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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린 Apr 09. 2024

꿈이 생기자 샤넬백을 팔았다.

사치라는 것은 내가 나를 보듬어주기에 가장 비싸고 쉬운 방법이더라



실패와 체념으로 반복된 인생의 끝을 기다리는 와중에 꿈이 생겼다. 바로 '작가'가 되는 것이다.


작가의 사전적 의미란,


작가(作家)는 예술과 취미의 분야에서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때 작품이 반드시 문학 작품일 필요는 없으며, 문학 작품인 경우에는 저술가라고 불리지만, 일반적으로 작가라고도 하는 경우가 많다.

From wikipedia


작가는 오래된 꿈이기는 했다. 학생 때 메모장에 혼자 끄적이던 소설들이 몇 개 있었으니까. 책 읽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초등학생일 때는 스마트폰이 없었고 컴퓨터는 있었는데, 컴퓨터는 비싸서 사달라고 못했다. 당시 우리 집은 꽤 가난한 편에 속했다. 그리고 내가 살던 곳은 촌이었어서 PC방 같은 것도 없었다. PC방의 존재를 중학생 때 이사 오고 나서 알았다. 집은 또 학교에서 멀어서 친구들이랑 놀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학창 시절 유행 같은 것에 느렸다.


따라서 촌동네 구석에 사는 여아가 즐길 수 있는 놀거리라고는 문방구에서 파는 장난감, 혹은 책뿐이었다. 더군다나 내 어머니께서는 하루 한 권 어떤 책이든 꼭 읽어야 한다는 규칙을 세우셨기 때문에 책이란 것은 내 어린 시절에서 빼려야 뺄 수 없는 유희거리였다. 하루에 한 권, 읽지 않으면 혼이 났기에 억지로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게 늘어서 책에 나오는 단어를 굳이 사전에서 찾지 않아도 뜻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장르를 불문하고 하루에 5~6권 정도를 읽었다. 초등학생일 때는 해리포터를 너무 좋아해서 원서도 읽었다. 물론 나는 똑똑하지 않아서 사전이랑 같이 펴고 단어 하나하나 해석해 가면서 읽었다…. 중학교 도서부 회장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하루에 10권은 우습게 읽었다. 가장 좋아했던 책은 법정스님의 무소유였다. 문장 몇 개를 외우고 다니면서 인생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메모했다. 또라이 아냐?


돌이켜보니 진짜 또라이가 맞았다. 


어지간한 동급생 및 선배들이랑 말이 안 통했고, 이야기할 친구가 적던지라 구어체보다 문어체를 구사했으며, 나는 자주 이상한 말을 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아무튼.


예전부터 무협지를 유독 좋아했다. 가장 좋아했던 작품은 단그리 작가님의 남궁지사. 일반적인 소설 입문은 알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었어서. 다만 무협, 판타지 소설 입문은 15세였다. 중2 여학생이 읽기에는 좀 하드 한 취미였던 것이, 당시 주로 해당 장르를 접할 수 있던 곳은 책방이었고 책방의 무협지 라인은 중년 아저씨들이 점령했었다. 그 사이에 껴있는 교복이 얼마나 이상했을까. 아닌 게 아닌 것이 쉽게 접한 무협지라는 장르는 19금 장면이 적나라하게 적혀있었다. 중학생인 나는 '무협'을 읽고 싶었지 성인물이 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런 류의 파트는 그냥 넘겨버렸다. 재미없어.


혹 여러분은 사춘기 청소년을 가까이에서 본 적 있을까? 특히나 자라나는 사춘기 소녀의 집중력은 거의 광기다. 그 나이에는 진실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면 절대로 집중하지 않는 까닭이다. 이것을 잘 기억해야 한다. 이때 억지로 무언가를 시키거나 억압하면 안 된다. 어차피 절대 안 한다. 여기서 이과적인 태도를 취하자면 호르몬 어쩌고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요는 흘러가게 두면 된다는 것이다.


정말 물 흐르듯 산 것 같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주변의 만류에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리고, 다음에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미술입시학원을 갈 돈이 없어 포기했다. 결국 나의 선택은 상대적으로 취업난이 덜 심각한 공대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여태 한 게 아깝지도 않냐는 말을 자주도 들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내 선택이 옳다고 말했다. 그 말에 기생해서 여태까지 살아남은 것 같다.


나도 내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학업이나 진로라는 것에 있어서 옳고 그름이 어디 있겠어. 다만 항상 미련이라는 게 남아있었는지 책을 놓지는 못했다. 그리고 작가의 꿈을 접었던 나에겐 아주 오래된 습관이 있었다. '망상'이었다. '상상'이라는 좋은 말이 있건만 왜 하필 '망상'인가 하면, 내 것은 조금 구체적이면서 현실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무언가를 머릿속에서 그려냈다. 머릿속의 세계에서 '나'는 전지전능했다. 좋아하는 소설 속 캐릭터들도 만나고, 친구들이랑 하루종일 간식파티를 하고. 심지어 똑똑하고 돈도 많았다. 어머니 아버지는 나를 때리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문구점 아주머니랑 시장 데이트도 했다.


망상은 꽤 좋은 도피처였다.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 실제로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불행해지지도 않았다. 아직도 출퇴근 중에 이런저런 망상을 하고는 한다. 15년은 넘은 이 습관은 이제는 없으면 서운할 지경이다. 흔히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망상은 내가 웃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히히. 그래, 도망치면 이렇게 웃는 날도 오는 법이다.


밉지만 내가 좋아하는 동생과 고양이 둘을 데리고 살면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니 문득 그 망상을 엮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 들 수 있겠다. 제일 큰 것은 내 이기적인 욕망이다. 재미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 보자기로 잘 감싸놓은 내 꿈말이다. 볼품없어도 내가 보기에 가장 예쁘고 소중하다. 그러니 그렇게 꽁꽁 숨겨뒀지.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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