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저 강물을 바라보면

by 디지털 수공업


추억은 기억이 아닌 오감으로 새긴다.


20년간 살았던 고향을 떠나 2010년 처음 서울에 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생각보다 지저분한 거리, 복잡 미묘한 도시의 냄새, 너무나도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들, 그리고 아주 높다란 건물들이 즐비했던 기억이다. 가족들 중 가장 먼저 상경한 형을 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열심히 올라왔지만, 서울이 너무 큰 탓인지, 사람이 많은 탓인지 땅에도 구멍을 뚫어 차가 다니는 신기한 지하철을 타고 또다시 이동을 하였다. 그렇게 떨어져 지내었던 형을 만나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 "서울 물이 좋은가 봐? 때깔부터 다르네~" 등과 같은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고향 가는 버스였던 기억. 그리고 고향에 내려와 친구들에게 서울 나들이를 무용담처럼 전했던 기억까지... 벌써 12년이 다 되어가지만 처음 서울에 갔던 추억은 기억이 아닌 오감으로 내게 새겨져 있다.


서른 즈음에

2019년 1월 1일. 내 나이 29살이 되는 첫날에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웬 청승이었나 싶지만, 이제 꽃다운 20대가 지나가고 곧 30대에 접어든다고 생각하니 지난 삶을 회고하고 싶었던 것 같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노래가 발매된 시점인 1994년에는 중위연령이 30살이었다고 한다. 즉, 당시 30살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더 이상 어린 나이도 아니게 된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좋은 시절 다 지나간 듯한 노래 가사였던 것이다. 물론 내가 이 노래를 들은 2019년 중위연령은 더 이상 30살이 아니지만, 나름 고군분투하며 살아왔던 나의 인생에서 무언가 하나 제대로 가닥이 잡히지 않은 것에 대해 막막하여 감정에 북받쳐 들었던 것 같다.


지난 나의 20대를 생각하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생활했던 것 같다. 하지만 급격하게 변화하는 내 주변 환경 속에서 나는 늘 무엇을 하든지 진득하게 하지 못했고, 열심히 살았지만 아무런 가닥도 잡히지 못하는 이 사회에 한을 품었던 것 같다. 2019년도 그렇게 아쉬움과 억울함으로 가득 차 내 인생에 대해 아쉬워하며 20대를 마무리하였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아

2022년 06월 01일. 투표를 마치고 나는 홀로 한강으로 갔다. 어쩌면 처음 서울에서 느꼈던 감정을 느끼고 싶었을지도, 아니면 누군가에게는 일상에 불과한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그냥 가고 싶었다. 서울살이를 한 것은 아니지만, 살면서 처음 한강 다리를 건넜다. 중간쯤 갔을까. 서울의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다 자연스레 강물로 시선이 이어졌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흐르는 저 강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는 시간도 그러하다.


시간은 강물처럼 조용히 흘러간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오감으로 새겨져 우리 마음속에 추억으로 남겨질 뿐이다. 맥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속성에 지배되어 살아가는 나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야 이미 지나간 강물을 바라보듯 관조적인 태도로 삶을 바라볼 수 있을까?


삶에 대한 태도를 언급한 수많은 종교, 철학과 속담들을 나열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것들이 글이 아닌 내 삶에 스며들었을 때 그것은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위 물음에 답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리고 시간은 조용히 흘러 내 마음속에 흔적만 남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