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였던 돌고래의 비상
리더가 되어서 단원들을 모집하고 적극적으로 단원들을 이끌다 보니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나의 모난 성격을 원만하게 바꾸는 일이었다.
그것은 호박을 수박으로 품종개량하는 것만큼이나 괴로웠다. 성격은 타고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 용감하면서도 진취적인 성격, 언변이 좋으면서도 친화력이 좋은 성격, 등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로부터 어떤 유전자를 받느냐에 따라 성격들은 정해지기 마련이다.
물론, 자라면서 성격이 바뀌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타고난 성격 그대로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내 성격은 리더를 하면서 바뀌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급하고 다혈질에다 덤벙거리는 기본적인 성격들은 바뀌지 않았다. 이것들은 아무리 마인드컨트롤을 하면서 훈련을 시킨다 할지라도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하게 되면 타고난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다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많은 변화가 온 것은 사실이다.
리더를 하기 전, 나는 세상을 무척이나 부정적으로 여겼었다. 알코올중독자였던 아버지를 잘 못 만나서 중학생 때부터 신문팔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정도로 극심한 가난에 시다렸고 형제들 중에서도 가장 키도 작으면서 나중에 체중미달로 군대조차 입대하지 못할 정도로 비썩 마른 체형이었다.
그렇다고 공부라도 잘할 정도로 머리가 뛰어났다면 모를까 성적은 바닥이었다.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수학은 시험 때마다 단 한 문제도 풀지 못해서 선생님께 빠따를 맞거나 원산폭격을 당하기 일쑤여서 나의 자존감은 땅바닥을 기어 다녔다.
나의 어릴 적 꿈은 아인슈타인 같은 위대한 과학자였어도 수학을 전혀 못하는 나로서는 그저 꿈일 뿐이었다. 내가 왜 수학을 그토록 못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학문과 달리 수학은 기초를 잘 모르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학문이다. 만약 내가 경제적으로 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어쩜 수학을 잘했을지도 모르겠다. 가정교사에게 수학을 집중적으로 배우면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의 자유의지대로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지 않은가?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길을 걸을 때는 앞을 똑바로 보지 못한 채 땅바닥만 보고 걸었다. 그러다 마주 오던 사람을 피하지 못해서 소처럼 들이받기 일쑤였다. 여자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설령 봤다고 할지라도 얼른 고개를 떨구었다. 그랬던 내가 갑자기 청년단체 단장이 되어서 리더가 되었으니 그때 내가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상상이 안 갈 것이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시작된 나의 리더 생활은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다.
그때의 나는 바위에서 떨어져 나와 냇물에 빠진 날카롭게 모난 돌멩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 모난 돌멩이가 물에 씻기고 깎여져서 둥그런 자갈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거쳐야 하겠는가. 또한, 나의 날카롭고 친화적이지 못했던 성격으로 인해 함께 레지오를 했었던 많은 청년 단원들도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둥지 같은 곳으로 봉사활동을 나갈 때는 단장인 내가 돌격대처럼 앞장서서 온갖 궃은일들은 도 맡아서 했었다. 지금에 와서 보니 레지오란 청년단체는 내게 가장 잘 맞는 단체였을 것이다. 성당 내의 다른 청년단체들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신자들에게 인기를 끌지도 못했지만 그런 것들은 내겐 중요치 않았다.
레지오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단체다. 레지오단체의 존재 목적은 자신의 성화를 통하여 이웃들에게 거룩하신 하느님을 전파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레지오에서는 잘 나지 않아도 된다. 똑똑하거나 머리가 좋지 않아도 된다. 마치 예수의 으뜸 제자였던 베드로 사도처럼 우직하게 예수를 믿고 따르는 믿음만이 필요할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루저였던 내가 레지오 안에서는 푸르고 넓은 바다의 돌고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