 경쟁'으로 가는 것이 혼자만 평화를 외치다 '안보 위협에 노출'되는 최악의 상황보다는 낫다.

국가 A 역시 똑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결국 양측 모두에게,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하든 '비밀 군비 증강'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버린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이 '데스몬드의 불신 게임'이 이전에 다루었던 (아냐와 다미안의)'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구조임을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죄수의 딜레마가 가진 또 다른 치명적인 특징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구속력 없는 사전 합의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점이다.

아냐와 다미안이 "서로의 마음을 받아주자"고 사전에 약속했더라도, 정작 상황이 닥치면 '내가 여기서 배신해서 재수없는 다미안을 차고 / 서민인 아냐를 차고 자존심을 챙기는' 유혹이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 사전의 약속은 하나마나한 휴지 조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데스몬드가 생각하는 세계가 바로 이와 같다. (이처럼 귀엽지는 않겠지만)

두 국가가 아무리 확고한 평화 협정을 맺더라도(사전 합의), 결국 "상대가 약속을 어기고 사실은 무기를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고개를 드는 순간, 그 모든 합의는 불신으로 성장할 뿐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두 국가 모두 평화를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불신 때문에 결국 '끝없는 군비 경쟁'이라는 비극적이고 차가운 균형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데스몬드가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다고 말하는, 인간 본성에 기반한 냉철한 현실이다.



SHORT MISSION:

그렇다면, 이 견고한 절망의 논리 앞에서, 게임 이론은 침묵할 수밖에 없는가?

아니다. 완벽해보이는 데스몬드의 세계관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단 하나 존재한다.

그리고 그 맹점을 저격하는 무기 또한, 바로 그가 기반을 둔 '게임 이론'에 있다.

바로, 게임이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실의 국제 관계는 오늘 보고 말 사이가 아니다. 실은 계속되는 '반복 게임(Repeated Game)'이다.

그리고 '내일'이 존재하는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의 전략은 완전히 달라진다.

오늘의 배신이 내일의 보복을 불러온다는 미래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때문이다.

오늘만 보고 사는 배신자는 내일의 협력 파트너를 모두 잃게 된다.

그리고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는 '평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손실이 된다.

데스몬드의 닫힌 세계관은 바로 이 '시간'과 '평판'이라는 변수를 계산에 넣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는 이런 변수가 어떻게 이 절망적인 도노반의 논리에 균열을 내는지, '반복 게임'이라는 희망의 불씨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 <스파이패밀리x게임이론> 시리즈는 다음 '반복 게임'으로 완결됩니다. 이후에는 <슬램덩크>를 통해 심화 이론을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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