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1일- 엄마와 마늘짱아찌

by 셀린느

나는 안동 권씨 추밀공파 38대 권 모씨의 차녀로 태어났다.

매년 명절이면, 아빠가 수십권의 낡은 족보를 펼쳐 보이며, 우리 가문은 정통성 있는 안동 권씨임을 강조했다.

그럴 때마다 난,,,


조선 후기에 족보를 사고파는 일이 많았다는데,
그렇지 않다는 보장 있나?


뾰족하게 투덜거렸다.

그러면 아빠가 도끼눈을 하고 분기탱천하셨다.

내가 이렇게 투덜거렸던 이유는,,,

그 대단하신 안동 권씨 족보엔 내 이름이 못 올라갔기 때문이다.

39대 중엔 남동생만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어젯밤. 언니가 문득 톡을 보냈다.


[니가 먹고 싶다던 엄마표 마늘 짱아찌 들고 서울 가는 중. 엄청 무겁네.]


내가 답했다.


[아~ 고마워. 무거울 텐데... 애썼네.]


여기서 엄마표 마늘 짱아찌는 많은 걸 내포하고 있다.


1. 전생에 원수였던지 매일 으르렁거리면서도 가장 대우 받는 울아부지가 좋아하시는 건강반찬.

2. 1년 중 햇마늘이 가장 절정일 때 선별하여 담아야 하는 제철 반찬

3. 아부지와 우리집 대들보인 아들만 당당히 먹을 수 있는 특별 반찬


나도 그 짱아찌가 먹고 싶었는데...

선별하여 1년에 한 철, 한정수량만을 담그는 그 짱아찌는 언제나 아빠와 남동생 몫이었다.

어떨 땐 치사하고 더러워서 안 먹겠다고 마음 먹었던 적도 있지만,

짱아찌인데도 슴슴하니 참 야릇하고 개운한 맛이 일품이라 나도 정말 먹고 싶었는데...

내가 저걸 먹으면, 엄마는 1년에 더 많은 마늘 짱아찌를 만들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겪어야 할 터.

희귀병으로 힘드신 엄마가 더 힘들어 질까봐 포기하곤 했다.


근데.

내가 암에 걸리고 나서 먹고 싶은 반찬 중에 항암식품인 [엄마표 마늘 짱아찌]가 떠올랐고,

언니가 강릉간다는 말에, 언니가 먹겠다는 핑계 대고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더랬다.


[2023년에 담근 거야. 아삭하니 썩진 않았더라. 2024년, 2025년 건, 귀하신 아들 줬겠지.]


그렇겠지.

귀하신 아들에게 갓 담근 짱아찌를 줬겠지.


그 말 끝에 언니가 이런 문자를 보냈다.


마늘짱아찌.jpg 아들이 뭔지...

폭풍 눈물이 흘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또 눈물이 난다.


나도 가엾고, 엄마도 가엾다.

당신도 '여자'로서 '딸'로서 구비구비 서럽고 힘든 삶을 사셨건만.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나,

엄마가 왜 그렇게 사셨는지 뻔히 알면서도 여전히 이렇게 서러운 나나...

누구 하나 가엾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누굴 미워하기도, 원망할 수도 없다.


그래서 더 슬프다.


부모님, 특히 엄마에겐 내가 아프다는 사실은 '없는 일'로 하기로 마음 먹었기에...

지금의 이 서러움과 미안함을 '내 안에서 이슈화' 시키지 않아야겠다.


엄마도 부디 스스로 오롯이 행복하시길...

나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서는 자유롭길...


마늘 짱아찌 다 먹고, 얼른 암을 이겨야겠다.


참고로, 2월 9일 검사 결과, 다른 데 전이가 없다고 한다.

천만다행이다.

이제 더 없이 편안히 지내야겠다.

친구 은미와 일본 가마쿠라 여행 가기로 했다.

야호~~!!!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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