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은어의 한 종류. 돈도 면회자도 없는 죄수로 교도소에서 사용됨. 후에 사람들이 돈 한 푼 없는 알거지라는 뜻으로 사용함.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 유명한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 작중 인물인 발칙한 깜찍녀 미도리는 부자의 최대 이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자의 최대 이점은)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가령 내가 친구한테 뭐 좀 하자꾸나 그랬다고 해요. 그러면 (부자인) 상대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나 지금 돈이 없어서 안 돼'라고. 반대 입장이 된다면, 나는 절대 그런 소리를 못해요. 내가 가령 돈이 없어 그런다면, 그건 정말 돈이 없다는 소리니까요. 비참할 뿐이지요. 예쁜 여자가 '나 오늘 얼굴이 지저분하니까 외출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과 같거든요. 못생긴 여자가 그런 소리를 해봐요, 웃음거리만 될 뿐이지. 그런 것이 내 세계였던 거예요. 지난해까지 6년 간이나."
겨우 6년! 코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문득 초딩 6학년 때의 일이 너무나 명료하게 떠오른다. 오전 12시 즈음, 급우들 네다섯 명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 전날 아차산에 놀러 가기로 계획했던 터여서 급우들은 나를 데리러 우리 집까지 찾아온 거였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못 가게 한다'는 핑계를 대고 불참의 뜻을 밝혔다. 사실은 참가비 1,000원이 없었던 거다. 천 원이 없어서 못 가. 이 말이 입에서 안 떨어졌다.
-엄마.
-왜?
-천 원만.
-천 원? 없어!
-그러지 말고 천 원만.
-천 원이 뉘 집 애 이름이냐?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어.
아마 이랬을 것이다. 짜장면 값 아낀다고 동네 중국집에서 500원에 사 온 양념에 칼국수 면을 삶아서 비벼준 게 우리 엄마다.
어쨌거나 당시에 친구들에게 "돈 없어서 못 가"라고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쿨~하게 "야, 엄마가 돈을 안 줘서 나 못 간다. 나 데리고 가고 싶으면 니들이 내 회비를 대신 내주든가"라고 당당하게 말했다면 좋았을 것을.
초딩 5학년 때의 일이다. 담탱이 정국똥(가명) 쌤이 종례 시간에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이 문장에서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조또 없어 보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우리 교실에 컵이 필요하다. 누구 가져올 사람?"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아마도 잘 보이고 싶었나 보다. 손을 들었다.
"그래, 좋다. 네가 가져오도록."
-엄마.
-왜?
-담임 선생님이 컵 좀 가져오래.
-컵? 몇 개?
-대여섯 개 정도?
-그럼 우리는 뭘 쓰라고?
-그러지 말고 좀...
-안 돼. 한 개만 가져가.
다음 날.
나는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정국똥 담탱이가 이렇게 말했다.
"컵 좀 가져오라고 했더니 고작 한 개? 얘들아, 이거 좀 봐라. 얘 달랑 한 개 가져왔다. 지금 장난하나?"
나는 가져온 컵으로 입을 틀어막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무안함과 쪽팔림에 그랬을 것이다. 입을 틀어막는다고 그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당시에 가난이 싫었던 건지, 짠순이 엄마가 싫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였을 거다.
컵을 벽에 던져버리거나 그냥 "싫으면 관두세요, 그냥 가져갈 테니"하고 대꾸했다면 좋았을 텐데, 초딩 5학년 생에게 담탱이는 '진격의 거인'처럼 무서운 존재였으니 하나마나한 얘기다.
아마도 개털 상태의 비루함을 통감한 이후로는 나름 그런 감정에 대해 뻔뻔해지려고 애썼던 것 같다. 성격 개조 프로젝트(없어도 당당하게, 아자아자!)의 시작이랄까.
효과가 있기는 했다.
대딩 시절, K 모 씨의 자취방에서 있었던 일.
그가 내게 물었다.
"배고프지 않아? 라면이라도 먹을래?"
개털 완전체인 나는 "됐어. 배 안 고파('사실은 아사 직전이야…')"하고 대답했다.
10분 후, 그가 라면 냄비를 상 위에 내려놓으며 다시 물었다.
"그러지 말고 조금 먹지 그래?"
나는 마지못한 척하며 "그럼 한 입만 먹어볼까?"하고 말하며 조용히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처묵처묵 다 처먹었다. 국물까지 쪽쪽 빨아먹은 후 일말의 양심 때문에, 혹은 자존심의 회복을 위해 이렇게 말했다.
까짓 거 설거지는 내가 하지.
몇 년 전, 친구 P 모 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미국에서 감리교 목사로 재직(?) 중인 친구 L 모 군이 오래간만에 귀국했단다. 일요일에 만나서 식사하기로 했는데 회비가 7만 원이라는 거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대뜸 따지듯이 물었다.
"대체 뭘 (처)먹는데 한 끼 식사비가 7만 원이냐?"
이리저리 설명을 하는 P 모 군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린다.
"차라리 그지 똥구멍의 콩나물을 뽑아 먹어라. 나 요즘 완전히 개털이거든? 그러면 난 참석 못한다."
그냥 배 째라는 식이다. 개털 인생 30년이 넘으니 당당하다 못해 아예 뻔뻔해졌다.
글타. 이런 게 진정한 개털남의 핵-자존심이다.
(전화를 끊고 나니 좀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말할 걸 그랬나?
나 요즘 얼굴이 지저분해서 외출하고 싶지 않아.)
그러나 나중에 알았다.
개털의 자존심은 이성 앞에서는 쭈구리가 되고 만다는 것을.
수년 전, 고딩 시절에 만났었던 승연(가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SNS로 나를 어렵지 않게 찾아 연락한 거다. 다행히도 그녀는 저 머나먼 아메리카에 살고 있었다(왜 다행이냐고? 광대한 태평양이 일말의 외도 가능성을 차단해 주었으니까).
이제 와서 못 이룬 사랑의 불씨를 다시금 되살리기 위해 그녀가 내게 전화를 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리운 것은 내가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이었을 테니까.
어떤 이유에서든, 당시 그녀는 자주 내게 전화를 하곤 했다. 아마도 대화할 사람이 필요했을 게다(지 남편을 두고 왜 하필 나랑 그러냐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그러다가 그해 겨울, 빈정 상할 대화를 하고야 말았다. 기형도 시인의 말마따나 '너무나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알코올에 머리가 어떻게 되었거나.
-난 말이야, 예전에 너를 좀 이해할 수가 없었어.
-왜? 뭐를?
-그때 너는 내가 좋다고 말했었잖아.
-내가 오빠를 좋아하긴 했지.
-그런데 대체 당시의 너는 왜 나를 그렇게나 자주 바람 맞혔던 걸까?
-.....
-내가 기억하기로는 열 번이었어. 내가 바람맞은 게.
-그걸 다 기억해?
-그게 우리가 헤어진 원인이 되었으니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
-뭐가?
-좋아하는 사람이 빤히 기다리는 줄 알면서 어떻게 약속을 어길 수 있지? 아니, 좋아하는 사람과의 약속을 무시하고 어떻게 친구들과 다른 데 놀러 갈 수가 있는 거지? 그게 가능해?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다. 당시에 네가 나를 진정으로 좋아했던 것은 아니야.
나의 취중 공격에 그녀가 반격의 날을 세웠다.
-그때 내가 오빠한테 왜 그랬겠어?
-왜 그랬는데?
-그때, 오빠 돈 없었잖아.
그게 이유가 돼? 그럼 애초에 약속을 잡지를 말았어야지, 하는 얘기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으니까.
작금에는 알고 있다. 그녀의 말이 진심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코너에 몰린 쥐의 처지로서 고양이에게 덤빈 것일 수도 있고,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상투적인 책임전가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녀는 방어를 위한 공격으로 나의 개털, 아니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당시에도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다. 책임전가의 역습은 이렇듯 마음에 냉기를 일으킨다.
글타.
개털은 여전한 나의 역린이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동안 성격 개조 프로젝트(없어도 당당하게!)에 열심이었고, 나름 성과가 있었을지라도 짝짓기라는 진화심리학상의 문제, 혹은 오랜 진화의 역사 앞에서 개털의 역린은 결코 소멸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을 테다.
쉽게 말해서 개털의 자존심은 동성에게만 통용되었다는 얘기다.
초딩 3학년 무렵이었나... 문구점 쇼윈도를 통해 눈에 확 띄는 상품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바로 아카데미사의 킹모그라스 탱크.
45도 경사진 비탈도 올라가고(훗날 확인해 보니 다 개뻥이었다), 미사일도 발사되고 조명도 켜진다는 이 신상품의 가격은 1500원이었다.
1500원이라니!
생의 비참함을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기껏해야 100원짜리 프라모델만 사서 모았던 내게 1500원이라는 돈은 어마어마한 거금이었으니까.
아.. 아... 갖고 싶다....
쇼윈도 밖에서 흘린 군침이 한 양동이는 안 되었을까.
-엄마
-왜!
-돈 좀.
-무슨 돈?
-탱크 사게 돈 좀.
-없어!
-그러지 말고 좀...
-얼만데?
-1500원
-뭐? 이기 미친나 참말로...
뭐 이러지 않았을까. <킹콩>과 <갤러그>가 하고 싶어서 전자 오락실 갈 돈 100원만 달라고 해도 거절 당하기 일쑤였는데 1500원이라니.
그래도 오락실은 자주 가긴 했다. 이실직고 하자면 엄마가 안 계실 때마다 지갑에서 몰래.... 혼나는 건 나중이고, 당장의 쾌락이 소중했던 초딩이였음을 어찌하리.
그렇게 비루하게 푼돈으로 전자오락을 하면서 친구랑 이런 대화를 했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돈을 벌게 되면 여기 있는 게임기 다 살 수 있겠지?
-그러지 않아도 될 걸
-왜?
-그때는 과학이 발달되어서 여기 있는 모든 게임을 하나의 기계에 다 몰아넣은 게임기가 개발되지 않을까?
-와... 죽인다
그래서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다. 지구가 멸망한다는 1999년이 두렵지 아니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구가 망하는 그날이 오기 전에 게임을 실컷 즐기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그까짓 킹모그라스 탱크 따위는 10개라도 살 수 있을 테니까.
이제 와서 새삼 그 친구의 선견지명에 감탄한다. 정말로 그 친구의 말대로 되었다. 하나의 기계에 지난 시절의 오락실 게임을 망라한 게임기가 등장한 거다. 나는 현재 중국산 <월광보합> 게임기(아마도 저작권 침해의 불법물일 듯)를 가지고 있는데 이 안에는 킹콩은 물론, 스트리트 파이터나 철권 등의 격투 게임과 갤러그나 라이덴 같은 슈팅 게임 등 수백 가지의 오락실 게임들이 망라되어 있다. 그래서 현재 너무나도 행복
해야 마땅하거늘, 새삼 인생의 쓰디쓴 진실만을 느낀다.
초딩시절의 그 애타는 욕망과 열정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초딩 시절에 오락실 게임에 집착했던 것은 그 자체의 오락성이 한몫을 했겠지만, 절도를 감수한 그 과도한 욕망은 아마도 결핍 때문이었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100원으로는 고작 두 판 밖에 못했으니, 얼마나 애가 탔겠는가? 아, 딱 한 판만 더 하면 십만 점을 넘을 수 있는데, 돈은 없고 또다시 절도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핍이 욕망을 배가시킨다는 삶의 아이러니.
24세 무렵, 당시의 나는 마음만 먹으면 그깟 킹모그라스 탱크 따위는 절판이 되지 않은 한 20대도 살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당시의 내 욕망의 양동이를 군침으로 가득 채우게 만든 대상은 킹모그라스 탱크가 아니라 다른 물건이었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디자인의 뮤직맨 액시스 기타였다.
종로 3가에 위치한 낙원 상가의 XX기타 매장의 쇼윈도에 진열된 그것을 볼 때마다 자신의 개털 신세를 얼마나 한탄하였던가. 당시로서의 나로서는 넘사벽이었던 가격,
인터넷이 없던, 정보가 차단된 시절이었으니 아마도 그 가격은 바가지였음에 틀림없다. 작금에 약 320만 원 가격의 기타가 당시에 340만 원이었다는 게 말이 되나?
어쨌거나, 당시에는 340만 원만 있다면 얼마든지 지를 마음이 있었다. 돈이 없다면 몸을 팔아서라도...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거다.
초딩이 시절 내 욕망의 대상은 킹모그라스 탱크였지만 당시의 내게 1500원은 비교하자면 손에 잡히지 않는 승연이와도 같았다.
대딩 시절, 나는 비로소 킹모그라스 탱크를 살 여력이 충분히 있었지만 그때는 이미 욕망의 대상이 뮤직맨 액시스 기타로 상향되어 있었고, 당시의 내게 340만 원은 비교하자면 손에 절대로 잡힐 리 없는 (장)원영 같았다.
현재, 나는 뮤직맨 액시스 기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너무너무 행복
해야 마땅하거늘, 새삼 인생의 쓰디쓴 진실만을 느낀다.
대딩 시절의 그 애타는 욕망과 열정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돈으로 무언가를 구매하게 되면 일시적인 만족을 얻는다.
'일시적인'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일시적 만족을 가벼이 여길 생각은 없다. 나는 비록 일시적일지라도 하찮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녁에 잊힐 맛이라고 해서 점심에 짜장면을 사 먹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만족의 일시성에 대해 시비를 걸 수 있다면, 대체 삶의 일시성(삶은 짧다, 아니 존나 짧다)이나 일회성에 시비를 걸지 못할 근거는 무엇인가?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시절인연에 대한 얘기일 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욕망의 대상은 대체로 시절인연을 비껴간다는 것.
정의 : 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말을 가리키는 불교용어.
내용 : 시절인연은 불교의 업설과 인과응보설에 의한 것으로 사물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환경이 조성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이다.(중략) 현대에는 기회와 때가 올 때 일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절인연 [時節因緣]
아니, 틀렸다. 욕망의 대상은 항시 거기에 있었다. 다만 욕망의 대상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더 이상 내가 그것을 욕망하지 않게 되었거나, 막상 손에 넣었더니 대상에 대한 욕망이 눈처럼 녹아버리더라는 아이러니가 있을 뿐이다.
네가 갖지 못한 것을 갈구하느라 네가 가진 것을 망치지 말라.
기억하라.
지금 가진것도 한때는 네가 꿈구기만 하던 것임을.
-에피쿠로스
"지방의 경계에 있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雪國)이었다." (※雪國 : '눈의 고장'이라는 뜻)
주어가 없는 아주 인상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1968년 일본에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소설 <설국>에 대해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이렇게 썼다.
사랑의 대상이 영원히 멀리 있음으로써 온전한 환상으로 남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사랑의 환상을 생활의 현실 속으로 끌어들여 사랑을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슬프도록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설국>이다.
(중략)
'무위도식하는 남자의 전형인 시마무라. 그는 '그녀(고마코)는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는 차원을 넘어서, 자신의 불가능한 사랑을 보존시키기 위해 능동적으로 '그녀와의 거리'를 유지하기까지 한다.
(중략)
고마코를 향한 거리는 한 여자를 '내 것'으로도, '내 것이 아닌 것'으로도 고정하지 않으려는 모호한 태도다. 이 거리는 '너는 나의 비공식 연인이 될 수는 있지만 공식적 연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무언으로 암시하는 냉혹함이기도 하다. 요코를 향한 거리는 말 그대로 미학적 거리다.
시마무라가 유지시키고 싶었던 것은 '현실을 압도하는 환상'일 것이다.
정여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썼다.
욕망을 '계속 생생하게 살아 있게' 하려면 욕망의 최종적인 실현을 방해해야만 하는 것일까.
욕망의 뜨거운 불길이 충족이라는 물벼락으로 진화된 자리에는 권태라는 잿더미가 남는다. 욕망의 충족은 권태에의 Prelude(전주곡)이므로.
충족된 욕망의 갱신 불가능성에 대해 작가 앙드레 지드는 <지상의 양식>에서 이렇게 썼다.
"진실로 그대에게 말하거니와, 나타나엘이여, 욕망의 대상을 갖는다는 그 언제나 허망한 소유보다도, 어떤 욕망이든지 욕망 그 자체가 나를 더욱 풍부하게 하여 주었느니라."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말도 남겼단다.
“성적인 욕망은 육체적 근접성에 따라 증가하고 사랑은 사랑받는 대상이 부재 중일 때 가장 강하며 사랑은 유지되기 위해 (...) 일정한 거리를 필요로 한다.”
오래전 얘기다.
승연(가명)과 헤어진 지 일 년쯤 되었을 때 친구 태원(가명) 군이 내게 물었다.
태원 : 승연이 생각 안 나냐?
나 : 걔? 당연히 나지.
태원 : 괜찮아?
나 : 글쎄다.
태원 : 아직까지 생각난다니 어지간히 좋아했나 보다.
나 : 이런 걸 아마도 집착이라고들 하지.
태원 : 사랑했으니까 집착도 하는 거지.
나 : 글쎄다. 인간은 원래 안 가 본 길에 더 집착하기 마련 아닐까?
태원 : 그럴 수도.
나 : 승연이랑 결혼이라도 했었다면 이런 미련이 안 남았겠지.
태원 : 그랬으면 좋았을까?
나 : 아니. 그럴 리가 없지.
태원 : 아니, 왜?
나 : 걔랑 결혼했었다면....
태원 :......
나 : 아마도 5 년 안에 이혼했을 걸?
이별, 회자정리에 대한 나의 유일한 위로는 가지 않은 길 끝에 벼랑이 있었다고 믿음으로써
장밋빛 미래에 대한 망상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나름 효과적인 방어 기제라고 생각한다.
시마무라 상에게 배운 거라고?
아니다.
단지 삶이 내게 그렇게 가르쳐 주었을 뿐.
때로는 삶이 (일관성 없게도) 이렇게 충고하기도 한다.
저녁에 잊히는 맛이라고 해서 점심의 짜장면을 거르지는 말고, 부득이하게 거를 수밖에 없는 짜장면이라면 어차피 저녁에는 잊히는 맛일 뿐이라고 자위하라고. '여우의 쉰 포도'는 나름 현명한 관점이자 전략일 수도 있으니까.
오로지 '지금'을 살기 위한.
https://youtu.be/_Kh_AGh3Gqs?si=iyT6byqwbScHvtE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