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으로 꿈을 이루다-4화

4화 : 내 안의 마더링(Mothering)을 찾아서...!

by 권리연

신정선.

나의 외할머니.

한참을 헤아려보니, 돌아가신 지, 벌써 9년이 지났다.

놀랐다. 벌써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는 게...

고작 5-6년 정도일 줄 알았는데...


내게 외할머니는 사랑이었고, 상처였고, 생명줄이었으며, 안타까움이었고, 멋쟁이였다.


둘째 딸인 내가 태어났을 때, 아들 아니라고 안아보지도 않고 홀대하는 아빠에게 "딸이라고 그렇게 홀대할 거면, 나 다와. 내가 키우마." 라고 말해준 어른이었다.

그 말은 딸이지만 사랑받아야 한다고 항변해주는 '사랑' 그 자체였고, 동시에 아빠가 날 사랑해주지 않았음을 확인사살 시켜주는 '상처'였다.

그리고 매달 월급을 아빠 식구들을 위해 송금해야 했기에 돈 한 푼 없이 살았던 우리 식구에게, 외할머니는 한 달에 한번 상다리가 부러지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생명줄이었다.

또, 함께 식사를 할 때면, 젓가락질을 못 하셔서 숟가락 뒤로 반찬을 집으시던 안타까움이었고,

돌아가실 무렵, 가는 귀가 먹어 사람들과 소통을 못 하실 때도 외출하실 땐, 벙거지 모자에 진주 목걸이를 하시던 모던 걸이셨다. 그렇게 멋지게 차려입고는 우리들이 하는 말이 안 들려 홀로 밥만 드시던 그 모습이 난 너무 눈물 겨워 오히려 말을 붙이지 못했던 아린 기억이 떠오른다.

재래시장에서 마늘을 파시면서 언제나 원가족은 물론 첫째 딸래미 가족까지 먹야 살리셨던,,, 생명력과 생활력이 엄청나셨던 대단한 어른.

수능 실패하고, 그래도 다들 국내 최고 여대라는 델 가게 된 나에게 '세상의 절반이 남자인데, 왜 반쪽 짜리 학교를 가냐'고 걱정하시던 깨인 어른.

하지만 모든 음식에 미원을 쓰시고도 아무런 꺼리낌이 없으셨던 새로운 정보에 취약했던 노인이었고, 새해 첫날 여자부터 집 문지방을 넘으면 안 된다고 야단치시던,,, 어쩌면 나만큼이나 내면의 충돌로 힘드셨을 꼰대셨다.


무엇보다 외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본 유일한 손주로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호흡기를 달고도 열 손가락 반짝이며 날 반기셨고, 날 알아보겠냐는 물음에 내 손바닥에 내 이름을 또렷하게 적으시던 분이셨다.

그렇게 잠깐 날 반기던 손짓처럼 반짝이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난 그때 처음 인간의 몸과 영혼에 대해 실감했다.

몸은 암세포로 다 망가져도 인지능력만큼은 너무도 또렷하셨기에...

어쩌면 죽음은 세상에서 몸뚱어리가 사라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혼은, 마음은 내 기억 속에, 내 손바닥에 영원히 새겨져 있는 거라고.

죽음의 실체를 외할머니를 통해 처음 경험했다.

그래서, 그다지 보고 싶다는 느낌을 잘 못 느끼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난 종종 외할머니가 그리웠다.


나에게 엄마 대신의 마더링을 해주셨던 외할머니.

이번 꿈은 내 안의 외할머니, 마더링을 찾는 이야기다.




< 2024년 12월 17일 아침, 화요일 >


* 제목 : 외할머니의 민들레 묘지


이 꿈을 꾼 시점의 내 상황은, 계엄과 독감으로 요약된다.

지난 2주. 12월 3일 계엄이 선포되자 나는 나도 모르게 국회로 향했다. 삼각지에서 한강을 따라 걸어가느라 결국 국회까지 못가고 1시 2분이 되어 계엄해제가 되고 다시 국방부로 돌아가 나름의 시위를 했다.

그러느라 밤을 샜고, 2장 짜리 시놉을 넘기기로 한 걸 패스하고 주말까지 시놉 완성본을 보내겠노라,,, 아는 감독에게 말했더니, ‘(일이나 하지) 국회는 왜 갔니?’ 라고 느껴지는 답변이 왔다.

그 말에 크게 상처받고 아팠고 아픈 와중에 애니와 숏폼, 2개 작업을 오기로 다 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다 해내고 나니까, 뿌듯했지만 허무했다.

자존심을 지키느라, 비난에 대한 과한 투사로 인해 날 돌보지 못했던 지난 2주였다.



#1. 정선가는 (관광) 버스


굽이굽이 외할머니 산소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려한다.

이미 두 번을 짧게 갈아탔고, 마지막으로 관광버스 같은 걸 타는데, 좌석이 꽤나 호화롭다.

마치 (안 타봤지만) 비행기 1등석처럼 거의 누워서도 갈 수 있을 만큼 버스 한 대에 좌석이 몇 개 없고, 의자도 금색 가죽 같은 걸로 돼있다.

근데 1인당 몇 천원(3천~7천원, 느낌상)정도라, 나는 내심 놀란다.

(대관령 옛길 같은) 험난한 길을 가야 하는 노선은, 수지가 잘 맞지 않아 이런 식의 호화버스를 저렴하게 운행해서 이용객을 늘리는구나... 속으로 생각한다.


#2. 외할머니 묘지

느낌상 어떤 종교단체(절, 산사)로 들어가는 입구 쪽인 것 같다.

카타콤(지하묘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가는 길에 외할머니 묘지가 있는데, 엄마가 “어? 민들레가 많이 피었네?” 하신다. 아빠도 동의 하시길래 난 자세히 묘지를 둘러보는데, 진짜 작은 민들레가 3-4포기 정도가 작게 피었다. 아빠랑 엄마가 그걸 뽑아서 묘지 위에 얹는다.

이전에는 분홍 꽃들이 피었었는지, 분홍꽃도 마른 상태로 묘지 위에 얹혀 있다.

매번 다른 꽃들이 피는구나... 왜 이번엔 민들레지? 하는 생각과 함께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 생각한다.

참 성스러운 분이셨지... 애틋함+ 그리움이 몰려든다.

외할머니 민들레 묘지


#3. 묘지 근처 재래시장

난개발이 돼 있다. 절로 들어가는 입구 난전 느낌이다.

길바닥 가게 한쪽에 수세미가 어지럽게 담겨 있는 봉지가 보인다. 난 봉지 안의 수세미들을 들여다보는데, 꽤 눈길이 가는 것들이 있다.

난 쓸 만 한 수세미 찾는 것에 가끔, 평소... 신경을 쓰는 편이다. (시어머니 영향인 것도 같아 수세미에 신경 쓰는 내가 싫다.)

내가 수세미를 사려고 하니, 엄마가 자기도 맘에 드는 게 있다며 3개 세트 수세미를 같이 사자 하신다.

네모*3, 동그란데 길쭉한 손잡이 있는 모양*6.

무려 9개나 사야한다.


#4. 부엌 같은 음식점 (산채 비빔밥?)

직접 산에서 나물들을 캐서 가져와 손질해 먹는 음식점 같다.

테이블(?)이 군데군데 있는데, 난 자리를 맡아놓으려 빈 테이블 한쪽에 앉아 원가족(엄마, 아빠)를 기다린다.

사람들이 내 옆쪽 자리에 앉는데, 나는 맡아놓은 자리를 빼앗길까 초조해진다. 엄빠가 식사할 걸 가지고 부엌에서 나오는데, 난 엉뚱한 자리를 맡아 놓고 있었다.

슬쩍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넘기고 가족 있는 테이블로 옮겨 간다.

이 밥을 먹고 나면 아까 그 관광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예정인 것 같다.




나는 내 안의 마더링을 찾아가야 하는 시점이다.

할머니는 앞서 말했듯 내게 '실질적 엄마' 같은 존재다.

날 오롯이 아껴주셨고, 주린 배를 채워주셨고, 때론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으며, 마지막엔 죽음을 가르쳐주셨다.

나는 자가용이 아닌, 대중들과 함께 타는 버스를 타고 모성을 찾으러 떠난다.

그런데 그 버스는 꽤 안락하고 저렴하다. 내게 안정감을 주고 부담을 줄여준다.

어쩌면 지금 내가 쓰는 글이 대중과 함께 하는 글이고 그 작업이 나름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역시나 할머니의 묘지엔 할머니를 닮은 생명력 가득한 꽃, 노오란 민들레가 피어 있다.

따뜻한 로고스, 지식인 노란색이다.

그런데 아직은 지하에 있어 표현 위로, 의식화되기엔 수련이 필요하다.


그 수련은 내가 먹을 음식을 담을 그릇을 씻는 것으로 시작되나 보다.

수세미가 9개나 필요한 걸 보니, 많은 그릇을 씻어야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일용할 양식을 담을 그릇을 열심히 씻고 나면,


산채비빔밥을 먹을 수 있게 된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난, 산나물이 가득한 비빔밥을 좋아한다.

비빔밥을 먹기 전, 난 초조해하는데...

내 자리가 없을 것 같아서다.


내가 나를 건강하게 돌보는 마더링을 찾는 동안 내 자리가 없을까... 두려운 게 사실이다.

당장은 다른 테이블에 잘못 앉아 있지만.

내 자리는 있었다.

엄마와 아빠와 함께 앉을 수 있는.


난 날 잘 돌보지 못한다.

돌봄을 잘 못 받아서,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한 때는 목푤를 위해 삼시 세끼 먹는 게 저주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냥 알약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시대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쉬는 건, 가진 자들의 특권이라 여겼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혹사시켰다.


그런 내가, 마더링을 찾아 떠난다.

외할머니가 내게 해주셨던 것처럼만 하면 되리라...!

날 홀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화도 내고, 배가 고프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한상 가득 차려서 먹고, 내 투사 때문에 현실을 왜곡하지 않으리라.

균형있게 날 아끼고 돌보리라. 예쁘다,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그렇게 홀대 받던 유선이가 지금 이렇게 예쁘게 크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신 손이 아닌, 우리 집에서 밥을 드시고 집으로 가시면서 하시던 외할머니말씀처럼.

예쁘다. 예쁘다. 그리고 나름 참 잘 컸다! 하면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Self Anatomy_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