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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병화 Sep 12. 2023

인적 드문 한가위 내 고향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기원은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말이다. 한가위는 팍팍한 세상살이의 힘겨움과 고통의 보릿고개를 넘어서 한여름 질곡의 일상을 견디어 내고, 결실과 풍요의 계절에서 만나는 가장 즐거운 한민족의 축제다. 설날과 비교해서 즐거움의 우위를 따지는 것은 난형난제의 문제이겠으나, 설날은 어린 시절에, 한가위는 성인이 되어가면서 더욱 그리운 축제의 하나로 우리의 생활 속에 자리 잡았다고 생각된다.

설날은 운동화에 골덴바지 정도라면 금상첨화이겠으나, 몇 겹이나 꿰맨 양말이 아닌 새 양말이라도 최소한 기대되는 명절이다. 설날 축제는 며칠 전부터 시작된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지만 술을 빚고 강정을 만들고 떡국 떡을 준비하느라고 골목 안이 시끄럽다. 어려운 살림에 꼬박꼬박 돌아오는 명절이 어른들에게는 한숨을 짙게 만드는 일이 되기도 하겠지만, 어린 우리에게는 이만한 즐거움도 없었다.

작은 설날이 되면 도시에 살다가 귀성하는 가족이나 친척들을 기다리느라고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남생이 줄지어 모여앉듯 동네 어귀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자가용이 없는 시대에다, 어쩌다 한 번씩 오는 버스도 시간을 못 지키는 시대라서, 고샅길 끝에 서서 큰길 너머로 눈길을 고정한 채 긴 기다림을 견뎌내야 하지만, 결코 지겹거나 지치는 시간이 아니었다. 겉으로야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이지만, 내심으로는 그들의 손에 들려 올 선물 보따리에 더 큰 기대와 설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축제는 전야제가 사실상 축제의 꽃이듯이, 설날 전야 역시 명절의 하이라이트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선물 보따리를 풀어보는 일이다. 자랑거리라도 있으면 쏜살같이 동네 마당으로 나가서 자랑질부터 하고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 내 몫으로 남겨놓은, 시골에서는 보기 어려운 과자들을 아끼면서 먹는다. 저녁이 되면 도회지 나가서 살아가는 친척들의 이야기꽃 속에 파묻히고, 밤이 늦어지면 졸리기는 하지만 섣달그믐날 잠자면 굼벵이 된다는 할머니 말이 두려워 쉽게 잠들지 못한다.

섣달그믐날의 밤은 한해 중에 가장 밝다. 일 년 내내 등잔불과 남폿불에 의지하며 어두컴컴한 밤을 맞이하지만, 섣달그믐날 밤에는 집안의 남자들 숫자만큼 안방에 촛불을 켜놓고 소원을 비는 의식이 있었다. 우리는 환하게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며, 인자한 할머니의 무르팍에 머리를 두고서 눈을 비비면서 견디어 보지만 결국 잠들고 만다. 촛불은 깊은 밤을 넘어 새벽이 올 때까지 한해의 꿈을 소망하며 타오르고, 할머니의 기원도 끝날 줄 모른다. 

우리는 촛불 아래에서 늦게까지 잠들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면서 꾸벅꾸벅 졸았지만, 다음 날 어둠이 채 물러나지 않은 새벽 시간에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게 되는 날이 설날이다. 동트는 아침보다 더 빨리 어둠을 깨우면서 혹한의 새벽길을 걷는다. 발끝은 서릿발 추위에 얼어 가고, 손이 시려 연신 손등을 마주 대고 비비면서도 건너 동네까지 친척 어른들에게 세배하러 다닌다. 적지만 세뱃돈 받을 욕심에 설날 아침은 그렇게 밝아간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은하수 무리의 은은한 빛을 받는 것은 세뱃돈에 앉힌 덤이다.

성인이 되어가면서 설날보다는 한가위가 더없는 그리움의 축제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급격한 산업화로 노인들만 남겨놓고 모두가 고향을 떠나갔다. 제대로 된 보따리 챙겨 갈 형편을 못되었지만, 먹고 사는 일이 대부분 도회지에 집중되고 있었으니, 떠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빈손으로 객지에서 홀로서기 하면서도 돈 잘 벌어 여기저기서 때깔 좋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고, 자식 공부는커녕 고단한 일상을 버티기 힘들게 살아가는 이도 많았다. 

그러나 한가위가 되면 잘살고 못사는 형편을 가르지 않고, 그들은 부모와 친척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운 가족들도 만나고 첫사랑이라고 놀림 받던 철이와 순희도 만났다.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주고받는 이야기들, 도회지에서 돈 많이 번 얘기, 노총각 결혼 이야기, 자식 농사 이야기들이 이집 저집 고샅으로 떠돌아다녔다. 네 부자간의 불꽃 튀는 화투 놀이도 밤을 하얗게 새우는 일등공신이었다.

그날 저녁에는 진실만을 말하지 않아도 좋았다. 남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고, 침소봉대한 이야기도 신나게 말하고 흥겹게 들었다. 어떤 누구도 그들에게서 쏟아지는 말의 진실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기죽기 싫어서 부풀리는 이야긴 줄 뻔히 짐작하지만, 부러워해 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면서 동무들과 고향은 그들을 따뜻하게 맞았다.

먹고 살기 어려워도, 장시간 차를 타고 내려오는 힘든 여정 속에서도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막걸리 몇 잔에 취흥이 올라 바깥으로 나서면, 영롱한 한가위 보름달이 포근한 솜이불처럼 다가서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꺼내주고 새로운 꿈의 둥지를 선물하는 고향의 밤은 넉넉한 어머니의 품속 그 자체였다. 이삼일 뒤에는 각자의 현실 속으로 떠나가야 하지만, 언제든지 기다려 주는 고향이 있기에 떠나가는 발걸음은 무겁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그런 낭만의 축제가 없어졌다. 철이도 순희도 오지 않는 고향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로 변해갔다. 한가위는 민족의 축제라는 말도 잊히고 있다. 여전히 귀성행렬이 있고 고속도로는 주차장이 되었지만, 마을 공터에도 사랑방에서도 동무들은 없다. 잠시 왔다가 가 버리거나, 휴양지나 관광지로 몰려다니며 한가위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에 집착하면서 슬그머니 고향을 버렸다. 고향의 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그때의 추억이 살아있는 마을 공터도 사랑방도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명절이 되어도 썰렁한 고향마을, 한때는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선 차들이 고향의 명절을 풍요롭게 했지만, 이제는 골목길이 넓은 신작로처럼 보일 뿐 차들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평소보다도 더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마을을 지키던 노인들마저 명절을 쇠러 도회지에 사는 자식들에게로 가 버린 역귀성 탓이다.

마을에는 오래전에 아기의 울음소리가 끊어졌다. 50대가 가장 젊은 사람인 동네가 많다. 귀농한 젊은이들을 볼 수 있는 농촌은 아주 예외적일 뿐이고, 보통의 마을에는 몇 명의 노인들만이 고향을 지키고 있다. 70년대 고향을 떠났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간혹 있기는 하나, 이미 육십이 넘은 나이다.

그렇게 노인들만 고향마을을 지키고 살아가지만, 추석이나 여름휴가, 설날 연휴가 되면 객지에서 사는 자식들이 고향으로 몰려들었었다. 한창 전성기인 60년대의 고향마을을 보는 듯이, 전국에서 흩어져 사는 가족과 이웃들이 모이는 명절은 별도의 프로그램이 없어도 모든 것이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고향은 삭막한 도시에서 힘들고 가난하게 살아온 그들의 아픔을 잠시라도 잊게 해 주고 마음을 달래주었다. 떠난 모두에게 생명의 활력을 불어넣어 준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는 고향에 올 일이 없어졌다. 자녀들이 현실적으로 귀성 전쟁을 감내할 인내가 약해지고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으면서 도시로 제사를 가져가 버렸고, 제사가 없거나 지내지 않은 집도 자녀들의 편리를 봐서 부모님들이 역귀성을 하는 추세가 늘었다. 명절에도 고향을 찾지 않으면 이제 언제 고향에 올 것인가. 고향에 어쩌다 오더라고 고향이 주는 편안하고 푸근한 맛을 느낄 수는 있을까. 

그나마 아직은 위안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은, 추석 명절에 앞서 벌초를 하는 사람들이 고향을 많이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사가 없어지고 명절도 없어졌는데, 벌초라고 없어지는 날이 그렇게 멀 것인가. 계속된다고 해도 그리운 사람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재수가 좋아야 길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것으로 행운은 끝난다. 대개는 산소에만 들러 벌초하고는, 마을에 들어서지도 않고 그냥 휙 떠나버리는 일이 다반사니, 그들과 함께했던 싱그러운 고향의 맛은 여전히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을 뿐이다. 

여름휴가 때가 되어도 이제는 고향에 사람들이 없다. 옛날에는 동네 앞으로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그 물속으로 피라미 떼가 줄지어 다녔기에, 한여름 휴가 나기에 더없이 좋은 마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을 골짝 골짝마다 들어선 축사가 시냇물을 오염시켜 버렸기에, 물속에 발을 담가 볼 수도 없는 지경으로 황폐해졌다. 최근 축사 폐수 관리 등이 더욱 엄격해지면서 시냇물이 맑아지고 있다지만, 그때 그 시절같이 선명한 옥빛의 물에 손발을 담그고 추억을 반추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긴 세월을 인내하더라도 반드시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싶다. 집집이 돌면서 먹고 마시던 송편도 막걸리도 그립다. 웃음소리와 꽹과리 소리도 듣고 싶다, 축제를 즐기던 철이의 흥겨운 아우성을 듣고 싶다. 마음에 그린 첫사랑 순희도, 시집갔다 친정에 쉬러 온 연희도 보고 싶다. 물이 맑아지면 고향 마을 냇가에서 공터에서 쏟아지는 별들의 세례를 받으면서 동트는 새벽까지 희미해져 간 그 옛날의 이야기를 되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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