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일기 36

뉴욕의 애런과 서울의 나

by Pia Jong Seok Lee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준비할 때, 조명 수퍼바이저로 미국에서 온 애런이란 친구가 있었다. 애런은 자신의 일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고,(물론 나도 일 하는 매 순간에는 내 일에 100% 만족한다.)작품을 통해 여러 나라들을 여행할 수 있어 행복해 했다. 이 친구는 매일 저녁이면 말이 통하든 그렇지 않든 눈이 마주치는 거의 모두에게 손으로 무언가를 들이키는 시늉을 하며 한잔 하자고 권했다. 어쩌다 못 이기는 척 함께 가면 많이 마시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맥주 2잔? 그리고는 우리는, 서로 할 수 있는 대화와 그 양을 잘 알기에 서로를 귀찮게 하지 않으며 눈을 보고 몇 번 웃고 몇 마디 주고 받는게 다였다. 갈 때는 또 어찌나 쿨 한지 나보다 서너 살은 어린 친구가 현금으로 착착 계산하고 일어선다. 내가 말했다. “애런, 미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여기서 일하는 나는 늘 그래. 내가 뭐하고 있나, 잘하고 있나, 그리고” 하는데 애런이 내 다음 말을 가로챘다. “미래가 있을까…” 우린 웃었다. “너도 그래?” 내가 묻자 애런은 “그럼, 당연하지. 뉴욕에 살고, 조합이 있어도, 내가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뿐이야. 나도 일 년에 3개월은 아빠 집에서 페인트칠이나 하지 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주변의 비슷한 일을 하는 남들은 날더러 용기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가정이 있는 남자로서의 삶의 규모를 30대 초반의 연출가로서 내가, 뚫어진 옷 입지 않고, 아내와 아이를 굶기지 않고 지금껏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무엇을 입고, 먹고, 마시고, 살고의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 나와 애런이,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스스로가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 가치 있는 일을 적어도 한 십년 이상은 꾸준히, 연속적으로 꾸려가길 희망한다는 것, 페인트칠을 하러 가더라도 온전히 내가 정한 시간에 내 계획 하에 그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것, 그것이 삶의 주권이고 그것이 삶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아닐까. 옛 동료를 오랜만에 길에서 또는 극장에서 마주했을 때, “요즘 뭐해?” 라는 질문에 또는 “다음엔 뭐해?”라는 질문에 낯이 벌게지며 무슨 말 거리를 찾느라 머리를 팽팽 돌리지 않아도, “응, 난 다음 달까지 휴가야. 여러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어”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대답이 상대로 하여금 “아. 너 일 없구나. 너 노는 구나”라는 생각이 아니라 “아, 나도 휴가를 내야 하는데. 좋겠다. 잘 쉬고 돌아와.”라는 서로의 진심이 통할 수 있는 그 것, 그래야 조금은 높은 삶의 가치를 나누며 살아가는 나와 애런이지 않을까.


통장의 잔고가 또 줄어들고 있다. 매일 밖으로 나가면 나가는 횟수와 시간만큼 통장의 숫자들은 단위가 변한다.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해서 그래도 끝자리 ‘0’이 많으면 마음이 조금 놓이는데, 단위 숫자의 길이가 짧아질수록, 요 ‘, ’ 쉼표의 간격이 각 숫자간 좁아질수록 자유의 척도도 줄어든다. 현대사회에서 이보다 무서운 일이 또 있을까. 나는 늘 ‘0’과 그 다음 ‘,’ 사이에 놓여있다. 내 삶의 주권을 찾는 것, 그리고 언제 늘어날지 기약 없이 줄어가는 통장 숫자들의 끝자리 압박을 견디어 내는 것, 그리고 루민이와 아내를 포함하여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들어내지 않는 것, 그 사이에 내가 있다.

빨래가 돈다. 쌀은 루민이 하원 시간에 맞춰 불려놓고 있다. 이 일도 행복하다. 깨끗한 집으로 돌아와 기뻐할 아내와 갓 지은 밥의 향이 루민이를 맞이하는 것도 즐겁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내가 계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앞으로도 어디로 갈지 몰라 전화기를 바로 곁에 두고 여기에 앉아 있다는 것이, 준비된 것이 아니라 다급한 마음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려는 목적으로 다시 여러 책들을 쌓아놓고 줄치며 읽고 있다는 것이, 나는 기쁘지 않다. 그런데 내가 오늘 여기 있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오늘이다. 애런, 넌 지금 어디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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