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라는 '흉맹한 형리'
1.
오늘도 어제와 같은 나날들이 반복된다.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이다. 즐거운 일 따위 없는 권태로운 나날들이 상수함수처럼 주욱 나열된다. 이 그래프에 양의 값을 가지는 기울기가 있었으면 좋으련만.(음수라도 좋다.)
2.
오늘은 친구와 술 한 잔을 했다. 매일이 구분이 안 되는 나로서는 오늘인지 어제인지 헷갈리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녀석들이라 반가움이 컸다. 반갑다는 것은 권태를 잊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난 지 얼마 안되어서 권태로움이라는 녀석도 나를 반긴다. 분명 오랜만에 만났건만 하는 이야기는 똑같다. 세세한 내용은 바뀌었을지라도 마치 기계가 정해진 말을 내뱉는 것마냥 각자 할 말만을 뱉어낼 뿐이다. 오늘은 수많은 날들과 다른 날인가 했지만 결국 예전에도 있었던 날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권태로운 나날 중 하나이다.
3.
내일은 일을 하러 간다. 시간만은 권태를 잊은 듯이 매 순간마다 똑같은 속도로 흐른다. 참으로 부지런한 녀석이다. 저 정도로 부지런한 녀석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어쩌면 시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사건의 선후관계(인과관계)만이 존재하고 시간이라는 것은 인간이 관념으로 적당히 꾸며낸 것이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든다. 만약 시간(년, 월, 일, 시, 분, 초)이라는 관념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매 순간을 구분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권태의 절정이다. 이렇게까지 매 순간에 이름을 붙여서 구분을 해서라도 권태를 벗어나려는 인간의 발악 그 자체도 참으로 권태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흘러가는 시간을 멍하니 바라보며(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것을 말이다.) 오늘도 어제와 같고 내일도 오늘과 같다는 말을 반복하며 날마다 내일이라는 흉맹한 형리를 두려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