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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우 Sep 21. 2023

[순우여행노트 31] 이웃나라 중국(2)

그 거대함(1)

   중국의 남부의 국경 지역을 찾았던 적은 몇 차례 있었지만, 중국 본토의 베이징을 처음으로 방문했던 1997년 여름, 내 첫 번째 여행지는 ‘명십삼릉(明十三稜, Mingshisanling)'이라는 곳이었다. Hualong국제여행사가 주선한 그룹투어에 참여해서 그곳을 찾았다. 명십삼릉은 베이징의 북쪽 교외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곳에는 베이징을 중국의 수도로 정했던 명나라 16명의 황제 중 베이징을 크게 부흥시켰던 제3대 황제 영락제(永樂帝)를 포함하는 13 황제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다. 13개의 능 중에서 유일하게 발굴이 되어 관광객 등에게 공개되고 있는 것은 제14대 만력제(万歷帝)의 황릉. 왜 그 황릉 하나만이 발굴된 것일까? 또 왜 문화혁명이 한창이던 1966~68년 사이에 이 황릉이 발굴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명십삼릉 전경(자료: 네이버 블로그 Paperhawk)

  하지만 이 황릉을 둘러본 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그것이 이집트의 왕 파라오들의 피라미드의 크기와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내 상상 이상으로 매우 큰 것이었다. 그 규모가 우리의 경주 천마총과 같은 무덤의 크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만력제가 22세 때 축조를 시작해서 6년여만의 공사를 통해 완성했다고 한다. 이 무덤을 발굴할 당시 이 무덤의 입구가 어디인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무덤의 앞쪽을 이른바 오픈 컷팅의 방식으로 길고 깊게 파낸 뒤에야 발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 우리 그룹을 안내하는 ‘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발굴 초기에 그들의 발견한 것 중에서 특이했던 점의 한 가지는 입구를 쌓아 올린 벽돌 모두에 그 벽돌을 만든 제작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고 했다. 품질을 보증하기 위한 ‘제품실명제’가 이미 지금으로부터 5백여 년 전에 시행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무덤의 내력이나 발굴 비화 등 어느 것 하나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특히, 그 무덤의 크기와 구조 면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무려 지하 27미터의 땅속에 만들어진 이 무덤은 전실, 좌우 측실, 보생실, 현궁석실 등 6개의 방과 무덤 입구 등 실로 무덤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크고 깔끔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지 죽은 자가 묻혀있는 무덤이 아닌 듯 느껴졌다. 6,000체의 병마 도용과 함께 거대한 규모로 건설된 진시황의 황릉에 비견할 수는 없었지만 10층 정도 깊이의 지하에 건설된 그 시설의 구조는 물론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력제의 무덤 6개의 방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그 방의 길이가 30M, 폭과 높이가 각각 9M, 9.5M인 현궁석전(玄宮石殿). 만력제와 그의 두 왕비의 시신이 안치된 이 방에는 그들이 묻혀있는 대리석관 이외에도 만력제의 옥좌와 두 왕비의 흰색 대리석 의자에는 용과 불사조가 조각되어 놓여있었다. 모든 것들이 매우 단순한 디자인의 돌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과 조금도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황제는 사후에도 통치한다(Emperor reigns after the throne.)’는 말을 실감케 할 수 있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황제 스스로가 자신의 무덤을 만들며 분명히 꿈꾸었을 그의 영원한 삶과 군림에 대한 그의 간절한 소망이 아직도 그곳에 서리어있는 듯했다. 관속에서 이미 수백 년을 잠자고 있을 만력제가 갑자기 관의 뚜껑을 열고 불쑥 일어서기라도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 오래전에 유명을 달리한 사람이 아니라 조금 전 만 하더라도 따스한 체온을 가지고 있었던 보통 사람이 말이다.

  명십삼릉은 그 면적이 무려 40평방킬로미터에 달하고 좌로는 호산, 우로는 용산을 끼고 오른쪽 한곳으로는 베이징의 수원이 되는 강의 댐이 자리하고 있었다. 명십삼릉이 있는 곳으로부터 버스로 30여 분쯤 걸리는 곳의 만리장성(萬里長城)이야말로 중국의 크기와 중국인들의 스케일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보는 명소가 아닐 수 없었다. 발해만의 산해관(山海關)이라는 곳으로부터 시작되는 만리장성, 중국인들이 창쳉(長城, Changcheng)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 거대한 인공축조물은 중국 서부의 고비사막의 가곡관(嘉谷館)에 이르기까지의 직선거리가 약 4,000Km, 중국의 중심부 지역을 두세 겹으로 싸고 있는 장성의 총길이를 합하면 무려 6,700Km에 이르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방대한 것이다.

만리장성 경관(자료: 인민회보)

  달에서 유일하게 관측되는 인공축조물이라고 하는 이 장성은 기원전 5세기 진나라의 시황 대에 흉노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 그 숱한 비화를 만들어내며 쌓아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현재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모습은 명조에 축조된 것들이라고 하는데 베이징의 북부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팔달령(八達嶺) 고개 부근으로 연이어 있는 장성은 관광객들이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단장이 되어있었다. 주차장이 있는 곳 가까이에서부터 경사진 산등성을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길게 뻗어있는 장성은 그곳으로부터 약 2킬로미터쯤의 거리에 그 지역에서는 가장 높다란 888미터 고지의 정점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여행안내 책자에는 만리장성 성곽의 높이는 평균 7.8미터, 성 아래쪽의 폭은 6.5미터, 위쪽의 폭은 5.8미터로 3내지 4마리의 말이 나란히 함께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폭이라는 설명이 있다. 성벽의 윗부분은 2미터쯤의 간격으로 약 두 자(약 60센티미터)쯤의 폭을 가진 요철형의 돌출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 모습 자체는 우리의 머리가 쉽게 그릴 수 있는 성곽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규모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웅대한 규모의 성곽이었다. 400M쯤 되는 1개 구간의 성벽을 쌓는데 만도 30만 명의 인원이 1년이라는 기간을 일해야만 하는 규모의 일이라고 했다.

  만리장성은 노사차관(老舍茶館)이라고 하는 민속공연 찻집의 안내 팜플렛에 나와 있듯이 명실공히 중국을 대표하는 상징물의 하나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베이징에 머물렀던 날 중의 맨 마지막 저녁의 식사 후에 찾았던 노사차관은 중국의 전통적인 악기의 하나인 호금(胡琴)의 연주는 물론 모노드라마형식의 평극(平劇), 보통의 단막 연극과 같은 경극(京劇), 몸짓과 입술 모양으로 말하는 시늉을 하는 사람이 있고 별도로 뒤에 있는 다른 사람이 대사를 말하는 2인조 형식의 만담극(漫談劇)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대중적 공연을 하는 곳이었다. 모든 것들이 그들의 말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 뜻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약 한 시간 반의 시간 동안에 그들의 다양한 민속문화의 면모를 대충이나마 접해볼 수 있었다.

노사차관 전면부 전경(자료: 네이버 카페 - 베이징365일)

  노사차관은 근대 중국의 유명한 문인이었다고 하는 노사가 쓴 『노사차관(1958)』이라는 책의 이름을 본떠서 지은 찻집을 겸한 민속공연장. 노사(老舍, 1899~1966)는 문화혁명의 시련을 끝내 감내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지식인으로서의 항거를 실천하였다고 한다. 당시 공산 중국의 제2인자였던 주은래(周恩來)는 그 누구보다도 노사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한다.

  노사차관을 알리는 작은 팜플렛의 뒷면에는 ‘베이징을 방문하는 관광객 모두가 말하기를 만리장성을 가보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고, 페킹 덕Peking Duck을 먹어보지 않으면 유감일 것인 바, 민속문화를 볼 곳은 바로 노사차관이다(來北京濾游的客人都說: 不到長城非好漢,未걸烤鴨悳有感, 民俗文化何處覽老舍茶館展奇觀.)’라는 재치 있는 문구가 쓰여 있다. 숱한 비화와 애환 속에서 수많은 사람의 땀과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 만리장성. 그 속에 스며있는 역사의 숨결을 아는지 모르는지 섭씨 37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곳 장성의 정점에 올라 쭉 가슴을 펴기도 하고 주위를 돌아보기도 하였다. 그들은 마치 진나라의 시황제가 그 장성의 어디쯤 높다란 곳에 올라 끝없이 뻗어있는 장성을 바라보며 천하를 주유하는 호연지기를 품었던 것과도 같이 모두 묵묵한 모습으로 주위를 둘러 장성이 멀리 뻗어간 쪽을 오랫동안 응시하는 듯해 보였다. (계속...) (2003.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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