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일기 35

Scene 1 길에 서다 ; 대한민국에서 직업 연출가로 살아가는 것

by Pia Jong Seok Lee

아침에 아내가 말했다. “우리 이제 조금 더 아껴써야 해.” 식탁에 앉아 빵을 먹던 나는 날카롭게 “왜? 아껴쓰고 있잖아”라고 뱉었다. 아내는 “그래, 아껴쓰고 있지. 하지만 돈이 적금에 묶여 있어서 현금이 많지 않아.” 짜증이 밀려왔다. 이런 문제가 생기면 난 아내에게 “우리 고정 지출에서 뭘 더 줄일 수 있는지 보자.” 라고 말한다. 아내는 “다 줄인 거잖아. 당신은 왜 맨날 같은 얘기를 해. 더 줄일게 없어. 최소한의 것들이야. 집 이자, 적금, 보험. 꼭 필요한 것들이잖아.” 맞아. 그렇지. 이미 다 줄였지. 보험도 다 줄여서 심지어, 루민이 대학자금까지도 해약해서 없고, 적금도 정말 주택부금만 남기고 다 깼고, 그래 맞아, 줄일게 없지. 난 공 없는 소리를 또 한다. “에이, 정말 아껴 쓰는데, 정말 체면 구겨가며 돈 낼 때마다 마음 졸이고 자리도 피하는데, 왜 맨날 그렇게 돈이 없냐, 나는.” “당신 아껴 쓰는 거 알지. 하지만 그게 현실이잖아.”


직업 연출가로 살아가는 것, 여기서 말하는 직업 연출가란 연출작업 이외에 어떤 수입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자면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작품 외에 가장 큰 수입원이 되는 것은 학교나 학원 강의, 또는 개인 레슨이다. 많은 친구들 학교나 학원 강의를 통해 작품에서 부족한 삶의 재화를 조금은 더 채운다. 개인 레슨의 경우 그것이 꾸준하다면, 또는 학생이 많다면 왠만한 대기업 사원들 연봉 부럽지 않은 든든하고 귀한 재원이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나도 다 했다. 예고 수업도 한 주에 8시간 이상 수업을 했고, 학원도 4시간 이상 수업을 했고, 어쩌다 개인 레슨이 생기면 상황을 마다않고 반드시 잡아 열심히 가르쳤다. 그럴 때는 작품이 없어도 삶을 유지하는데 문제가 없었고 경제적 궁핍도 적었다. 학교와 레슨을 끊은 것은 작년부터이다. 모든 강의를 끊은 이유는 학교나 학원에 나가면 그 시간들이 대게 일과시간이기에 불가피하게 연습에 참여하지 못하는 날 또는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게 싫었다. 배우들이 연습에 불참하거나 지각하면 그렇게 못 마땅하기에 나부터 연습에 100% 참여하고 싶어서, 그래서 배우들한테 큰소리 땅땅 치며 연습에 집중하게 하고 싶어서 모든 작품 외적 활동을 끊었다. 그랬더니 내 삶과 우리 가족은, 오늘 아침 같은 불안을 담보해야 했다.

작년에 비해 올해는 조금 더 심했다. 제작사로부터 연출료를 받고 작품을 만든 것은 <쓰릴 미>와 <웰컴 맘> 단 두 작품이 전부다. 두 작품이라도 작품을 만들 수 있어 행복하고 기쁘지만, 직업 연출가로서 삶의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가기에는 부족한 돈벌이다. 사실 예술가로서 한 해에 두 작품을, 그것도 명작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한 작품을 몇 년 동안 품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실험하고, 발전시키고, 또 실험하고 도전해야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우리 일은 한 작품을 만들면서 다른 작품을 연구하고 어떤 때는 동시에 두 개의 작품을 함께 만들어야 할 때도 많다. 시장경제 속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생활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그것도 중요하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꼭 옳지는 않다. 그렇기에 매 작품마다 최대한의 시간과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서, 직업 연출가라는 오만으로 스스로 주위의 다른 모든 돈 벌이를 끊다보니 오늘 아침과 같은 결과를 요즘, 아주 자주 마주하게 된다.


난 정말 돈을 아껴쓰며 살아가고 있다. 내 용돈은 한 달에 삼십 만원이다. 삼십대 중반의 남성이 한국 사회에서 그것도 연출가로서 한 달에 삼십만 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쪽팔림을 감수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연출이라는 일의 특성상 술자리가 많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에 연출이라 밥을 사야 할 때도 많고, 밥이 아니면 밥값과 비슷하거나 이것저것 추가하면 밥값보다 훨씬 더 비싼 커피를 사야할 때도 연출이라 아주, 드럽게 많다. 또 밤늦게 끝나는 일이 많기에 의지에 관계 없이 택시를 타야 할 때도 많아 삼십만 원의 용돈은 자칫하면 월의 중간도 가기 전에 바닥을 드러낸다. 내가 뭐 특별히 스크루지적 삶을 동경해 절약이 몸에 배서 집에 금덩이 놓고, 은행에 잔고 쌓느라, 아니면 집 평수 늘리느라 그러고 사는 게 아니다. 언제 일이 끊길지, 언제 일이 다시 들어올지 모르는 삶이기에 그렇게 살지 않으면 삶 자체가 유지되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얼굴이 붉어질 때가 있다. 조연출을 만나 회의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배우들하고 술 마시기로 했는데 또 어떻게 하나, 연습 때 배우들이 배고파하는 걸 보면 간식이라도 사주고 싶은데.. 나도 커피가 마시고 싶은데, 맛있는 샌드위치가 먹고 싶은데, 늦겠다 택시 타야겠는데, 담배가 떨어져 가는데, 차를 타면 또 무슨 기름이 이렇게 금방 떨어지냐, 예쁜 계절 옷을 사고 싶은데, 얘는 또 왜 벌써 결혼하고 난리야.. 가만, 내가 지금 얼마 남았지?


그렇다고 내가 뭐 아주 거지처럼 살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람 노릇 아주 못하고 살고 있다는 것도 아니다. 비록 대출은 했지만 아내와의 공동 명의로된 집도 있고, 내 명의의 12년 된 승용차도 있고(아직 잘 간다. 우리나라도 자동차 참 잘 만든다. 하지만 솔직히, 바꿀 때가 넘었다.), 격이 떨어지지 않는 옷과 신발도 적절히 있고, 노트북, 넷북, 스마트폰, DSLR등 필요한 건 다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 부모님들께 용돈도 보내드리고, 어쩌다 조카들 만나면 용돈도 주고, 많은 나라를 여행했고, 앞으로도 여행할 계획이고, 커피도 사마시고, 책도 사고, 맛있는 음식도 사 먹는다. 철 따라 과일도 먹고, 때론 보약도 해먹고, 아프면 병원도 간다. 먹을 거 다 먹고, 할 거 다 하고 산다. 그런데 욕심은 먹을 거 더 먹고, 하고 싶은 거 더 하고 싶다. 아니, 가오 살게 조연출들 맛있는 거 팍팍 먹여가며 회의나 연습 다니고 싶고, 배우들 간식 팍팍 사주며 연습실 분위기 띄우고 싶고, 후배들 술 시원하게 탁탁 사줘서 애들이 만나자고 하면 불안해하고 싶지 않다. 나, 웃기지?

유복한 집에서 귀하게 자란 아내가 나를 만나 고생 참 많이 했다. 아내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게 돈 벌어오라는 소릴 하지 않았다. 내가 약이 올라서 이 일을 그만두고 장사라도 해서 돈 벌어야겠다 마음먹으면 쓸데없는 소리 말고 열심히 작업이나 하라며 나를 책망하고 격려했다. 내가 이만큼 할 수 있었던 8할은 아내 덕이다. 하지만 요즘, 자꾸만 약이 더 오른다. 올해가 지나면 좀 괜찮아 질까? 내년에는 몇 작품이나 하게 될까, 이런 경제적인 고민을 떠나 살 수 있을까? 나 많이도 안 바라는데.. 아내가 자기 친구들이 하는 만큼은 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는데…


대한민국에서 직업 연출가로 산다는 거, 참 쉽지 않음을 인정하고 고백한다. 옛날에야 다 같이 못 살았으니까 극단 대표나, 연출가나, 배우나 뭐 다 사는 형편이 비슷했지. 또 연출가들은 주로 선생님들 이셨으니까 일 년에 한 작품만 하셔도 그래도 삶을 살아가셨지.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르다. 극단 대표 또는 프로덕션 대표와 배우들은 연출가에 비해 차의 종류와 연식, 배기량이 다르다. 같은 작품을 같은 시간 동안 함께해도 서로 비밀로 부쳐진 계약서에 따라 서로 받는 개런티의 규모가 엄격히 다르다. 차가 있건 없건, 또 있다면 그 종류와 cc가 뭐 그리 대단하겠어, 서로 다른 것을 가졌어도 서로 다른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겠지. 그걸 알면서도 연습이나 공연이 끝나고 집에 갈 때는 짜증이 난다. 나는 언제쯤 연출만 해서 저런 것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을까. 연출은 계속 할 수 있기나 할까? 에이, 썅.


다시 아침으로 돌아가 보자. 아내와 그런 대화를 나눈 후 하루 종일 내 맘은 편치 않았다. 난 오늘, 나를 위해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배우들과 4,000원 내기 컵 족구도 정말 필사적으로 해서 돈을 지켰다. 연습 끝나고 배가 조금 고팠고 맥주도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맥주 대신 물을 가득 담아 여기 앉아 이렇게 이 지질한 글을 쓰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내가 연출을 직업이라 말하며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서른 네살에 대학교육을 받고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정말 하루 서너 시간밖에 안자고 매일 최선을 다해 일하는데 오늘 아침과 같은 상황을 자주, 그리고 앞으로도 자주 자주 만나게 된다면 나, 이 직업을 다시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말 한다. ‘그래도 넌 니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라 얼마나 좋니.’ 그래, 내가 좋아하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이거지. 나는 괜찮아. 그럼 내 가족은? 남편 잘 못 만나서 얼굴도 자주 못보고 사는데, 아빠 잘 못 만나서 주말에 놀아주지도 못하는데, 자식 잘 못 둬서 매달 용돈도 못 받는데, 그게 마흔이 되고 오십이 되서도 그런다면 그게 과연 정당하고 옳은 것일까. 더 늦기 전에 나, 빨리 마음 털고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것이 나와 가족, 모두의 미래를 위해 옳은 것이 아닐까.

희곡을 읽으면, 연습실에 가면, 내 작품이 올려진 극장이나 다른 사람의 작품이 올라간 극장에 가면, 나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하루 종일 숨이 막힐 듯 힘 들다가도 그곳에 가서 일을 하면 그렇게 힘이 나고 아무 걱정이 없다. 매 순간 머릿속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열망뿐이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내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을, 내가 듣는 모든 것을,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노래하고, 정리하며 적용한다. 이것이 나의 삶이고 나의 행복인데, 그 얼마 되지 않는 욕심과 편의 때문에 자꾸만 내가, 함몰되고 있다. 어디 이런 고민이 나 뿐이겠는가를 잘 알면서도, 나 그러고 있다. 참 바보 같지.


나, 이종석, 연출가. 지금 나는 내 앞에 서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위로하고 격려하며 나를 몰아세우고 있다. 많은 두려움이 내 앞과 뒤에 있다. 조금 더 편히 살고 싶은 욕심, 조금 더 편히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 좋은 작품 함께 하자고 나 부르기를 기다리는데 울리지 않는 전화기, 성에 안차는 작품들, 얼마 되지도 않는 연출료. 내 안에 꿈틀대며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작품들에 대한 열망,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 떠나고 싶은 욕망, 도대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심, 속임 당한 것에 대한 분노, 끊임없는 어떤 기다림. 이 모든 것들이 나를 그 가운데 세워놓고 빙빙, 때론 휙휙 돌아간다. 가만히 서 있기조차 힘들다. 얼마나 많은 선배들이 그 가운데서 넘어졌을까. 얼마나 많은 후배들이 그 가운데서 넘어져 버릴까. 그럼 그들의 중간에 서 있는 나는 넘어질 것인가, 아니면 담대히 불안안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인가. 나, 이종석, 연출가. 내 이름과 내 직업을 아직은, 나 포기하지 않겠다. 내년에도 학교로, 학원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연습에 대한 신념을 지키고, 나와 함께 작업하는 내 동료들과 함께 그 신념이 옳은 것임을 증명할 것이다. 내년 어느 날 아침, 또 다시 오늘처럼 햇살 없는 어둠이 찾아와도 꿋꿋이 밥을 씹고, 양치하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살다가 정말 죽음 바로 직전까지 내 몰리면, 씨발, 그 때 관두자. 그리고 모두에게 용서를 빌자. 내가 틀렸다고. 내가 멋 부렸다고. 내가 잘난 척 하느라 그랬다고. 당신들은 그러지 말라고. 하지만 그러기에 아직은 이르다. 내가 왜? 무엇 때문에 포기해, 내가 지금 여기 있는데. 여기에 우뚝 서 있는데…

매거진의 이전글연출가 일기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