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단상 3
경제학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정해지는 것으로 본다. 경제학에서는 경제학이 처음 형성되는 18세기 후반부터 가격이 어떻게 정해지는 것인가, 무엇이 가격, 가치를 결정하는가에 대해 답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거의 200여년이 걸려서 20세기 초에서야 그 답을 알아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된다. 가격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경제학은 정부가 가격에 개입해서 가격을 설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부가 가격에 개입하는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 최저가격제와 최고가격제이다. 최저가격제는 시장에서 유통되는 가격의 최저치를 설정하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최저가격제 이상의 가격으로만 거래할 수 있다. 최저임금제가 가장 대표적인 최저가격제이다. 이와 반대로 최고가격제도 있다. 정부가 어떤 품목에 대해 최고가격을 설정하면, 시장에서는 이 가격 이하로만 매매할 수 있다. 정부가 제시한 최고가격 이상으로 거래를 하면 처벌을 한다.
최저가격제, 즉 최저임금제의 문제점은 잘 알려져 있다. 최저임금제는 실업을 증가시킨다. 최저임금을 실시하면 기존 일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사람들의 임금은 올라간다. 이 사람들에게 최저임금제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생시킨다. 문제는 최저임금제는 기존에 일하던 사람들의 일부를 일자리에서 쫒아내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근로자들 일부는 월급이 올라가고, 일부는 일자리를 잃는다. 월급이 올라가는 긍정적인 효과보다 일자리를 잃고 모든 소득을 잃는 사람들의 손해가 더 크고 급박하다. 그래서 최저임금제는 안좋은 정책으로 본다. 최저임금 가까이에서 일하는 근로자 층의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킨다.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는 이유는 보통 어떤 품목의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경우이다. 특히 시민들에게 필수적인 식량 등의 가격이 크게 오를때가 문제이다. 필수재의 가격이 크게 오르면 시민들의 실질 소득은 감소한다. 더구나 먹고사는데 필요한 식량의 가격이 급등하면 살기가 힘들어진다. 정부는 이런 생필품 품목의 가격이 크게 오를 때 시민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최고가격을 실시하려고 한다.
최고가격제도 최저가격제만큼 실제로는 자주 이루어진다. 단 보통 사람들이 최고가격제에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최고가격제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양가 상한제, 대부업자의 이자율 제한법 등이 모두 최고가격제이다. 2020년 봄 한국에서 발생한 마스크 대란때에도 마스크 가격에 대한 제한이 시행되었고, 2021년 요소수 사태때도 요소수 가격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졌다. 모두 최고가격제이다.
최고가격제는 정말로 가격을 안정시키고 나아가 시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을까. 최고가격제에 대해 가장 유명한 사례는 프랑스 대혁명 공포정치 기간 동안의 최고가격제이다. 최고가격제의 성격과 효과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다. 왕을 쫓아내고 그동안 모든 권력과 부를 누렸던 귀족들을 쫒아냈다. 이 왕, 귀족 때문에 국민들이 못살았다. 그러니 왕, 귀족을 쫒아내고 나면 국민들이 보다 잘살아야 하지 않나. 그런데 대혁명이 발생한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국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못살게 되었다. 대혁명을 했는데도 더 못살게된, 혁명의 패러독스였다.
가장 큰 문제는 물가 상승이었다. 빵, 우유, 고기 등 식량 가격이 폭등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가격이 폭등했는데도 빵, 우유, 고기를 구하기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식료품 점에 먹거리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시민들이 식료품점을 습격하고 약탈하는 일이 계속 벌어졌다. 시민들은 빵을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빵집 앞에 줄을 서야 했다. 꼭두새벽부터 사람들이 빵집앞에 줄을 서는 것을 막기 위해 파리코뮌평의회는 새벽 4시 이전에는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게 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생필품 물자 부족, 가격 폭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국민공회는 최고가격제를 실시한다. 1793년 가을 시행된 최고가격제는 곡식 전반 뿐만 아니라 식용류, 종이 등 생필품, 그리고 제조 원료까지 대상으로 해서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1790년의 생산가를 기준으로 해서 30%만 더 붙여서 팔 수 있게 했다. 이때 프랑스 대혁명의 최고가격제가 최고가격제의 상징이 된 것은 그 대상이 전반적이었다는 점 뿐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이때가 프랑스 대혁명 중에서도 공포정치 시기였기 때문이다. 로베스피에로를 상징으로 하는 공포정치 기간은 엄청난 사형을 특징으로 한다. 정부의 지시, 방향에 따르지 않으면 반혁명 분자로 찍혔고, 그러면 바로 체포, 구속되었다. 1793년 4월부터 1794년 7월 말까지 약 15개월 동안에 파리에서만 2600명 이상이 단두대에서 사형을 당했다. 파리에서만 하루 6명 정도가 사형을 당했다. 프랑스 전국적으로는 4만명 정도가 사형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공포정치 시간 동안 정부의 지시를 어기면 반혁명분자로 몰려 바로 사형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국가, 다른 시기처럼 과태료, 벌금을 받고 끝나는게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최고가격제가 시행된다. 모든 국민들은 정부가 제시한 최고가격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
그러면 이 최고가격제로 인해 물가가 안정이 되었을까.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당시 정부는 시장에서 곡식, 생필품이 사라지게 된 이유가 투기꾼, 매점매석꾼의 농간으로 보았다. 원래 이런 생필품은 부족하지 않았다.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기를 거치면서 생필품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물건 자체가 부족한게 아니다. 투기꾼, 상인 들이 더 높은 가격을 받으려고 농간을 부려서 그렇다. 그러니 이들을 찾아내서 처벌을 해야 한다. 이들이 더 높은 가격을 받고 팔려고 해도 그럴 수 없도록 최고가격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제 생필품 가격을 높게 부르면 사형을 당할 수 있다. 물건을 매점매석하고 숨겨 놓아도 사형이다. 그러면 생필품이 시장에 많이 나와야 하고, 가격이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런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다. 생필품 품귀 현상은 오히려 더 심해지고, 암거래가 늘어났다. 암거래 시세는 오히려 더 올라갔다. 최고가격제로 인해 프랑스 국민들은 더욱 더 어려워졌다. 1794년 7월,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로베스피에로 정권은 몰락한다. 촉망 받던 정권이 불과 15개월만에 몰락하고 로베스피에로 등 지도자들이 단두대에 오르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이 최고가격제의 실패가 거론된다.
공포정치 시절, 정부의 지침을 어기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이렇게 강력히 시행된 최고가격제는 역사상 전무후무하다. 그런데도 최고가격제는 실패했다. 프랑스 대혁명기의 최고가격제가 상징이 된건 최고가격제의 상징이 된다.
최고가격제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공급은 충분하다는 발상이 문제이다. 공급이 충분한데 시장에 나오지 않아서 가격이 오른다. 물건이 있는데 시장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투기꾼, 상인의 농간 때문이다. 그러니 투기꾼을 잡으면 가격은 내려갈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상인들은 물건이 빨리 들어오고 나가고 해야 돈을 더 번다. 재고를 쌓아두는 것보다 빨리빨리 팔아서 재고를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이익이 더 크다.
이때 프랑스의 진짜 문제는 공급 부족이었다. 프랑스 대혁명 때 전국적으로 소요가 발생했다. 농부들이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했다. 더구나 혁명으로 대외 관계가 단절되어 외국으로부터 식량, 재료를 들여올 수 없었다. 경제의 대원칙은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오른다이다. 투기꾼을 아무리 때려잡아도, 최고가격제를 어기면 사형을 시킨다고 해도, 그래도 공급이 부족한 상태에서 가격은 오른다.
프랑스 대혁명 공포정치 당시의 최고가격제 실험으로 인해 최고가격제는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공식 가격은 최고가격으로 유지될 수 있어도 암시장이 나타나고, 품질이 저하되고, 실질 가격은 오히려 더 오르는 등 부작용이 더 크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몇몇 나라에서는 최고가격제가 만들어지고 시행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이유는 투기꾼들 때문이라 보고, 아파트 가격에 대한 최고가격제인 분양가 상한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런 정책들이 향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