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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Dec 02. 2024

초심은 초심일 때 빛난다

한 번쯤은 초심을, 지금을 마주해보고 싶었다


지난 주말 아침, 알람 없이 눈을 떴다. 무심코 본 휴대폰 알림에는 '5년 전' 사진이 한  떠 있었다.



5년 전, 왜 그곳에 갔었을까.


2019년 하반기는 찬바람 쌩쌩 불 던 시기였다. 세상 불안했던 취준생이었기 때문이다. 수차례의 불합격 통보를 견뎌야 했다. 그러다 9월 말에 현재 재직 중인 회사의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 10월 중순에 필기 합격 통보를, 1차 면접을 거쳐 11월 초에 최종 면접 대상자 통보를 받았다. 면접 후 최종 발표 일정까지는 또다시 한 달이 걸렸다...



그 기다림의 시기의 어느 주말, 홀로 기차여행을 떠났다. 출발지는 '절에 가서 기도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고, 도착지는 영주 부석사였다.  왜 하필 부석사였는지는 그때도 지금도 잘 모르겠다. 노력이 가상하도록,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었으면 했던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당시 서울에서 취업준비를 했던 터라,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탔다. 풍기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목적지인 부석사에 도착했다. 태어나서 처음 가본 영주였고, 부석사였다. 조용히 구석으로 가서 둘러보다 돌 하나를 집었다. 합격을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 위에 소망을 얹었다.



아주 소박하게 미니 소원 탑을 만들었다. 그렇게 목적을 달성했다. 답답했던 마음을 혼자 멀리 떠나는 기차여행으로 위안 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먼 길을 가서 기도하는 정성이 하늘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힘없는 취준생은 아주 작은 돌탑 하나에 기대를 걸었다.




최종 합격 발표 당일, 약속의 시간이 다가왔다. 채용 사이트에 로그인하기 전, 마지막으로 기도했다. 합격만 한다면 정말 열심히 일하겠다고, 착하게 살겠다고, 감사하며 살겠다고.


그 간절한 마음이 입사 전 '초심'이었다.


부석사에 쌓아 올린 정성이 통해서였을까, 원하던 회사에 무사히 합격했다. 연수원에 입소해서 교육을 받으며 대기업 뽕?에 취했다. 은행장님께 사령장을 받을 때 "대구경북을 책임지겠습니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지역대표님과 대구경북 신입행원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한 마디씩 할 때 같은 말을 했다.


조직에 기여하는 것이 나의 입사 후 '초심'이었다.







초심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몇 이나 될까.


초심을 쉽게 잊을 만큼, 예상보다 은행 영업점 생활은 더 힘들었다. 업무도, 손님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늘 공허했다. 그래서 역량 개발에 힘썼다. 필수 자격증도 빨리 땄고, 온갖 연수를 다 신청해서 들었다. 주말에도 연수를 듣고, 공부했다. 그렇게 2년 정도를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인사 발령 시기 때마다 서울 희망 본점 부서에 공모 지원을 했다.

결과는... 계속 바뀌지 않았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노력한 만큼만 기대한 것이었는데 허무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깨달음을 얻었다기보다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더 이상 서울 본점에 가기 위해 나의 에너지를 쓰지 않겠다고. 조직에 대한 불만도, 욕심도, 오만함도 모두 다 내려놓았다. 




그리고 구미로 인사 발령이 났다.

구미로 오면서 그간 짓눌렸던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됐다. 타지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바뀌었다기보다는 성장하고 있다. 혼자 사택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기 계발을 할 시간도 충분하고, 독립된 생활을 마음껏 누리고 있기도 하다. 독서와 글쓰기 덕분에 생각하는 힘도, 일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부분들도 많이 달라졌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과거보다 성장했음을 느낀다.




살다 보면 위기가 기회가 되는 순간이 온다. 원하는 바를 당장 손에 넣지 못하더라도 계속 불행해하지 않아도 된다. 취업 준비로 한창 힘들었을 때, 위로가 됐던 말이 떠오른다. '만약 어느 회사에 불합격했다면 그건 신이 나를 구해준 거라고, 그 회사에 다녔으면 무슨 일이 생기거나 안 좋은 일을 당했을 거라고.'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이 너무나도 최선으로 느껴진다. 다 그럴만해서 그런 거다.



원했던 부서로 발령이 나지 않은 건, 지금이 나를 위한 더 나은 상황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초심'은 '처음에 가지고 있던 마음'을 의미한다.

'초심을 항상 기억하자', '초심으로 돌아가자',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 이런 말을 자주 들어왔다.


 초심으로 꼭 돌아가야 할까...?



지금은 그 초심을 가졌던 때와 사뭇 다르다. 그때는 패기 넘치던 신입행원이었고, 지금은 조직에  동화된 여느 직장인 중 한 명이다. 그렇기에 초심은 초심일 때 가장 빛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때의 초심을 지금 붙잡고 간다고 해도 그때의 내가 아니기 때문에 다소 어설퍼질 것만 같다.


그때의 초심을 부정하지 않되, 지금 상황에 맞춰 재설정해보면 어떨까? 지금은 조직을 위해 충성하고 싶은 마음은 크지 않다.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 조직을 위하는 것이라는 말에 더 공감한다. 출근을 해야만 월급을 받을 수 있고, 열심히 영업 성과를 내면 조직은 보상을 해준다. 보상을 잘해주는 영역에 집중해서 영업을 했더니 재미가 따라왔다. 요즘은 그 재미로 나름의 의미를 느낀다.



한 가지는 그래도 잊지 않고 싶다. 지금 다니는 이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서 가졌던 그 간절함을 존중한다. 그리고 감사함을 다시 느껴보려 한다. 여전히 이 일이 적성에 맞는지,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 5년 정도 되는 이 직장 생활이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




초심은 초심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어쩌면 우리는 초심을 잊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초심을 회고해 볼 만큼 여유가 없다. 출근이 매일의 최선이고, 지금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초심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5년 전 사진을 보다 우연한 기회에 초심을 떠올렸다. 초심이 정답은 아니기 때문에 초심을 잃었다고 흔들리고 싶지는 않다. 그때는 그랬다고, 간절했던 마음과 감사함은 그래도 잊지 말자고. 지금을 살아가기에 정도로만으로충분하다.



당신에게는 어떠한 초심이 있었나요?라는 물음을 조심스럽게 던지며 글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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