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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Dec 22. 2024

여행도 성장한다

연륜은 그렇게 귀여움이 된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주말마다 가깝든 멀든 여행을 자주 데리고 가주셨다. 언제쯤 어디로 갔었는 지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희미해진 세월들 합쳐져서 '어릴 때 참 자주 놀러 다녔지'라는 추억의 문장으로 곁에 남아있다.



조금씩 커가면서 가족 여행을 떠나는 횟수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학업에 충실하느라, 부모님은 생업에 충실하느라 각자의 세월을 보냈다. 20대가 되어서는 여행을 함께 떠나는 대상은 친구들이었다. 늘 함께 여행하는 친구가 생겨서 그게 익숙하면서도 편했다. 그렇게 몇 년간을 친구와만 좋은 경험을 하고 다녔다.




직장인이 된 후 30대의 여행은 조금 더 특별해졌다. 요즘은 조부모님을 모시고 다 같이 여행을 다닌다. 그 횟수가 열 손가락으로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꾸준히 부지런히 늘어가고 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 돈으로 가족 여행을 다녔고, 부모님 돈으로 20대 청춘에 세상을 마음껏 구경했다. 서로의 세월이 흘러, 지금은 직접 번 돈으로 부모님을 위한 여행을 계획하고 행한다.


돈을 벌면서 생활면에서 여유가 생겼다. 시간 되는 주말이나 휴가 때 리조트를 예약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모시고 다 같이 놀러 간다. 어느 순간부터 어른들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 속에서 '행복'을 발견했다. 행복은 빈도의 영역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자주 행복을 느끼기 위해 함께하는 여행을 이어가고 있다.




주말에 시간을 내고, 휴가를 가족 여행에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지출도 물론 많다. 그럼에도 3대가 함께 하는 여행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 부모님, 조부모님, 그리고 외조부모님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건강하게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도 감사하다. 지금 아니면 안 되는 이 시간을 붙잡을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여행을 다녀오면 할머니는 늘 덕분에 구경 잘 다닌다고 고맙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곤 볼에 뽀뽀를 해주신다. 할머니 손을 잡고 걸으면 말로 표현 못할 뭉클함을 느낀다. 그 순간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가 된다. 손을 꼭 잡는 것만으로도 그 온기는 온 세상이 된다. 


여행을 다녀오면 외할머니는 동네방네 자랑을 하신다. 이번에 또 손녀가 해외 구경시켜 줬다고, 또 어디 가자고 한다고... 외할머니는 소녀 같고 유쾌하셔서 '인생은 외할머니처럼'이라고 말하고 싶다. 눈물도 많고, 정도 많고, 감정표현도 솔직하시다. 함께한 시간이 많은 만큼 관계가 깊다.



모두들 덕분에 고맙다고 말씀하시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한결같이 '내가 더 고맙지~' 하는 말이 먼저 나온다. 다음을 또 기약할 수밖에 없다.







이번 글의 부제는 '연륜은 그렇게 귀여움이 된다'라고 지었다. 여행하면서 어르신들이 참 귀여우시다는 걸 유독 많이 느낀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를 보면 특히 더 그렇다. 걸어가는 뒷모습도, 2G 폰으로 어설프게 사진 찍는 모습도, 브이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면 어설프게 손짓하는 모습도 다 참 귀여우시다. 두 분 다 과거에는 엄하고 무뚝뚝하셨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두 분 다 그저 무장해제하고 수줍은 웃음을 지어주신다.



할머니할아버지 그리고 외할머니외할아버지를 보면 '연륜은 귀여움이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귀엽게 행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손녀들이 보기에 귀여우신 것이다. 여행을 다니면 그게 더 잘 보인다. 더 챙겨드리고 싶고, 더 구경시켜드리고 싶고, 좋으시냐고 계속 여쭙고 싶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모두 연세가 90이 넘으셨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90을 바라보고 계신다. 이 함께하는 여행이 언제까지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특별하고, 소중하다. 효도를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는, 어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그저 좋다. 가족들 행복의 중심에 있을 수 있어서 좋고, 나이가 들수록 가족 여행의 소중함을 잘 느낄 줄 알아서도 좋다.





여행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가족 여행'이 전해주는 행복감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서 특별하다. 여행하면서 각자 느끼는 행복은 다를 수 있지만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여행하면서 성장하는 것 같지만, 여행 그 자체도 시간이 갈수록 성장한다.


10대, 20대, 그리고 30대의 여행은 조금씩 다르다. 지금은 친구와의 여행도, 혼자 하는 여행도, 그리고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도 모두 다 즐길 줄 안다. 그렇게 여행은 성장하고 있다.

 



이번 주말에도 조부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이 1박 2일로 청송 온천여행을 하고 왔다. 그런 김에 늘 느껴왔던 감정과 생각을 글로 옮겨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조부모님, 외조부모님과의 여행이 조심스럽고 망설여질지도 모른다. 아직 곁에 계신다면, 용기 내서 가까운 곳이라도 함께 여행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평소에는 알 수 없는 '연륜이 주는 귀여움'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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