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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리연 Nov 20. 2024

꿈으로 꿈을 이루다

3화 : SELF로의 여행

원래 나는 총 천역색 버라이어티한 꿈을 정말 자주 꾼다.

꾸고 일어나면, 갓 일어났는데 이미 하루를 다 산 것처럼 힘들기도 하고, 다채로운 꿈의 의미가 궁금해 한참을 멍하게 있을 때도 있으며, 가끔 현실적인 꿈을 꿀 땐 현실과 헷갈릴 때도 있다.

그런데 예비 수험생 엄마가 되면서 나는 꿈을 기억하기 힘들다. 

일단 잠을 4+3시간으로 쪼개 자기가 일쑤고, 불안증 약이 렘수면을 방해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아니면 조각잠을 조금이라도 더 충실히 유지하기 위해 자다말고 꿈을 리마인드 시켜 기록하는 수고로움을 포기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Anyway. 한동안 꿈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너무 생생한 꿈을 꾸었고 바로 기록을 했다.

그리고 정신분석 시간에 상담사 선생님과 얘기를 나눴다.

이제 이 꿈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이 꿈은 신기하게도 나의 첫 정신분석과도 맞닿아 있었다.




[ 2024년 11월 20일 꿈 ]


나는 아마도 학교 행사로 탐험 같은 걸 하게 된 것 같다.

문득 문득 꿈 중간에 등장해 길을 헤매는 날 제 코스로 인도한 게 '선생님'이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코스는 [동굴- 오래된 재래시장- 산 - 비닐 폐가 - 줄타기로 하산 - 리모델링된 화려한 호텔 - 성당] 이다.


#1. 동굴-> 재개발 재래시장

난 아주 오래된 재래시장을 지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망한 지 오래됐는데, 최근에 재개발 하려는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다. 안타깝다 생각하면서 시장 곳곳을 살피다 길을 잃었는데, 어떤 중년의 남녀 선생님들이 자연스럽게 날 제 코스로 인도했고 난 그들을 따라 하산을 시작했다.


#2. 갈림길이 나왔는데, 나는 왼쪽으로 가려하는데, 선생님들이 오른쪽 길로 가라고 조언하셨다.

난 앞선 경험에 대한 신뢰로, 선뜻 오른쪽 길로 향했는데 거기엔 오랜 비닐로 덮여 있는 폐가들이 즐비했다.

느낌적으로 나는 비닐 지붕을 건너야 한다는 걸 알았다. 마치 무술 고수처럼 나는 듯 무너질 것 같은 비닐 지붕을 건넜는데, 산 위에 있는 비밀 폐가라 높았는지 줄을 타고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줄을 타고 내려가는데, 뜬금없이 배우 송승헌이 줄을 못 타고 힘들어하고 있길래 그를 도와 함께 줄타고 내려왔다. 꽤 수월하게.

다 내려와 보니, 송승헌이 의지했던 줄은 내 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다는 느낌이 없어서 신기했다.


#3. 리모델링된 호텔

산을 내려와 평지를 걷고 있는데, 어느 무렵 가니, 온통 하얗고 고급스런 대리석으로 된 호텔이 나왔다.

앞에 분수도 있었고, 물도 펑펑 솟았다. 무엇보다 호텔 전체에 꾸며진 오색찬란한 조명.

사람들이 "와아~ 이런 곳에 이렇게 화려한 호텔이 다 있네~~!" 감탄했다.

다들 한번쯤 와봐야겠다는 듯이.

그런데 나는 직관적으로 알았다. 이 호텔은 신축이 아니라 오래된 호텔인데, 최근에 리모델링을 화려하게 한 것이라는 걸. 그래서 어쩌면 안에 들어가면 쾌쾌한 오래된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는 걸.

속으로 난 '저렇게 겉만 화려하게 눈속임을 한 호텔에 내가 올까?" 의심했다.

그런데 분수 옆에 돌도 안 된 남자 아이 2명이 놀고 있었다. 기저귀만 차고 편안하게.

"왜 이런 곳에 저렇게 어린 아이들이 놀고 있지?" 걱정보다는 신기했다.


#4. 오래된 성당

모험의 마지막 코스였던 오랜 성당.

최종 목적지이기도 했다.

나는 가장 먼저 화장실을 찾았다. 모험 내내 참았던 소변을 해결해야 했다.

난 화장실 빈 칸을 찾는데, 일반 화장실과는 좀 다르다. 이상했다.

그런데 어떤 여자들이 뭐라뭐라 공지사항을 알린다.

내용인 즉슨, 여긴 생리혈을 받는 곳이기에   '갈색 가죽 주머니에 자신의 생리혈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 옆의 2명의 여인과 쪼그려 앉아 주머니에 생리혈을 담기 시작했다.

3-4개의 가죽주머니를 금방 채울 만큼 일은 순조롭게 이뤄졌는데... 그러다 손에 피가 묻은 게 신경 쓰여 수돗가 같은 데서 손을 씻으려는데, 그곳 직원이 핀잔을 준다.

"의료기구와 소독물이니까 거기에 함부러 손 대면 안 됩니다!" 하고.


나는 그제야 주변을 찬찬히 돌아본다.

성당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곳은 마치 목욕탕 같기도 하고 옛날 의료행위를 하던_병원 같기도 했다.

참 기괴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학교에 가야 하는데, 내 옷과 신발들이 피에 젖어 있어 당황스러웠다.

세탁을 하네 마네 하다가 잠에서 깼다.


 



[분석]


이 꿈을 꾸고 난 후의 첫 느낌은, 코스가 길고 기괴하다는 거였다.

어쩌면 자궁선근증 때문에 시술을 받은 후로 생리를 거의 안 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걸수도 있었을까?

아니면 복주머니 같은 가죽 주머니에 생리혈을 3-4개나 담아 저장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을까?

여튼 산뜻한 느낌은 아니었는데...

상담사와의 꿈 분석은 완전히 달랐다.


 [동굴- 오래된 재래시장- 산 - 비닐 폐가 - 줄타기로 하산 - 리모델링된 화려한 호텔 - 성당]


"이 다이내믹한 코스는 나의 정신분석의 과정인 것 같다"는 상담사의 첫 말.


- 주요 키워드는

# 오래된 장소

# 리모델링(재개발)

# 성당=목욕탕=병원

# 송승헌이라는 배우에 대한 내가 갖고 있는 생각

이었다.


작년까지 난 스토리작가로서 영화, 드라마 각본 및 각색에 올인했었다.

낙타 바늘구멍 들어가기라는 그 작은 확률을 차지하기 위해 10여 년간 심신을 활활 불태웠다.

나의 현재를 미래의 성공에 저당잡혀 하루하루 불안하고 조급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대략 실패했다.

올 한해는 그걸 인정하는 해였던 것 같다.

그러느라 꽤나 큰 상실을 경험했고, 무기력했고, 우울했었다.


나의 마음 속은 동굴 같고, 언제 찢어질 지 모를 위태로운 비닐 폐가 같았으며 망한 재래시장이었고, 아직은 겉만 번드르한 오랜 호텔이었다.

산 위에서 나는 줄을 타고 땅으로 내려와야 했다.

그 과정엔 송승헌 같은 나의 인격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나에게 송승헌의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별로 매력을 모르겠는데, '남자 셋, 여자 셋','가을 동화' 등으로 제 1전성기를 누리다 사라졌나 했는데, 중국에서 제 2전성기를 갖다가 중국 유명인과 결혼하고 다시 국내 컴백하여 여전히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 배우.

그래서 난 그 배우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어떤 강력한 매력이 있나보다고. 그렇기에 대중의 사랑을 두루두루 받고 여전히 활동을 잘 하고 있는 거라고.


나는 이제 폐허됐다고, 망했다고 진단내린 내 마음과 이력을 다시 리모델링할 때인 것 같다.

그건  너무 높은 나의 이상(산, 위)을 버리고 땅(아래)으로 내려와야 가능한 일인가보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알지 못하는 나만의 매력을 발견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화려한 호텔처럼 거듭날 수 있을지도.

실내에 쾌쾌한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는 내 의심을 무색하게 할 내면의 노력도 덧붙여야겠지.

그리고 감정적 배설을 하고, 목욕탕 같기도 하고 병원 같기도 한 성당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때 묻은 마음을 씻고 내 아이를 위한 생리혈을 모아야할 것이다.

아이를 낳으려면, 임신을 해야 하고, 임신을 하려면, 난 생리를 해야한다.

여전히 내 심리적 생리는 풍성했다.


아직 첫 돌이 못 된 남자 아이 둘.

분수 위에서 잘 놀고 있던 그 두 아이를 잘 키워봐야겠다.

그 아이들은 어쩌면 호텔에서의 휴식처럼 여유로운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상담사와의 첫 모험을 하기 전 꾼 나의 꿈.

신기하게도 지금의 내 위치를 여실히 보여준 나의 꿈.


그 여행을 차근차근 여유롭게 시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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