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온도 18. 집 나간 고양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서울로 돌아온 진성은 여느 때보다 조금 늦게 출근했다.
변화된 것은 없었다. 익숙한 일상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왠지 마음 한편이 허허로웠다.
아무 일도 없었던 어제의 기억이 삶의 한 부분처럼 각인되어 있었다. 특별한 감정이 없는데도 오래된 약속처럼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그건 묵은 감정이나 막 불붙어 타오르는 열정의 조각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의식 한 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진성의 일상은 감긴 태엽의 시계 초침처럼 잘 돌아가고 있었지만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원장님, 무슨 일 있으신 거 아니죠?”
진료를 하는 중에 간호사들이 힐끗힐끗 진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 일 없어요. 조금 피곤한 것뿐입니다.”
오전 진료가 끝나고 나서야 진성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았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음이 울리자 말자 그녀가 전화를 받고 차분하게 말했다.
“여보세요. 선생님 저는 여기 잘 있어요. 열심히 일하고 계시죠?”
“그래요. 지금 뭐 하고 있어요?”
“집 나간 고양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진성은 그녀가 또 생뚱맞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곳에 고양이 데려가지 않았잖아요.”
“내 마음속에 오래오래 키운 고양이가 있어요.”
“아니, 마음속에 키운 고양이가 왜 집을 나가요.”
“그러게요. 고양이도 개인적인 볼일이 있겠죠. 암튼 집을 나갔으니 돌아오겠죠. 그런데 강아지는 100% 집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고양이는 못 돌아오기도 한다고 해요.”
“그건 왜 그렇죠?”
“강아지는 후각이 예민해서 찾아온다고 해요. 그런데 고양이는 바로 집 앞 근처에선 돌아오지만 조금만 멀리 나가면 못 돌아온다고 해요. 가끔은 로드킬을 당할 정도로 강아지보다는 감각이 떨어진다고 해요. 제 소망은 집 나간 고양이가 너무 멀리 나갔지 않기를 바라는 거죠.”
진성은 그 말이 여전히 엉뚱해서 화제를 돌렸다.
“식사는 했어요?”
“집 나간 고양이가 돌아오면 하려고 해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고양이가 멀리 나가지 않았다면 돌아오겠죠.”
진성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후의 진료는 오전보다 훨씬 더 바빴다. 진성은 간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되어 만성화된 간염 환자의 경우, 약보다는 침술의 효과가 빠르다는 것을 여러 차례 입증했다. 침술이 간기능을 회복한다는 것은 신비로운 침술의 영역이었다. 수많은 환자들이 진성의 진료를 보기 위해서 줄을 섰다.
진성은 정신없이 진료를 하면서도 틈틈이 시간을 체크했다. 저녁 7시가 마지막 뱃길이었다. 그 배를 타려면 최소한 5시에는 출발을 해야 했다.
대기환자를 모두 진료하려면 배 시간을 놓칠 것 같았다.
진성은 4시쯤에 양해를 구하고 환자를 돌려보냈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진성은 무엇인가에 홀린 듯 그 섬으로 돌아갈 채비를 서둘렀다. 마치 보물덩이를 섬에 놓고 와서 잃어버릴까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다.
무의식에서 밀려오는 거센 파장이 진성을 몰아쳤다. 몸과 마음이 허둥대는 모양새가 진성은 자신이 집 나간 고양이 같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