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지켜야 한다는 규범적인 말로 유명한 명제 중 하나가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억울한 판결이었고, 또 설사 유죄라 하더라도 사형은 너무 과도한 처벌이었다. 사형 선고를 받고,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기 전 친구가 찾아와 도망가기를 권한다. 돈을 들여 감옥 간수를 매수했고, 그래서 감옥에서 도망갈 수 있다. 외국까지 가는 것을 도와줄 사람도 있고,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을 지원해줄 사람도 있다. 소크라테스를 도와주려는 사람은 많이 있었고, 그래서 아무 걱정 없이 외국으로 도망갈 수 있다.
이때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말이 ‘악법도 법이다’이다. 법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고, 그 법이 설사 잘못된 법, 악법이라 하더라도 지켜야 한다. 악법이라고 해서,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법이라 해서, 또 자기에게 불리한 법이라고 해서 그 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하며 소크라테스는 도망가지 않았고, 결국 사형을 당한다.
법을 준수하는 시민으로서 소크라테스만큼 모범적인 경우는 없을 거다. 도망갈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법은 준수해야 한다며 도망가지 않고 죽음을 당하는 건 정말 대단하지 않나? 그래서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위정자들, 그리고 도덕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예를 들먹이며 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상한 법을 만들어놓고, 그걸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어떤 법이든, 그 법 내용을 지키지 않으면 무조건 나쁜 것으로 간주하고 처벌하려 한다.
플라톤의 저작 ‘크리톤’을 읽는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대화록이다. 크리톤이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도망가기를 권유하고, 소크라테스가 그 제안을 거부하는 내용의 대화들이다. ‘악법도 법이다’라는게 어떤 논리,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가가 설명되어 있는게 바로 이 ‘크리톤’이었다.
크리톤은 내일이면 사형당할 거라고 도망가자고 권한다. 목숨을 구할 수 있는데 왜 자포자기 하고 그냥 죽으려 하는가라며 안타까와한다.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도망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평소 그대로, 사람들의 반발을 사 자기를 죽음으로 몬 그 철저한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한다.
첫째, 사람은 나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게 기본 명제이다. 여기에 상대방이 어떻게 했느냐, 그 원인이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아야 한다. 상대방이 아무 문제없는데 내가 나쁜 짓을 하면 그건 내가 잘못한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나에게 나쁜 짓을 해서, 내가 그에 대한 반응으로 나쁜 짓을 한다면? 상대방이 원인 제공을 했다 하더라도, 내가 나쁜 짓을 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나쁜 짓을 했다는 게 변명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가 옳고 그른 게 나 자신이 아닌 상대방에 의해 결정되는 거 아닌가. 상대방이 어떻게 하든, 나는 그에 상관없이 옳은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아테네가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은 옳지 않은 판결이었다. 하지만 그 판결이 옳지 않다고 해서 내가 도망가는 게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판결이 옳든 옳지 않든, 내가 감옥에서 도망가는 건 정의롭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나는 도망가지 않겠다.
둘째,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도망가는 게 왜 꼭 잘못된 일일까? 잘못된 법, 잘못된 판결을 피하는 건 옳은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그 법을 지키기로 합의했는지, 합의하지 않았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기가 그 법을 지키기로 미리 합의했다면, 그 법을 준수해야만 한다. 자기가 합의한 법이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해서 그 법을 지키지 않겠다고 주장하면 안 된다. 자기가 미리 합의한 법은 비록 자기에게 불리하게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그 법을 지켜야 한다.
자기가 미리 합의하지 않은 법이라면 상관없다. 자기는 합의하지 않았는데 사회가 강제로 법이라고 만들어서 나에게 지키라고 한다면, 그때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경우는 법을 지키지 않더라도 나의 정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즉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법률을 지키기로 합의를 한 상태라면 그 합의를 지켜 도망가지 않고 사형선고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자기가 아테네의 법률에 합의하지 않았다면? 그때는 도망가도 된다.
그러면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법률을 지키기로 합의했을까 합의하지 않았을까? 법이라는 게 내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법을 만들 때 나에게 동의하느냐, 합의하느냐를 물어보는 게 아니다. 소위 대표자라는 사람들이 나와 상관없이 그냥 만든다. 내가 합의하든 말든, 법은 그냥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법에 내가 합의했는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하나?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법률 가운데 어느 것도 어떤 사람이 재산을 몽땅 챙겨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을 방해하지도 금지하지도 않는다면, 그런데도 그 사람이 우리의 재판 체계와 그 밖의 다른 국정 운영 방식을 보고도 이곳에 머무른다면, 그러면 그는 우리의 어떤 명령에도 복종하기로 사실상 합의한 것이다’
즉, 법률 시스템을 알고서 계속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면, 그건 법을 지키기로 합의한 것이다. 만약 법이 부당하다고 여겨서 그 법을 지킬 생각이 없다면, 미리 이 사회를 떠나면 되는 것이다. 떠나지 않고 계속 살고 있었다면, 무언의 합의가 있는 것이고 이때는 그 법의 내용을 준수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산을 몽땅 챙겨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을 방해하지도, 금지하지도 않는다면’ 이다. 그런데도 떠나지 않았다면 아테네의 법을 준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저런 벌칙을 두어 외국으로 이주하는 게 자유롭지 않았다면? 법에 합의하지 않지만, 다른 불이익이 무서워 어쩔 수 없이 아테네에 살고 있을 수 있다. 이때는 아테네에 살고 있다는 게 법을 준수하겠다고 합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아테네는 누구나 아테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산을 챙겨갖고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떠나도 좋다고 선포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그런 아테네에서 계속 살았다. 이건 아테네의 법을 지키기로 합의한 것이고, 따라서 자기는 아테네의 법을 지켜야 한다. 비록 그 아테네 법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그래도 이미 합의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도망가서는 안 된다.
“시민으로서의 모든 활동에서 법률을 준수하기로 합의해 놓고 계약 조건과 합의 사항을 어기고 도주하려 한다면, 그건 가장 천한 노예나 할 법한 짓이다”라면서 도망가지 않겠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논리를 어디까지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이런 소크라테스의 논리를 보면, 최소한 “악법도 법이다. 법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어디까지나 자기가 미리 합의하고 동의한 법은 지켜야 한다고 했을 뿐이다. 합의하지 않고 동의하지 않은 법은 지켜야할 의무가 없다. 그리고 합의했느냐 아니냐 판단에서 중요한건, 자기가 그 사회를 떠나는 게 자유롭고 벌칙이 없느냐이다.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있다면 그 사회의 법은 지켜야 한다. 하지만 자기가 살고 싶지 않은 곳에 강제로 머물고 있다면, 그때는 그 사회의 법을 꼭 지켜야할 의무는 없다. 만약 그 법이 자기를 해치려 한다면, 그 법을 피해 도망가도 된다.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명제를 남긴 소크라테스에 대해 비판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말의 배경을 자세히 이야기하는 ‘크리톤’을 읽으며 오해가 풀린다. 세계적 철학자라는 소크라테스가 법률 규정이면 무조건 지켜야한다는 교조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질 리가 없다. ‘악법도 법이다’는 잘못 전달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