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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우 Jul 06. 2023

[순우여행노트 21] 정 깊고 다감한 베트남 사람들

베트남 인상(3)

  내가 베트남에 머무를 당시인 1990년대 중후반 우리와 베트남의 관계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베트남 경제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베트남의 개혁 노선인 이른바 ‘도이 모이(Doi Moi)’ 정책을 추진한 지 불과 10년 정도의 시점,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지향하지만, 시장경제의 장점을 활용하는 묘를 찾은 것이었다.  

    

  더구나 다행스럽게도 베트남은 우리 한국에 대해서 큰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북한과 외교적으로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와의 관계 개선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한때 그들을 적으로 삼아 피를 흘리며 싸우기도 했던 우리였지만, 그들에게 우리가 필요한 듯해 보였다. 중국의 등소평이 ‘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발 빠르게 배운 덕분이 아닐까도 싶었다. 기존에 베트남에 이미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던 다른 나라나 전통적인 우호 관계에 있던 나라들보다도 우리에게 더 큰 호감을 지니는 듯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일본처럼 그들을 한때 심한 곤경에 빠뜨릴 만큼 그들에게 무자비했던 적도, 중국이나 미국과 같은 큰 나라처럼 그들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로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인 것도 같았다. 같은 처지에 있는 약소국이지만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한 우리에 대해 쥐를 잘 잡는 가까운 친구로서 우리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오자이의 베트남 여성들(자료: m.post.naver.com)

  이러한 생각은 이른바 한류(韓流) 열풍이라는 것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 국가에 불어오기 시작하던 1990년대 중반부터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급속하게 전파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텔레비전을 통해서 안방극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가 베트남에 방영되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중국의 드라마도 가끔은 베트남 국영 TV인 VTV를 통해 방영되고는 하지만 우리의 드라마만큼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년 전 한국에서 방영되었던 TV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MBC, 1992)》라는 프로그램이 베트남에서 예상치 못했던 시청자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던 미스 항(Hang)의 말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사무실에서도 그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로 많은 수다를 떤다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그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에는 외출을 삼갈 정도로 그 드라마에 푹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TV 드라마는 베트남 사람들이 계속해서 사랑하는 가정엔터테인먼트의 하나로 자주 번역되어 방영되고 있다. 그들의 가족관계, 사고방식은 물론 그들 생활의 정서가 우리의 것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의 드라마에 그들의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도 같았다. 이렇듯 그들의 생활 정서가 우리와 비슷하다는 것은 그들의 가족제도가 과거 우리의 대가족 제도와 크게 닮아있고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환경, 역사 문화적인 배경이 서로 많이 비슷한 데서 오는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 방식이나 생활 정서가 우리의 것들과 비슷하다는 것은 내가 출장을 가서 지방에 있는 관료들을 접촉하는 과정에서도 쉽게 느낄 수가 있었다. 중앙 정부에서 손님이 오면 멀리까지 마중이나 배웅을 하는 것이 우리와 매우 비슷했고, 음식과 약주를 대접하면서 비공식적인 인간관계를 다져나가는 방식이 어찌도 우리의 것을 그대로 닮아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는 중앙 정부의 지원을 더 많이 받아내기 위해서 중앙에서 온 사람들에게 예의 있는 안내나 접대를 하는 일은 어느 곳에서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매사가 적극적일 뿐만 아니라 이른바 인간적인 마음과 정을 쏟아내고자 하는 그들의 태도가 남달랐다.       

베트남 골목풍경(자료: 네이버 블로그)

  이러한 우리 문화에 대한 그들의 호감과 정서적인 교감의 증거는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던 베트남의 팜 반 카이(Pham Van Khai) 수상의 행사 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팜 수상은 최근 베트남에서 방영된 우리 TV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았던 탤런트들을 청와대의 오찬에 초대하도록 요청했고 한다.      


  이러한 베트남 측의 특별 요청에 따라《유리구두(SBS, 2002)》라는 드라마에 주연으로 출연했던 탤런트 김현주와 소지섭이 우리 대통령이 주최하는 공식 오찬에 참석하게 되었다. 의 드라마나 영화가 이 나라에 수출되어 외화를 획득하고 있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들이 우리와 같은 정서와 감성을 가지고 우리의 것을 사랑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은 더욱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하노이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작별 인사를 나눌 때 눈물을 글썽이던 구웬(Nguyen)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던 구웬은 독신 아파트에 사는 나를 위해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의 아파트로 출근해서 집 청소와 빨래, 그리고 저녁 식사를 준비해서 차려놓은 뒤 퇴근을 했다. 그녀는 워낙 바지런하고 깔끔하기도 해서 무엇이든 하는 일이 틀림이 없었다. 그녀는 김치 담그는 방법을 쉽게 익힐 수 있을 만큼 손이 마디기도 하고, 여러 가지 한국 음식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솜씨가 있기도 했다. 나를 위해 1년을 일해준 구웬은 나의 귀국에 따른 작별을 앞두고 끝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무런 대비도 없었던 나로서는 한편 난감하기도 했다. 그들의 감성이 우리의 것보다도 더 여리고 다감한 것일까? 아니면 그들의 정이 더 깊고 따뜻한 것이 아닌지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베트남 노점 풍경(자료: 네이버 블로그)

  베트남 사람들을 여럿 대하면서 그들이 일반적으로 ‘수줍어하지만, 현실적(shy, but realistic)’이고, ‘연약해 보이지만, 강인한(fragile, but tenacious)' 그들의 모습에 대한 내 나름의 정의를 내리게 되었다. 조용하고 부드러우며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스러워 보이는 그들.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말 중의 하나라고 말하는 베트남어를 나지막하게 말하는 총명하고 영민한 그들.


  그들은 그들의 능력을 하루가 다르게 키워나가고 있다. 공산 사회주의의 유산을 떨쳐버리지 못한 ‘시장 사회주의’라는 독특한 형태의 경제사회 체제가 아직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슬기롭게 그들의 밝은 미래를 가꿔나갈 것이다. 누구보다도 더 많은 역경과 고통을 겪으며 지혜를 쌓고 역사를 만들어온 베트남 사람들은 그들의 조국을 분명 빛나게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2003.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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