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생물과 검은 정장 그리고 투쟁

정보라 작가의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를 읽고

by 만자


<문어>
책을 펼칠 때 가장 설레는 순간은 첫 문단이 기대된다. 속을 알 수 없는 생일 선물을 열기 직전의 긴장감, 첫 모임에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두근거림. 근데 첫 문장부터 위원장에게 그걸 왜 먹었냐고 묻는다. 위원장은 잠결에 보니 문어가 다가오고 있었고 그걸 먹었단다. ...네? 첫 페이지를 읽을 때 나는 인터넷에 유명한 짤방중 하나인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라는 표정을 지으며 읽었다. 첫 이야기 문어는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혼돈의 티키타카를 보여주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과 위원장의 이야기에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라며 계속 읽었다. 내가, 이 상황이었다면 정신을 못 차렸을 텐데 그래도 정신을 붙잡고 자기 할 일을 착실하게 해나가는 주인공이 대단해 보였다. 그렇게 충격적인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는 주인공의 고백으로 첫 만남을 끝냈다. 근데 나는 문어가 질겨서 싫어한다.

<대게>
잔인한 권력 아래 노동의 가치는 빛을 잃었다. 태어난 그곳을 버리고 안전한 이주가 아닌 위협으로부터의 도망을 선택한 대게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과 '종'만 다를 뿐이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은 남편과 같이 수산물 가게에서 러시아어를 하는 대게를 만났다. 대게는 러시아 정부가 해저 가스관 설치하면 깨끗하고 추운 북쪽으로 이주시켜 주겠다 했다. 대게는 정부의 요청을 수락했지만, 결과는 도망이었다. 여기서 검은 정장이 또 나온다. 이제 반가운 마음이 든다. 검은 정장은 대게를 설득해 위험할 수 있는 대게를 안전하게 이주를 시켜주겠다는 말을 하지만 대게는 저항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의 인권을 무시하는 세상에서 대게의 말을 들어주겠는가? 주인공은 울면서 대게에게 검은 정장의 말을 듣고 안전한 곳으로 가라고 말한다. 대게는 주인공의 말에 설득당하고 울고 있는 주인공을 달래며 알겠다고 대답한다. 울고 싶은 건, 사실 대게였을 텐데….


<상어>
주인공이 다시 등장한다. 이번에는 남편의 입원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편의 재입원, 끝나지 않는 고통, 영영 회복 할 수 없는 불안. 주인공은 병원에서 알 수 없는 사람에게 받은 명함을 받는다. 사기를 당할 수도 있다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상황들이 주인공을 의문의 명함 속 그 장소로 안내했다.
도착하니 입만 웃는 등산복 차림의 남자와 천장까지 쌓아 올린 수조 속에 루비처럼 반짝이는 상어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전에 봤던 모양만 똑같은 대게와 예전에 봤던 문어와 세로로 뛰는 물고기, 새까만 조개, 등산복 사람의 설명은 흘려들은 채 이야기가 오가는 순간, 검은 정장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제 이 사람들 안 나오면 섭섭해진다. 등산복과 검은 정장의 쫓고 쫓기는 도주극이 펼쳐지는데 이때 어머니와 전동스쿠터 군단이 등장한다. 마치 위기에 빠진 히어로 앞에 등장하는 조력자의 모습처럼. 어머니의 활약으로 등산복 사내는 잡혔다.

<개복치>
이번에는 선우라는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제는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건가? 아빠와 함께 잠수함을 타러 갔다가, 거기서 또 다른 잠수함을 발견하고 모험에 휘말린다. 이 이야기는 어쩌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된 바닷속 모험 이야기이다. 바닷속에 개복치를 만나게 되는데 선우는 구린내와 비린내, 끈끈한 점액에 괴로워한다. 이 불쾌한 상황에 선우는 울고 싶어진다. 그때 돌고래가 웃으며 평온하게 누워있는 개복치를 뒤집기 시작한다! 개복치 위에 있던 선우는 그대로 빠져 잠수함에 멀어져 길 잃는다. 그때 선우에게 대게가 등장한다. 대게는 선우를 보호하며 작은엄마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며 지나가던 개복치에게 내려놓는다. 그리고 개복치 따라나선 선우는 다시 잠수함으로 돌아가고 그 잠수함은 처음에 탔던 큰 잠수함으로 돌아가 아빠에게로 간다. 바닷속 모험은 끝이 났다. 돌고래가 계속 밀치면 개복치는 안 싸우고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한다. 크니까 안 싸운단다. 그러면 우리도 싸우지 말아야 하나?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하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알겠지.

<해파리>
살해당한 비인간 귀신을 본 적이 있는가? 구미집회 운동으로 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주인공은 부드러운 죽음이 자기를 감싸는 꿈을 꾼다. 주인공은 해파리를 만나고 다리 쪽에 쏘여서 발이 붓기 시작하고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는 길에 차밖에 날아다니는 해파리를 보게 되고 또 검은 정장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그 해파리는 왜 살해당했을까? 느닷없이 위로 쏟아진 인간들이 쏘아 올린 미사일과 포탄에 맞아서?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잡은 인간들 때문일까? 그래서 해파리의 억울함이 분노로 바뀌어 주인공에게 화풀이한 걸까?


<고래>
바다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주인공은 원전 폐수 투기 반대 행진에 참여한다. 거기서 이번엔 등산복을 입은 검은 정장 무리를 보게 된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주인공은 지인들과 워크숍을 하는데 갑자기 솟아오른 쓰나미와 함께 평평한 등에 둥글고 기다란 형체, 납작한 지느러미 두 개가 튀어나온 무언가에 공격당한다. 하늘과 바다가 뒤집히는 순간에 '저항하라'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바다 생물들의 반격이 시작된 걸까 검은 정장은 철수하며 전부는 아니라며 바다로 들어가 검은 고래로 바뀌어 하늘로 올라가며 사라진다. 조금 서운한 마음도 들지만 고래를 마지막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정보라 작가의 SF소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책은 SF, 판타지를 좋아하는 나에게 재미있게 읽었다. 근데 너무 재미있는 나머지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기가 조금 힘들었다. 소설 중간중간에 바다 환경 이야기, 노동 이야기가 섞여서 이야기가 휙휙 바뀌고 메시지는 여기저기 들려온다. 지금 이 책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뭘까? 하는 궁금증도 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생각에 빠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