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그 이름이 적혀진 종이를 보면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고는 한다.
이곳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마주칠까봐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턱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 '잊으면 된다.'고 하던 의사선생님의 말에도 나는 도무지 그 이름을 잊을 수가 없었다.
때때로 근무를 하다보면 그 이름과 같은 누군가가 열에 한명꼴로 존재했다. 그때마다 괜찮다고 손에 힘을 꽉 쥐었다. 그리고 내가 알던 그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고나서야 안도를 했다. 길을 걷다가도 우연히 그 이름을 누군가 부르는 순간에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리고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서 한참을 떨고는 했다.
다 지나간 일이니까.
괜찮을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혹여나 마주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온 몸의 감각이 지배를 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잊지 못하는 내 자신이 슬프게 느껴졌다.
몇 년이 지났지만 선명하게 각인된 그날의 상처와 공포는 여전히 선명하게 각인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도 나는 '잊으면 된다.'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아마 아직 내 안에 자리잡은 상처가 아물기 까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사람들은 누군가가 겪은 그 상황과 사건에 대해서 너무나도 쉽게 이야기 하고는 한다.
"나도 그랬어."
"너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
"이제는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니?"
수많은 말들은 결국 혼란을 만들어낸다. 그 기억을 떨쳐내지 못하는 내 스스로가 바보가 된 듯한 느낌을 받고나면 나는 그 이름을 여전히 기억하는 스스로가 싫어진다. 내가 잘못한게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잘못한 느낌이 드는 날에는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수도 없이 지나간다.
"예전에 비하면 지금 행복하잖아?"
확실히 예전의 시간에 비하면 나는 여유가 있고 또 편안한 마음이 드는 순간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여유가 있고 편안한 마음이 들고나니 더 선명하게 그 이름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기도 하다.
아무래도 나는 그 이름을 잊기까지 더 무수한 시간들을 보내야 할 것 같다. 그 시간의 끝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막막하고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답이 없는 아픔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채 곪아있다.
언젠가 그 이름이 잊혀지게 되면 나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길을 걸으며 오늘의 바람과 오늘의 햇살과 오늘 길을 나서는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을 보며 웃을 수 있을까?
그때의 모습을 잠시 머릿속에 그리며 상상해본다. 나는 웃고 있고 예쁘게 꽃잎이 흩날린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며 깊게 숨을 내쉬는 모습을 꿈꾸며 나는 그때의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잘 견뎌내서, 그렇게 웃으며 살아있어서. 고마워."
그 날을 위해서 살아간다. 여전히 그 이름이 튀어나올 때마다 괴롭고 아프고 무섭기도 하지만 잘 견뎌나갈 스스로가 끝끝내 웃기를 바라면서.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