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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Goes On

죽음 앞에 부질없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by 미리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삶과 죽음 그 경계 어딘가 분명 존재한다. 의식하며 살고 있지 않을 뿐, 죽음은 어쩌면 정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올 지도 모른다.



금요일 퇴근길에 아찔한 사고를 당할 뻔했다.


신호등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데, 옆에는 신호에 걸린 관광버스 한 대가 있었다. 곧 보행자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왔다. 건너기 시작하는데 버스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다른 차들이 오는 걸 볼 수 없었다. 혹시 몰라 가다가 잠시 1-2초 정도 발걸음을 멈췄다. 그때 차 한 대가 코를 스칠 정도로 바로 앞을 쌩하고 지나갔다. 순간 너무 놀라서 신호등을 봤는데 초록불이 맞았다.


초록불, 그것도 반쯤 건너왔을 때였다.


평소처럼 빠른 걸음으로 건너갔더라면 그날이 마지막 퇴근길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정말 찰나였다.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옆을 보는 습관이 나를 지켰다는 말 밖에는 정말 할 말이 없다. (운전자를 다 믿지는 못해서 습관적으로 양옆을 항상 살피고 안전해야 길을 건넌다)


잠시 멈춰서 옆을 보고 걸으려고 했던 게 찰나를 결정했다. 쌩하게 지나간 차를 보고 그 순간 소름이 끼쳤거나, 놀라 자빠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다행이었다는, 그리고 감사하게도 아직 죽을 운명은 아니었나 보다 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동생에게 사고가 날 뻔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다행이었다는 말과 함께 '다시 태어난 기분이 어때?'라는 농담 섞인 말을 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 사고가 안 나서 그랬는지, 원래 낙천적인 편이어서 그런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딱히 바뀐 건 없는데? 딱 이 정도의 감흥이다.




그리곤 주말이 됐다. 평소 '죽음'에 관한 소재의 책이나 글귀를 자주 접하긴 했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언젠간 죽음을 소재로 글을 써보고 싶기도 했다. 우리는 죽음에 관한 고찰에 회의적인 편이다. 죽음은 의식이 사라짐을 의미하므로, 우리는 죽음을 직접 경험할 수 없다. 타인의 죽음은 경험할 수 있지만, 나의 죽음은 어차피 경험할 수 없기에 죽음에 관한 진지한 고찰이 무의미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나의 경우, 그날의 아찔했던 경험 덕분에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있으며, 한순간에 모든 걸 잃는다.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극적으로 바뀐 건 없다. 어차피 죽을 거 흥청망청 돈을 써야겠다거나, 오늘 주어진 하루가 너무 소중해 미치겠다거나 그렇지도 않다. 죽음에 관한 고찰이 곧 삶의 의미에 관한 고찰과 같다는데 왜 달라진 건 없을까?





오늘 오후에 김천에 위치한 '직지사'에 바람 쐴 겸 다녀왔다. 소복이 쌓인 눈길을 원 없이 걸었다. 쌓인 눈처럼 고요한 길을 계속 걸으면서 사색했다. 그러다 문뜩 유럽 체코 여행 때 본 프라하 시계탑이 전하는 죽음에 관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인간은 죽음 앞에 부질없만,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 메시지의 의미를 그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지금은 왠지 뜻을 알 것 같다.





죽음을 떠올려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건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복이 쌓인 하얀 눈 위를 걷는 게 너무 좋았지만,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이 기다리고 있다. 죽음이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일상을 되풀이한다.



최근에 위암 초기 진단을 받고 휴직에 들어간 직장 동료가 떠올랐다. 수술 후 의사는 한 달의 회복 기간만 진단서에 써주었다. 명퇴를 고려해 볼 수도 있었지만 곧 복직하신다.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우리 모두 어쩌면 다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안공항 참사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사고였고,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죽음은 정말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인간은 죽음 앞에 정말 부질없지만,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각자의 시간은 흘러간다.




나 또한 그날 퇴근길에서 죽다 살아난 기분을 느꼈다. 안도하고 감사함을 느꼈을 뿐,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글을 쓴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Life goes on.



이 짧은 문장이 의외로 위로가 된다. 아파도, 슬퍼도, 힘들어도, 낙담해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니깐 그냥 나아가는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지만, 삶은 그럼에도 계속되어야 한다. 이게 바로 '삶과 죽음의 경계'가 아닐까. 삶에서 죽음을 가끔이라도 떠올려보는 것, 그리고 죽음이 존재하더라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삶과 죽음을 위한 최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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