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못했지만 후회는 없다
* 만만해보이는 여자에게도 차이자 이번에는 어느 남자라도 한눈에 반할 것 같은 여자에게 대시했다*
그녀는 큰 눈망울에 웃는 모습이 너무도 매력적이고 이뻤다.
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이 작아서 별명이"단추구멍"이었던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도파민이 솟구치면서 여자에게 빠져들고 말았다. 남자가 여자에게 매력을 느낄 때 걸리는 시간은 단 몇 초가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극히 짧다. 속된 말로 한눈에 여자를 보고 반한 것이다.
여자를 처음 본 곳은 우리들이 자주 봉사활동을 나갔던 행려자들의 쉼터인 "사랑의 둥지"였는데
"사랑의 둥지"는 여러 성당 청년단체에서 온 청년들로 항상 북적였다. 그녀도 많은 청년들 틈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나 또한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녀처럼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도록 주방에서 쌀을 씻고 국을 끓이며 열심히 함께 일했다.
때는 11월 중순,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여서 밖은 추웠지만 주방은 음식들을 요리하는 열기로 인해 추위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후끈거렸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조금 친하게 되었는데 여자는 동대문성당을 다녔지만 집은 우리 동네와 가까운 월곡동이었다. 왜 그녀가 집에서 가까운 성당이 아닌 멀리 떨어진 동대문성당 청년단체에서 활동하게 된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친구를 따라서 그 성당을 다니게 된 것 같았다.
여자에게 집에서 가까운 성당으로 옮길 것을 슬쩍 말해보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기에 그 문제에 대해선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이제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알게 되었으니 그녀의 가슴으로 통하는 철로를 까는 작업을 열심히 하였다. 그녀는 순순히 마음을 내주지 않았다. 그저 봉사활동하면서 얼굴을 보는 정도면 족하다는 것이다. 여자가 이 정도로 나온다면 한 마디로 나란 남자는 여자의 마음에 별로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 아니겠는가?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었던 나였기에 여자가 순순히 내게 마음을 주지 않을 것은 너무도 당연하였다.
그녀가 쉽지 않은 여자라는 것을 직감하였지만 이대로 시원하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여자가 내 이상형이었고 그녀의 모든 것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기에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계획했다.
즉~여자가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미리 잠복해 있다가 그녀가 나타나면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말이다. 하루, 이틀, 사흘... 초겨울 찬 바람이 쌩쌩 불어오는 길 모퉁이에 서서 몇 날 며칠을 기다렸어도 그녀를 만날 수가 없었다. 오일째 되던 날, 드디어 퇴근해서 돌아오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지만 그녀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도 나란 남자가 자기를 길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여자는 나를 보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 미소는 초 겨울 찬바람 속으로 흩날렸다. 그녀와 나는 한 동안 허색하게 서 있다가 찜통에서 수증기를 화산처럼 뿜어대고 있는 근처 만두가게로 여자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녀와 처음으로 단 둘이 마주 앉게 되었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여자는 내가 처음부터 자기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우연을 가장했던 나의 어설픈 계획은 눈치 빠른 여자에 의해 들통이 났기에 더 이상 나의 속 마음을 감추는 것은 무의미했다.
만두집 주인이 김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몇 개의 만두를 접시에 담아왔다. 나는 그중 두 개의 만두를 작은 접시에 담아 여자 앞에 내밀었다.
그녀는 한 동안 만두를 쳐다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왜 저를 기다리고 계셨나요?
여자의 한 마디에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어린아이처럼 내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너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나란 남자의 심장은 매우 허약하다는 사실을.
아 아니... 저... 저는 그저 한번 만나보고 싶었을 뿐... 뿐입니다..
갑작스러운 여자의 질문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까지 더듬었다.
우리는 가끔 "사랑의 둥지"에서 만나잖아요...
여자의 차가운 한 마디는 뜨거운 김을 뿜어대는 만두조차도 식혀버리는 듯하였다. 사랑의 둥지에서 봉사하며 만났을 때 잘 웃고 농담도 잘했던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마치 나를 의도적으로 떨쳐내기 위해 내뱉는듯한 말투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나의 속마음을 감추는 것은 무의미하게 보였기에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였다.
저... 사실은 그쪽을 좋아합니다.
"사랑의 둥지"에서 봉사자로 만나는 것 말고 여자친구로 만나고 싶습니다.
나의 말에 여자는 아랫입술을 약간 내밀어서 후~하고 바람을 위로 뿜었다. 여자가 내뿜는 입김에 그녀의 앞 머리카락이 위로 솟구쳤다.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하였겠는가?
한 마디로 나란 남자는 전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자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저는 말이에요... 조만간 다니던 직장도 정리하고 수녀원에 들어갈 거예요...
여자의 말 한마디에 그녀에 대한 환상으로 지어놓았던 스위트 홈은 지진으로 일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하고 많은 여자들 중에서 하필이면 수녀가 될 여자를 좋아했다니... 그녀가 정말 수녀원에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나를 떨쳐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여자의 표정으로 보아 거짓인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여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어릴 때부터 수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저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 하지도 않는데 많은 남자들이 저의 속 마음을 모르고 대시를 하였어요. 이제 저 좋다는 남자들 퇴짜 놓기도 지쳤는데 또다시 형제님에게 대시를 받고 보니 나도 모르게 화가 나더군요. 하루라도 빨리 제가 수녀원에 들어가야 이 시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자의 얘기를 듣고 나자 그녀가 왜 내가 대시를 했을 때 아랫입술을 내밀어서 입김을 후~하고 불어
자기 앞 머리카락을 솟구치게 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동안 많은 남자들이 자기에게 대시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또 너냐? 하는 투였다.
이런 상황에 닥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물론, 대한민국 헌법에 수녀원에 들어갈 여자에게 대시를 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거니와
수녀가 된 여자에게 청혼을 하지 말라는 법 또한 없다. 속세를 떠난 스님이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수녀에게 홀딱 반해서 몇 년동안이나 쫓아다니다가 결국엔 부부가 된 실제 사연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특별한 경우와 일반적인 것은 구분해야 한다.
여자가 오지게 마음을 먹으면 그 어떤 남자가 대시를 했어도 결코 좋은 결과가 되지는 않는다.
만의 하나, 내가 수녀원에 들어갈 여자를 지구 끝까지 쫓아다녀서 결혼했다고 가정을 해 보자.
그렇게 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은가?
여자는 살다가 조금이라도 시련이 닥치면 수녀가 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며
나는 그 원망을 평생 들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결혼은 서로가 원하는 상대끼리 했을 때 행복이 보장된다. 어느 한쪽이라도 절대 원하지 않는 상대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불행의 지름길이라는 것은 상식 아니겠는가?
여자의 단호한 말을 듣고는 나도 즉시 마음을 털었다.
아!~그러셨군요 솔직히 말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하는 수녀원에 잘 들어가셔서 행복하시기 바라요. 더 이상 쫓아다니지 않겠다는 화끈한 나의 말을 듣자 그녀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접시에 담긴 만두는 식어서 더 이상 김은 올라오지 않았지만 시베리아처럼 냉랭했던 분위기는 그녀의 미소 속에 온기를 되찾았다.
우리는 "사랑의 둥지"에서 만났을 때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식은 만두를 먹고 헤어졌다.
비록 그녀에게 퇴짜를 맞긴 하였지만 후회는 없다.
만약 내가 여자를 짝사랑만 하고 대시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녀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테니까.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쟁취하는 것은 진리지만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는 것 또한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