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Anatomy_2

2회차 : 고추의 결여

by 권리연

다섯 살에서 일곱 살 즈음. 난 강원도 동해시 부곡동이라는 곳에 살았다.

아버지가 동해 모 초등학교 교사셨기에 동해에 몇 년 머물렀던 것 같다.

어렴풋한 기억에, 개발 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마을 언덕 쪽에 모양이 똑같은 집들 몇 채가 나란히 있었다.

겉은 양옥이었지만, 안은 디귿자 구조의 한옥 같아서, 가운데 거실, 거실 끝쪽에 시멘트로 된 부뚜막과 화구 두 어개가 있는 부엌이 있었고, 거실 양 옆으로 크고 작은 방이 2-3개쯤 자리했다.

큰 방엔 다락도 있었고.

여튼 그 부곡동 주택에선 그렇게 좋은 기억이 많지는 않았다.

그 무렵, 내가 하루 일과 중 제일 싫었던 것이 오후 5시가 되면 남동생을 찾으러 나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볼 일이 있어 나가실 때 했던 엄마의 말씀.

"훈이랑 어디 나가지 말고 집 잘 보고 있어라."


한번 집을 나가면, 깜깜해서야 흙투성이가 돼서 집에 돌아왔던 남동생.

먹고 살기 바빴던 엄마는 야생마 같고, 흙투성이 강아지 같았던 동생을 단속하는 일을 내게 전담마크 시켰다.

엄마가 그 말을 하고 나가면, 동생은 무슨 신호탄이나 되는 것처럼 그 길로 집을 뛰쳐나갔는데,,, 내가 문 앞을 막아서면 창문으로 도망나갔다.

난 "너 또 이렇게 나가면 나만 혼나..." 하며 울부짖었지만, 나보다 두 살이 어렸던 동생은 그런 말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집도 잘 봐야했고, 동생 단속도 잘 해야 했던 난, 모순적인 상황에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다가 결국 5시가 다가오면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코스가 있었다. 뻥튀기 할아버지네 없으면, 딱지치기하는 골목으로 갔고, 거기도 없으면 방앗간, 그리고 마지막 코스는 운동장 한쪽에 있는 씨름모래판이었다. 동생은 씨름판에서 씨름은 안 하고 동전찾기를 하고 있었다.

매번 마지막 장소에서 찾았으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난 1번 코스부터 돌아야했다.

흙투성이가 된 동생을 집에 겨우 데리고 가면, 엄마는 나를 혼내셨다.

동생 단속 잘 못 했다고.

또 흙투성이인 옷을 빨아야 한다고.

그러려면 저녁밥 준비가 늦어지게 생겼다고.

난 내 몫을 잘 못해서 바쁜 엄마를 더 바쁘고 힘들게 했다.


주로 죄책감과 억울함 속에서 괴로웠던 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엄마는 애초에 나가서 놀지 말라던 동생은 안 혼낼까?'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상황상 분명 엄마는 동생도 혼냈을 텐데... 내 기억 속엔 그런 기억이 없다.

그래서 그게 늘 의문이었는데... 나의 무의식은 그 당시에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의식이 의식하지 못했을 뿐.

답은...

[고추의 결여]


내가 어느 날부턴가 엄마가 안 계실 때 동생이 또 제 멋대로 놀러 나가 불안해지면,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창문에 올라가 서서 오줌을 누는 것이다!


오줌싸개동상.jpg 나도 서서 오줌을 누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말썽을 부려도 우쭈쭈 야단 안 받던 동생과는 달리, 동생도 못 보면서 계집애가 희한한 행동을 한다고 엄청 야단맞았다.

난 속상했다. 야단 맞아서 속상하기도 했지만, 왜 나는 동생처럼 옷을 적시지 않고 서서 오줌을 누지 못할까?

상, 하의 한벌을 다 버리고 창틀을 오줌소태로 만들면서도 동생처럼 오줌이 방사형으로 나가지 못할까?

고추가 없어서였다.

구조적 한계. 생물학적 한계였다.

내 힘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일.

평생 절대로 채워지지 않을 결여.


동생은 아들이라서 그 자체로 사랑받았지만, 난 딸이라서 태어나는 순간 잉여인간이었다.

엄마는 날 낳고 이런 생각을 했단다.

'얘도 여자라 나중에 나처럼 아들 못 낳으면 구박 받으며 힘들게 살겠지... 안쓰럽다...'

아빠는 동생이 태어나고 이런 생각을 했단다.

'남동생 얻은 장한 누나'

난 남동생이 태어나기 위해 실수로 태어나 힘겨운 삶이 예정된 가여운 존재였다.

존재 자체가 부정됐었던.

때문에 자율성이 부정됐던.


난 완벽주의자다.

완벽해지고 싶어서 미친 듯이 노력했으나, 언제나 내 목표는 손에 닿지 않는다.

중고등 내내 전교권이었으나 딱 한번 망친 수능 때문에 원하던 대학에 못 갔고, 집까지 뛰쳐나가는 독립운동까지 하고 유명 작가들로부터 글 좀 쓴다 인정 받았지만 결국 대박 스토리 작가가 되지 못한...


[딱 여기까지! 내가 그렇지 뭐...]


나 자신에 대한 자조적이고 냉소적 시선.

경험칙에 의한 자신감은 있지만, 뿌리 채 단단해질 수 있는 자존감은 거의 없던 나.


나무뿌리.jpg 자존감의 뿌리

완벽에 대한 뜨거운 갈망과 내 존재를 부정한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기존 질서와 시스템에 편입되고 싶지 않은 반골기질... 그 충돌 속에서 나의 내적 갈등은 살인적이었다.


시지프신화.jpg 인생의 무게

언제나 무거운 돌뭉치 여러개를 발목에 매달고 돌산을 기어오르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당기면 끊어질 것 같은 팽팽한 고무줄을 평생 유지해오며 살아온 느낌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편안하게 쉰다는 게 어떤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런 건 어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따위의 말은 내 인생에 없었다.


오늘 책을 읽다보니 [비통합의 경험]이란 걸 해보지 못해서라고 한다.

이 부분은 조금 더 공부한 후에 써야겠다.


굳이 말이 아니라도 공기로 내 존재를 알아챌 수 있는 만 5, 6세 때의 나는,

결국 내 힘으론 채울 수 없는 결여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제 좀 쉬고 싶다.

어차피 채울 수 없는 2%에 집착하지 말고, 내가 가진 98%를 누려야겠다.

멍도 좀 때려보고.

침대와 한 몸으로 지내도 보고.

죽을 때까지 내가 가진 98을 써봐야겠다.

그리고 찾아봐야겠다.

그 98 속에 어떤 반짝임이 숨어 있는지...


혹시 또 모르잖아.

기막힌 별이 숨어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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