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내가 존경하는 멘토 공무원
나는 우리 조직에서 존경하는 분이 있다
멘토와 멘티라는 말이 있다. 멘토는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또는 조언자, 스승격인 사람을 의미한다. 멘티는 당연히 그 상대방으로서 조언을 받는 사람이다.
서울시에는 멘토·멘티 제도가 있다. 시에 처음 입직하거나 구에서 근무하다 시로 처음 전입을 오면 그 부서에서 경험 많은 직원 또는 팀장급으로 멘토 역할을 하도록 묶어준다. 이렇게 맺어주면 멘티는 고민할 필요 없이 편하게 멘토에게 사무실 업무나 개인사까지 각종 문제에 대해 상담을 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처음 서울시에 입직한 1997년에는 이런 제도가 공식적으로는 없었다. 더구나 사무관(구청 과장)으로 바로 들어왔기 때문에 그런 제도를 기대할 수도 없었다. 처음부터 모든 걸 스스로 깨우치고 돌파해나가야 했다.
그때 내 나이가 서른이었지만, 사실 공직생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상태였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나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멘토가 되시는 분을 여러분 만났고 그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자란 거 같다.
나는 지금도 다섯 분을 기억하고 존경한다. 왜냐하면 난 그분들 한분 한분에게 정말 소중한 철학 같은 걸 배웠으니까. 그분들을 만난 시간 순서대로 소개해 본다.
첫 번째 분은 공무원 신입 때 만난 신일근 전 관악 부구청장님이다. 1998년에 내가 서울시 강북구청에 초임 발령받아서 사회복지과장을 할 때 생활복지국장님으로 내 직속상관이셨다. 이분은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현실세계에서의 지침과 적극적으로 행정을 집행하는 모습을 남기셨다.
1. 누군가에게 고마운 일이 있으면 반드시 감사하다고 인사해라. 고마움이 그냥 감사하다는 인사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에는, 부담가지 않는 작은 선물로 보답하는 것도 좋다. 선물을 받아서 기분 나쁜 사람은 없다.
2. 행정하다 보면 현실과 맞지 않는 법 규정 때문에 어려울 때가 있다. 그때 과감히 규정에 얽매이지 말고 현실에 맞게 집행해라.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등을 자세히 적어서 본 문서에 같이 보관해 놓아라. 물론 그 과정에서 소위 업자든 민원인이든 행정의 상대방에게 쓴 커피 한 잔도 얻어먹지 마라.
이분은 나에게 “너 뒷문 고시지”라는 명언도 함께 남기셨다.
두 번째 분은 문홍선 전 강서 부구청장님이다. 이분과는 같이 근무한 적은 없지만, 수시로 교류하였다. 그 과정에서 당시 전반적인 공무원 사회 분위기와 상당히 다른 이분만의 철학을 배울 수 있었다. 직원을 사랑하는 마음, 늘 직원들과 함께 하는 마음. 권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섬세한 지도력으로 직원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어 일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셨다. 사람 하나하나를 기억하셨다. 이분 개인적으로는 정신발달 장애를 가진 아들을 포함한 세 아들과 가족간의 사랑도 정말 멋지고 감동적이다. 「배세일움 사용서」라는 제목으로 따뜻한 가족 이야기를 담은 책도 내셨다. 붓글씨(캘리그라피)도 일품이시다.
세 번째 분은 ○○○ 전 행정1부시장 겸 시장 권한대행님이다. 오래전 오세훈 시장님이 첫 취임해서 만든 창의과에 초대 창의과장이셨고, 나는 그 부서의 주무팀장으로 이분을 처음 만났다. 그때는 내가 창의가 뭔지? 우리시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를 때였다. 나는 직원들과 수없이 아이디어 회의를 거쳐 여러 가지 안을 만들어 보았다. 과장님은 우리들의 안을 주의 깊게 들으시고 당신 의견을 보태서 최종안으로 정리했고, 윗분들께도 그대로 관철시켰다. 결과적으로 서울시 전체가 멋진 창의행정을 펼쳤다. 직원들로 하여금 맘껏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여유와 부드러움, 결과를 책임져주는 큰 형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두루 갖춘 인물이다. 직원들과 회식자리도 좋아하셨다. 유머 센스도 만점.
네 번째 분은 ○○○ 현 행정1부시장님이다. 이분과는 앞의 분 바로 다음에 만났다. 이분이 노인복지과장으로 계실 때 내가 그 과의 주무팀장으로 6개월간 같이 근무하였다. 같이 근무하다가 나를 언론과 신문팀장이라는 중책으로 천거하셨다. 이후 내가 함량 미달(?)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시더니, 내 사무실에 일부러 수시로 찾아오셔서 “힘들지? 괜찮아! 힘내라 강팀장”이라며 격려해 주셨다. 얼마나 따뜻한 마음인가? 아마도 이렇게 부하직원을 사후에도 챙기는 분은 없지 않을까 싶다. 이분은 당시 노인복지과장으로서 그 어려운 서초구 원지동 추모공원 조성사업도 멋지게 해내셨다. 덕분에 지금도 서울시의 화장 장례 수요를 어느 정도 충족하고 있다고 본다. 추진력 하면 짱이시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나의 멘토는 상사가 아니라 부하직원이다. 현 ○○○ 과장이고, 당시 내가 사회적경제과장일 때 이 분이 우리과 주무팀장이었다. 고 박원순 시장님께서 만드신 인 GSEF(사회적경제 관련 국제적 협의체) 국제회의를 벤쿠버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회의 장소는 벤쿠버이지만, 서울시가 의장도시(박원순 시장님이 의장)라서 내용상 준비과정에서 우리시가 상당히 많은 역할을 해야만 했다. 당시 ○○○ 팀장은 늦둥이를 임신하고 출산을 얼마 앞둔 상태였음에도, 국제회의 준비를 아주 열심히 그리고 잘 진행했다. 문제는 벤쿠버 현장에 누가 가느냐의 문제였다. 당연히 제일 잘 아는 사람이 가야 한다. 허나 거의 만삭에 가까운 몸으로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할 수 있느냐? 그러다 비행기 안에서 또는 출장중에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누가 책임지겠는가? 일반적으로는 어렵다. 전체를 책임져야하는 나로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뭐라 말도 못하고) 이때, 구세주처럼 ○○○ 팀장은 나에게 본인이 기꺼이 가겠다고 했고, 실제 현장에서 실무를 확실하게 챙겼다. 당연히 며칠간의 국제행사는 성공리에 마쳤다. 나는 차마 처음부터 말리지 못한 채 “고맙다”라는 말만 했다.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이 이렇게 크다니. 그때 그 아이가 벌써 초등학생이란다.
이분들은 나의 공무원 생활 나아가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가급적 이분들의 좋은 점을 따르려 노력하였다.(정확히 말하면 노력은 하였다.)
나는 지금도 이분들을 존경하고 좋아한다. 직장에서 존경하고 좋아하는 멘토가 있다는 것은 내가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매우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요즘은 세대간 가치관 차이, 꼰대, MZ 세대, 소통의 부재, 워라밸 등의 말들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고 날이 서 있다. 직장내 상하간 그리고 동료간 소통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소통에 익숙하지 않거나, 심지어 소통 그 자체에 회의적인 사람들도 꽤나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나서기를 꺼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분명히 진정으로 소통을 원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후배이든, 선배이든....
그리고 선배들 중에는 반드시 좋은 의도, 좋은 품성, 좋은 태도를 가지신 분, 일을 쉽게 풀어내고 마무리를 잘 하는 분, 사람들 간의 얽힌 문제를 잘 정리하는 분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을 찾아보자. 찾았다면, 커피 한 잔 대접하고 “나의 멘토가 되어 주십시오”라고 부탁해 보자.
좋은 멘토가 있는 직장은 힘들지 않다. 내가 마음속으로 따르는 멘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고 느낄 수 있다. 혹여 내가 힘들 때, 멘토가 있어 같이 고민해주고 때로는 선 경험자로서 명쾌한 답을 주거나 최소한의 길을 제시해 주면 한결 수월하고 마음이 가벼워질 것이다. (실제로 나의 네 번째 멘토께서 나에게 그런 역할을 여러차례 해 주셨다.)
나도 지금까지 누군가의 멘토가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럴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