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고집하면 「안, 강, 최」다. ‘경상북도 경주에 있는 안강읍 최씨를 말한다’는 설도 있지만, 주로 ‘안씨, 강씨, 최씨 순으로 고집이 쎄다’라는 말로 통한다.
내가 살아보니 과연 그렇더라. 안씨는 상대적으로 희귀성씨라서 기억하기 쉽다. 우리 직장에서 두 분의 안씨 선배를 만났는데, 두 분 다 고집이 장난이 아니었다. 혀를 내두를 만큼.
나는 강가(姜家)이다. 내 여동생 강가는 내가 봐도 고집이 쎄다. 집에서 자기 고집대로 다 한다. 나름 고집이 있다는 내 매제도 꼼짝 못한다. 나는 여동생에 비하면 고집이 쎈 편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나도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 남들은 나한테 ‘고집이 만만찮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자는 남자 하기 나름이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그 반대도 있다. 우리 조직에서도 누구나 자기 하기에 따라 타인들에게 인식된다. 같이 근무하기 좋은 사람, 그저 그런 사람, 싫은 사람 등으로 분류될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나를 좋아한 상사분들이 몇이나 있었을까? 이 글을 쓰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일일이 확인해 본 것은 아니지만, 별로 많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에 나와 친한 우리시 간부 공무원이 술 한잔 하면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알기로 대부분의 간부들이 당신을 꺼려하더라. 승진 심사할 때 후보자 명단을 두고 당신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은 드물더라”
왜 그랬을까?
나는 일을 하면서 고집을 부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디서든 하고야 말았다.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가 커지고, 얼굴을 붉히며 상대가 누구든 어떻게든 끝까지 내 의견을 관철시키고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했다.
상대가 교수든 시민단체든 시의원이든 내 생각과 맞지 않고, 그들에게 뭔가 사사로운 감정이 섞여 있거나 경우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는, 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어떤 젊은 여성 시의원은 나를 무섭다고도 했다. 심지어 한 번은 내 업무와 관련있는 매우 영향력 있는 노조 간부들과, 또 한번은 어떤 교수님이랑 욕설을 섞어가며 싸운 적도 있다. 물론 그 때마다 바로 다음 날 당시 정무부시장님께 불려가서 주의를 받았었다.
우리시 내부적으로 부시장단과 회의할 때도, 박원순 시장님께 보고할 때도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초임 과장일 때 직속상관 실장님께서 “입을 재봉틀로 박아버릴라”라고도 하셨고. 고참 과장일 때 회의석상에서 부시장님은 “강과장, 너 조용히 해! 너만 얘기하냐?”라고 하신 적도 있다.
이런 사소한(?) 일 말고도, 나는 서울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윗분들께 대들어 총 4번의 유배(예기치 않은 좌천성 인사발령)를 당했었다.(이미 앞글 ‘나는 4번의 유배를 당했다’에서 자세하게 이야기 함)
이 모든 게 내가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겸손하지 않은 오만함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보통 윗사람은 그 일과 관련하여 직원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며, 다양한 방향과 이유를 가지고 넓게 본다. 그래서 일을 지시하고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좁은 시야로 그런 윗사람들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내 생각을 고집했던 것이다. 마치 내가 다 옳은 것인 양, 윗사람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내 의견이 맞다고 끝까지 우겼고, 그렇게 해서 결과가 잘된 일도 간혹 있었다. 그럴 때 나는 “그럼 그렇지, 거 봐 내가 맞잖아” 하면서 내심 으쓱하기까지 했다. 바보.
나는 멀리 보지 못했다. 설령 내가 옳다 해도, 시간을 가지고 그 분들께 설명을 드려서 충분히 내편으로 만들어 일을 더 수월하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놈의 ‘당장 뭘 하려고 하는 고집’ 때문에. 지금은 100% 후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